내게 뒤쳐질 수 있는 행복을 허락하라

먼저 사과의 말씀과 함께 글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세 명의 저자가 매주 폭탄돌리기(?)를 하며  글을 써왔던 대.좋.들. 블로그는 지난 한달동안 새 글을 발행하지 못했었다. 내 차례에서 새로운 글을 생산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바빴다는 건 적절한 핑계가 되지 못할 듯 하고, 무엇보다 쓰고싶은 글감이 잘 떠오르지 않았기에 글을 섣불리 쓰지 못했었다. “오늘은 꼭 쓸게요”라며 글을 쥐어짜내 보았다가 완성하지 못한 글만 5개쯤 되는 것 같다. 어떻게든 내 순서를 넘기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대.좋.들. 공간이 나의 설익은 아무말을 조언으로 포장시켜도 되는 그런 만만한 공간은 아니었기에 부담이 참 컸다.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의 폭탄을 안고 살아갔고(ㅠ), 그 사이에 권창현 교수님은 논문 하나씩을 preprint 하였으며, 최윤섭 박사님은 “나는 그렇게 스스로 기업이 되었다” 책을 발간하셨다. 이러니 나 혼자 바빴다고 징징대지 못하는거다..ㅠㅠ 나는 늘 바쁘고 늘 무언가에 쫓기며 살지만, 불만족스러운 나의 퍼포먼스를 보면 늘 만족스럽지 못한 마음이고, 교수님께 죄송하고, 필자 분들께 죄송하고, 독자분들께 죄송하고, 그저 모두에게 죄송한 마음일 뿐이다.

그렇다. 인생은 늘 괴롭다.

개롭다.. 개로워… 그렇다고 내가 열심히 하고있단건 아니지만…

하지만 문득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며 지금 나를 가장 괴롭히는건 나 자신임을 깨달았다. 사실 교수님도, 대.좋.들. 필자분들도, 그리고 아마도 독자분들도, 세상 그 누구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스트레스를 주진 않는다. 오히려 독려하고 응원해주시는 마음으로 곁에 있을 뿐… 결국 계속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가장 큰 적은 나 자신 밖에 없었다.

난 언제부터 이렇게 자학하는 인간이 되어버린걸까…?

사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그 채찍질이 꼭 “나의 부지런함”의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끊임없이 채찍질을 맞으며 살아왔단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어렸을 땐 그 채찍질의 주체가 부모님 혹은 선생님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새 그 채찍은 우리 자신의 손에 쥐어졌고, 우린 때론 돈까지 써가면서 우리 자신을 채찍질해왔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아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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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롭다.. 개로워….

 

우리가 휘두르는 채찍질은 아마도 두가지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상대적 기준에서 비롯된 채찍질, 다른 하나는 절대적 기준에서 비롯된 채찍질.

상대적 기준의 채찍질

내 주변엔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엔 나보다도 훨씬 능력이 뛰어나고 훨씬 스펙 짱짱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MIT, Stanford 등 세계적 명문 대학을 나왔다거나, 논문 인용수가 벌써 몇백, 몇천이 된다거나, 이미 국내외 유명 대학의 교수이거나, 혹은 Google, facebook과 같은 글로벌 기업 연구소에서 몇억씩 연봉을 받으며 사는 친구들처럼 말이다. 지인을 넘어 눈을 외국으로 돌려보자면, 딥마인드 같은 곳에서 쩌는 논문들을 양산하는 연구자들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을 볼 때면 ‘과연 이들에겐 열등감이란게 있기나 할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그들도 끊임없이 열등감과 싸우고 있다.

