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학도전 실패 이야기

지난 이야기  “회사냐, 대학원이냐, 그것이 문제로다”에선…

“결국 이 둘 사이의 선택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적성의 문제이다. 아니, 적성의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삶을 추구하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그러니 회사 대신 대학원으로의 선택이 꼭 본인의 행복한 삶을 찾아줄 것이란 생각은 버리고 올바른 선택을 내리도록 하자.”

“사람마다 정답이 다르기에 제가 정답을 드릴 순 없겠지만,  저의 몇가지 선택 원칙들을 드려보면,”

– 엉덩이가 불편한 쪽으로 선택하라
– 환상을 깨고 선택하라
– 대안이 아닌 최선으로서의 선택을 내려라
–  ‘될놈될’의 교훈을 기억하라                         

유학가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꿈꾼다. 나 역시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어떤 사람이든지 유학을 준비하게되면 늘 묻게되는 질문들이 있는 것 같다.

“성적은 얼마나 좋아야 해요?”
“영어성적은 얼마나 중요하나요?”
“지도교수님과 컨택은 어떻게 하죠?”

나도 이러한 질문들을 따라 수많은 글들을 찾아보고 검색해봤던 기억이 난다. 아마 대부분의 질문들과 정보들은 유학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고해커스 사이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엔 어디 토플장이 시험치기 좋은지 등 시시콜콜한 팁들부터 시작하여 본인의 성적과 학교합격여부를 포스팅하는 어드미션 포스팅, 장학금 정보, 각종 공부 팁 등 정말 다양한 자료가 올라와있다.

특히 어드미션 포스팅은 마치 나의 수능 성적과 배치표를 비교하던 고3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 곳은 본인이 합격한 학교와 불합격한 학교, 그리고 자신의 성적들을 공개함으로써 대충의 학교별 입학 난이도(?)를 예측할 수 있게끔 하는데, 주로 “저도 드디어 이곳에 합격소식을 올리게 되네요ㅠ”로 시작하는 글들은 유학준비생들에겐 한번쯤 써보고픈 꿈같은 글이기도 하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나의 스펙과 대비되는 학생들의 화려한 스펙을 보며 나는 좌절 또 좌절을 겪는 곳이 또 이 게시판이기도 했다.

나는 사실 보통 사람들이 거치는 ‘유학의 정석’에 있어 성공 사례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유학 성공의 팁을 알려드린다는 건 주제넘는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실패 이야기는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2012년 유학준비 첫 해에 8개의 대학에 지원하여 모두 불합격 했었다. 그리고 2013년 다시 6개의 대학에 지원했고, 그 중 네 곳에 합격하여 현재의 University of Waterloo에 올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 대학들이 날 떨어뜨려줬던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빈 말이 아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왜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이번 글과 다음 글을 통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더불어 나의 부끄러운 실패 스토리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나름 로봇계와 머신러닝계에서 허명이 있는 입장으로서 나의 하찮음을 공개하는 것이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나 스스로도 허명을 좀 벗겨내고, 유학을 준비하는 많은 분들께도 용기를 드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회사를 다니며 처음으로 시작했던 토플 공부. (2012. 4.)
회사를 다니며 처음으로 시작했던 토플 공부. (2012. 4.)

내 성적으로 유학을 갈 수 있을까?

나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석사 학위도 있었고 해회학회 논문도 있었으며 회사에서 일한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학부 / 대학원 학점   :   3.38  /  3.66
토플 / GRE   :   99   /  153(Verbal), 166(Math)

지금 적으면서도 얼굴이 화끈거릴만큼의 부끄러운 성적이다. 각각에 대해 여러가지 변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냥 내 실력을 인정하기로 했다. 난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영어는 더더욱 아니다. 주위의 서울대 친구들이 발로 풀어도 토플 100~110은 나오기에 나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지만 내 부족한 실력은 한과목씩 번갈아가며 -10점을 받는 참사를 만들어냈고, 난 그냥 내 실력을 인정하기로 했다. 난 공부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가 그래도 관악의 물을 먹었는데…’라는 허세가 있었던 것 같다. 주변의 친구들이 다 좋은 학교를 가니 나도 이정도는 가야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 마음…? 그래서인지 내가 유학준비를 하며 제일 자주 했던 일은 US News, QS Ranking 등에서 각종 대학랭킹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의 능력이 되는지는 자각하지 못한 채, 난 그저 탑 대학들의 연구실 쇼핑만 즐겼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행동이 고등학교 시절 대학 배치표만 바라보던 그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고등학생들에겐 ‘전공이 중요해요’라고 꼰대질을 하면서도, 난 여전히 대학랭킹이나 대학이름이 주는 뽀대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동안 맛봤던 ‘서울대’라는 후광이 너무 달콤했기 때문일까? 아무튼 난 웬만하면 남