OOO로 유학을 갔던 내 친구는 주변의 천재들을 보며 한없이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끊임없이 괴로워해야 했다고 한다. 나에겐 늘 천재같이 보였던 친구인데 말이다. 누구나 미래의 직장으로 꿈꾸는 곳인 OOO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는 늘 자신의 부족한 영어를 탓하며 능력도 좋고 원어민이기까지 한 다른 직원들과 자신을 비교한다. 그리고 그들에 밀리지 않기위해 집에까지 집에 일을 싸들고 와서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건 상상이지만, 딥마인드에 있는 연구자 아무개도 아마 엄청난 실적을 쏟아내며 주목을 받는 동료 연구자를 보며 자신이 그러지 못함에 조급함과 괴로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사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필자 본인 역시도 타인에겐 그런 오해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서울대에 처음 들어갔을 땐 주변 친구들이 ‘야, 너가 무슨 걱정이 있냐. 진짜 배가 불렀다 불렀어.’라고 얘기했었는데, 그건 참 내 사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었다. 내가 서울대에서 여러 천재들에게 치이며 살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미래에 대해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현재의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어떤 분들은 나를 보며 부러울 것 없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나도 내가 주변의 실력자만큼 술술 논문을 읽고 구현을 잘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참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언젠간 드러날 나의 빈 깡통에 대해서도 늘 죄책감을 갖고있고 말이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내가 깨달았던 점은, 상대적인 비교는 남들보다 더 높이 올라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딜 올라가더라도 늘 내 위에 사람이 있고, 늘 내 밑에도 사람이 있다.

상대적 비교의 승자는 제한된 조건 상에서만 존재한다. 예를 들어 ‘반 1등’이라고 한다면 그 반에서만 1등이 승자일 뿐, 전교로 따지자면 꼭 승자는 아닐 것이다. 전교 1등도 전국으로 보면 마찬가지일 것이고, 전국 1등도 다른 나이들의 전국 1등들과 세상에 나와 경쟁한다면 꼭 승자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조금만 눈을 세계로 돌려보더라도 분명 본인을 패자로 만들어 줄 사람이 있고 말이다.

세상에 강자는 많다. 이 세상은 강동원도 “정말 못생겼다. 잘 생겼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라고 말하는 무서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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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굴이냐… 못생겨가지고…(…)

비교에 있어 세상에 절대승자가 없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면, 사실 그 누구도 패자라고 괴로워할 필요없다. 상대적 비교의 그룹, 상대적 비교의 분야, 상대적 비교의 근거 모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기준들이기 때문이다.

“더 뛰어난 사람이란건 존재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건 그냥 “이 세상에 사람 졸라 많아요”와 동치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패배감이 자신을 이끌어 줄 동력이라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동력은 우리 자신을 사랑할 때 나오는 것이지, 쓰레기로 매도한다고 초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만 불행해질 뿐이지…

(여담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줄세우기 교육은 참 잘못되었다. 줄세우기 교육, 줄세우기 대학 서열은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들만을 양산할 뿐이다. 왜 청소년들이 반에서 1등을 못한다고 구박받아야 하고, 왜 많은 대학생들이 일류대를 못다닌다고 사람취급 못받아야 하는가.)

절대적 기준의 채찍질

어쩌면 나를 채근하는 것이 상대적 비교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너 왜 그렇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니’라든지, ‘너 왜 그렇게  게으름을 피운거야’와 같은 절대적 기준에서의 채찍질일지도 모른다. 이 경우는 그나마 상대적 기준의 채찍질보단 나은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팩트폭행이 꼭 필요하다거나 아프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도 참 많이 나 스스로를 채찍질 했는데, 만일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더라면 ‘거 보소, 그만 좀 갈구시요’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세상 살면서 마지막 힘까지 다해 쥐어 짜내야하는 순간들이 참 많다. 당장 내일인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그럴 수도 있고, 그보다 더 큰 시험인 수능이 그럴 수도 있고, 어떤 공모전과 같은 대회에서의 도전 순간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잠 자는 시간마저 모두 짜내 최고의 성적을 내야하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순간들에서 소위 “쥐어짜기”를 시전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쥐어짜기 혹은 자기극복의 순간들이 꾸준히 쌓여 궁극적으로 발전한 나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것도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부작용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내가 혼신의 힘으로 쥐어짜내어 내 평소 가진 실력 이상의 것을 얻게된다면, 나는 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써야 할 것이다. 만약 내가 얻은 최고의 성적을 자신의 ‘평균수준’으로 인식하고 난다면, 나는 그 수준을 재현하지 못함에 끊임없이 괴로워할 것이고, 다음 관문에서도 지난번과 같은 또다른 요행을 기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짜내기”를 반복한다면 마치 내 인생을 막판 스퍼트하듯 달려야 할텐데, 사실 인생은 그렇게 막판 스퍼트를 자주 할 만큼 짧은 순간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이다.

어떤 사람들은 순간순간에 “최선” 혹은 “무리”를 하여 가랑이 찢어가면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더 높은 확률은 결국 내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이다. 가랑이가 찢어지고 나면 나는 절뚝절뚝 아픔을 안고 올라가야 할 것이며, 결국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돌아서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 길다. 빨리 달리는 사람이 멀리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 달리는 사람이 멀리가는 것이다. 그리고 멀리 가려면, 우선 즐겨야 한다. 극한의 괴로움 속에서 짜냈을 때 기쁨을 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한 기쁨은 대부분 성취에서 오는지라 ‘성공이냐 실패냐’와 같은 외부적 잣대에 좌우될 때가 많다. 만약 최선을 다한 그 자체로 즐겼다면 OK, 하지만 실패했을 때 괴로워할 것이라면 굳이 그렇게 가랑이를 찢지는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마가편: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다. 잠깐, 근데 나는 말이 아니자나.

채찍 맞는 말은 오래 달리지 못한다

우리는 참 다양한 채찍질을 맞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어느새 그러한 채찍질에 길들여졌으며, 이제는 채찍질이 없으면 죄의식을 느끼는 단계까지 이르른 것 같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아마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이 자신을 채찍질 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게 맞는 방향이다. 그 누구도 나를 채찍질 할 순 없다. 나에게 채찍질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고, 그렇기에 더더욱 나를 향한 채찍질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삶에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단건 너무나 잘 알려진 격언이다. 하지만 우리의 채찍질이 정말 “방향”을 위해 쓰여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자면, 사실 대부분이 “속도”에 관계되어 있음을 알게될 것이다. 다시말하면, 우리는 “속도”에 대한 채찍질이 과한 반면, “방향”에 대한 채찍질은 그만큼 적게 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방향에 대한 고민에 대해 채찍질을 가하라는 말씀은 아니다. 방향이란건 자주 고민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방향만 자주 고민하다보면 머뭇머뭇 거리기만 하다가 제자리만 맴맴 돌 가능성이 크며, 이도저도 이루지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방향에 대한 고민이나 채찍질도 그렇게 자주 하시길 권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저 최대한 즐기시라.

사람은 경주마가 아니다. 채찍을 맞아 수동적으로 달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채찍 맞는 말에게 오래 달리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단 걸 잘 알고 있다. 나는 열심히 쥐어짜내면서 올라가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풍경을 천천히 즐기면서 올라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시험 성적과 같은 단기적 성과로 스스로를 구박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번에 성적이 조금 안좋았다 하더라도, 이번 일에 대해 결과가 좀 안좋았다 하더라도, 수고했다며 조금씩 토닥여주자. (사실 이건 나 자신에게 충고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대학원생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좋은 성적 받기? 많은 논문 쓰기? 졸업에 성공하기? 졸업 후 좋은 곳에 취직하기?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것도 현재를 흘려보내는 이 순간을 잘 즐기는 것만큼 중요한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적을 잘 받든 못받든, 논문을 많이 쓰든 못쓰든, 심지어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든 못하든 간에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내가 지금 떠나보내는 이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저 모든 것을 즐거움 안에서 찾아가시길 바란다. 너무 괴로워하며 하루하루를 쥐어짜지 마시고, 너무 자신의 못남을 부각시키며 채찍질하지 마시고, 오늘을 즐기시고, 조금은 게으름을 허락해주시고, 주변 사람들과의 행복을 만끽하시며 즐거운 인생여행을 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의 즐거움을 내일의 발전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내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한 발전의 길이 아닐까 싶다.

너무 자책하지 마시라. 그대는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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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지도교수 만나는 법

지난 글 “나의 유학도전 성공 이야기”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관문”에서 성공과실패가 판가름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고3학생은 대학입시 “관문”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성시공과 실패가, 취업준비생은 취직 “관문”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성공, 실패가 갈린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 “관문”을 통과했다면 그건 “이제 시작이시네요”란 뜻이지, 결코 “성공하셨네요”는 아닐 것이다. 유학도 마찬가지다. 나는 유학에 성공한 사람이 꼭 Winner이고 실패한 사람이 꼭 Loser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학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일단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합격기술을 연마에 안간힘을 쓰고 계시겠지만, 학교는 수단일 뿐, 진정 성공을 얘기하고자 한다면 내가 가고픈 길부터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유학 입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좋은 학점, 영어성적, 자기소개서, 추천서, 지도교수 컨택 등이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게 있고, 그것을 향해 실제로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대학원 선택, 무엇이 중요한가

대학원을 진학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무엇일까? 학교? 전공? 장학금? 아니면 연구분야?

많은 고려 요소들이 있지만 나는 ‘어떤 지도교수를 만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하고싶은 연구분야’를 선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최악의 지도교수 밑에서 하고싶은 연구를 하는 것과 최고의 지도교수 밑에서 적당한 주제의 연구를 하는 것 중에 굳이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후자를 선택하고 싶다. 대학원생에게 지도교수의 존재는 마치 아기가 부모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것과 같아서, ‘어떤 지도교수를 만나느냐’에 따라 학계가 푸르른 바다처럼 보일 수도, 또는 더러운 시궁창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 생활의 푸르른 바다를 만나고 싶다면 좋은 지도교수를 만나는 것은 아마 필수요건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학교 이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지도교수=연구분야>장학금>학교’이어야 할 선택의 우선순위를 그 반대인 ‘학교>장학금>연구분야=지도교수’로 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명문대 안좋을 과를 갈래 아니면 후진대 좋은 과를 갈래?’의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던 대학 입시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얕은 고민으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건 대학입시를 마지막으로 이별해야 하지 않을까…? 대학원을 간다는 것은 나의 미래 인생을 그리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단순히 스펙에 따른 줄세우기로 결정 되어선 안될 것이다.

물론 좋은 학교의 졸업장으로 받아 취업 만을 목표로 한다면 학교 이름을 우선시하는 선택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석사/박사 졸업장에 새겨진 (학사보다 더) 좋은 학교 이름이 꼭 취직에 ‘효능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것만을 목적으로 대학원에 진학하였다면 그것은 그저 취업을 위한 가방 끈 낭비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대학원 생활에 있어 졸업장에 새겨지는 학교 이름은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것일 뿐이어야지 그것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그리고 좋은 학교의 졸업장 만을 바라보며 ‘졸업만 시켜주세요’라고 바라는 대학원 생활은 그저 ‘전역만 시켜주세요’라는 군대 생활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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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시계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아니…

좋은 지도교수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참고로 이 글은 본인의 생각에 의해 쓴 글이지만 최윤섭님의 글 "지도교수는 어떻게 골라야할까"와 배현진님의 글 "지도교수와 학생의 만남은 결혼과 같다."와 유사한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다들 비슷하나 봅니다. 위의 두 글도 참 좋은 글들이니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도교수를 찾기 앞서 먼저 알아 두어야 할 점은 교수가 학부생을 대하는 모습은 자신의 대학원생들을 대하는 모습과 크게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교수에게 있어 강의는 일종의 쇼와 같다. 그리고 학부생들은 그 쇼에 입장한 관객들이다. 잘 짜여진 각본과 연기력에 의해 좋은 연극을 펼친다고 해서 그 배우가 꼭 가정에서 훌륭한 사람은 아닐 수 있듯, 강의를 잘하는 교수가 꼭 대학원생들에게 좋은 지도교수는 아닐 수 있다. 그러니 보기 좋은 떡과 먹기 좋은 떡을 구분하자. 정말로 좋은 지도교수는 오히려 대외적인 노출(showing)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교수일 수 있다. 왜냐하면 외부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수일수록 대외 노출(showing)을 위해 대학원생들을 더욱 쥐어짜고 학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학 전 지도교수를 잘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그 연구실에 들어가 인턴으로서 연구에 참여해보는 것이다. 이 때 처음부터 연구의 깊은 부분에 관여해 좋은 논문을 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버리도록 하자. 처음 부여 받은 일은 아마도 선배 대학원생들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한 단순 조사(survey)나 반복 실험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학문적으로는 얻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지만, 바로 곁에서 대학원생들의 고민과 삶을 간접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래 계획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지도교수님이나 연구분야에 대한 대학원생들의 생각들을 듣다 보면 본인이 이 연구실에 오는게 맞을지에 대한 생각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단, 대학원생들의 엄살에 주의하자. 많은 대학원생들이 본인이 최악의 헬에 살고있다고 이야기하겠지만, 세상에 헬 아닌 곳이 없고 힘들다고 얘기 하지 않는 곳이 없다. 참고로 회사에 간 선배는 회사에 오지 말라고 하고, 대학원에 간 선배는 대학원에 가지 말라고 하는게 보통의 반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연구실 인턴 생활을 하기 쉽지 않단 걸 잘 알고있다. 맘에 드는 교수님의 연구실을 고르는 것도, 교수님을 찾아가 인턴 자리를 요청하는 것도, 방학/계절학기/어학성적을 포기하고 연구실에 나가 무료 봉사를 하는 것도 나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올인할 수 있는 그리 쉬운 선택은 아니다.

그럴 땐 적어도 그 연구실의 대학원생과 대화라도 나눠보자. 직접 아는 사람이 없다면 아는 사람의 소개라도 받아서 말이다. 타 대학으로의 진학을 목표로 한다면 이러한 대화의 기회를 찾기가 참 힘들 것이란 걸 알고있다. 그래도 꼭 해야한다. 지도교수가 아무 정보가 없는 학생을 뽑을 수 없는 것처럼, 학생 역시도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지도교수와 한 배를 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연구실에 아는 사람이 없다면, 연구실 홈페이지에서 구성원 중 가장 인상이 좋아 보이는 몇 명에게 메일을 보내 보거나 아니면 무작정 (타대학이라도) 연구실을 찾아가 그곳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시도해보도록 하자. 그 어떤 행동도 아무 정보없이 내 인생을 맡기는 것보단 낫다.

필자가 서울대에 있을 떄의 경험을 비추어보면, 교수의 성격이 괴팍해 자대생이 잘 가지 않는 연구실이 주로 아무 정보가 없는 타대생 출신으로 채워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리고 이 학생들은 ‘그 랩에 누가 가’라는 곳에서 고생이 참 많은 것 같았다. 그러니 타대생 출신 멤버가 너무 많은 연구실을 기회의 땅으로만 보지 말고, 안좋은 사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의심해보자. (반면 타대생 출신 구성원이 많은 이유가 교수가 신임교수여서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거나 학교에 대한 편견이 적은 교수여서 그런 것이었다면 이러한 연구실들은 굳이 피할 필요가 없다.) 교수가 어떠한 사람인지 말로 잘 설명하기 힘들다면 아래의 그림을 해당 연구실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교수가 어떤 유형인지 물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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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가지 유형의 지도교수의 모습

어떤 유형의 지도교수가 좋을까?

말 나온 김에 위의 유형들에 대해 좀더 깊은 분석을 해보도록 하자. 위 그림에 나온 아홉가지 교수 유형 중 최선의 지도교수는 어떤 타입이고, 최악의 지도교수는 어떤 타입일까? 그래서 나름대로 순위를 한번 매겨봤다. 참고로 교수와 제자의 궁합은 제자의 성향과도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아래의 순위는 활발하고 주도적인 편인 필자의 입장에서 작성된 것임을 밝혀둔다.

9위 – 사이코

나는 일단 어느 유형이든 인간적 측면에서 실망을 안겨주는 지도교수는 실력과 상관없이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아동학대를 당하며 자란 아이가 나중에 부모가 되어 아동을 학대할 가능성이 크듯, 계속 실망스러운 지도교수의 모습을 통해 학계를 바라보다보면 본인도 그 모습을 닮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인간적으로 존경할 수 없는 지도교수는 대학원 생활 또는 그 이후의 미래를 생각하더라도 선택하지 않는 쪽이 좋다.

6위 – 노예주인, 구멍가게 주인, 느긋한 교수

세상 어느 일이든 그것들에 맞는 적정선이 있다. 내 생각에 노예주인은 대학원생에 대한 강요가 과해서, 반면 구멍가게 주인과 느긋한 교수는 의무를 다 하지않는 일종의 태업과 같아서 두 경우 모두 나쁜 케이스들인 것 같다.

굳이 꼽자면 노예주인이 조금더 나쁘다. 실제로 한국에는 이렇게 대학원생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교수들이 종종 있는데, 문제는 그들의 지도 방향조차도 틀릴 때가 많은 채 학생들을 이리로 저리로 휘두른다는 것이다. 이런 교수 밑에서 있다보면 본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은 채 퇴근만을 바라보며 살기 쉽다. 그러니 이런 지도교수들은 피하도록 하자.

구멍가게 주인과 느긋한 교수는 노예주인처럼 학생을 괴롭히지는 않는데, 반면 학생의 열정을 자연스레 소멸시키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다른 곳에 진학해 정상적인 지도교수를 만나고 나면 ‘연구가 이런거였어?’라며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저 시간만 떼우려고 대학원에 간 것이 아니고, 또한 지도교수가 안빈낙도하는 모습을 보기위해 대학원에 간 것도 아니니 이런 교수들은 피하도록 하자.

5위 – 달변가

이 교수들의 장점은 본인의 연구를 아름답게 포장해줘 중요한 연구처럼 보이게하며, 이런 능력들을 바탕으로 과제비를 잘 따와 풍족한 연구실을 만든다는 것이다.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이 자식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듯, 지도교수의 과제 획득 역량 역시 무시할 것이 되지 못한다.

반면 이런 교수들을 보고 배우다보면 진정한 학문의 길을 걷지 못하게될 때가 많다. 나도 어느새 ‘발표할 때 잘 포장하면 되지’라며 노력보다는 포장의 힘을 더욱 믿게되며, 쇼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연구로 본인의 연구가 격하될 수도 있다. 결국 그리 좋은 타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4위 – 반쯤 신

반쯤 신은 매우 좋은 교수일 수도, 매우 나쁜 교수일 수도 있다. 만약 교수의 얼굴을 거의 볼 수 없다면, 그리고 나의 팀 리더(예를 들면 프로젝트를 같이하는 포닥)마저 그리 배울 점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는 ‘구멍가게 주인’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유명한 랩의 일원으로서만 그냥 방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레벨이 된다면, 반쯤 신의 심오한 학문적 깊이를 이해하고, 그가 전세계에 걸쳐놓은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을만큼 본인이 실력자 레벨로 들어선다면 반쯤 신은 매우 좋은 유형의 교수 타입이 된다. 보통 학회를 가거나 졸업 후 취직시장에 나가면 지도교수의 이름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기 마련인데, 이 때 반쯤 신의 이름은 본인을 알리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2위 – 통제광, 과학 오타쿠

나는 석사생이라면 태업을 일삼는 교수보다는 오히려 통제광이나 과학 오타쿠를 추천하고 싶다. 교수는 분명 대학원생들보다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통제광/과학오타쿠가 하는 이야기들이 때론 성가시게 들릴 때도 많겠지만, 그들이 얘기하는 사소한 디테일들이 때론 연구결과에 큰 차이를 가져올 때가 많으며 그러한 배움은 논문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나는 통제광/과학오타쿠가 주니어 연구자들에겐 좋은 습관을 몸에 베게하는 좋은 지도교수 타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노예주인과는 구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통제광의 통제가 본인의 연구에 국한되어야지 사생활까지 넘어오면 안된다. 또한 많은 부분들에 대해 지도교수가 의견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왜 해야하는지 교수가 친절히 설명해주며 학생의 의견도 경청해주는 교수라면 이보다 금상첨화일 수는 없을 것이다.

1위 – 떠오르는 별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실력만 된다면 떠오르는 별이 쏘는 로켓에 탑승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지가 아닐까 싶다. 다만 떠오르는 별은 매우 바쁘기에 정신차리고 따라가지 않으면 낙오되기 쉬우며, 주변의 많은 실력자들을 보면서 좌절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고 떠오르는 별의 꼬랑지를 잡아보도록 하자. 만약 본인의 실력이 아직 떠오르는 별을 쫒기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나는 오히려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통제광/과학오타쿠가 더 낫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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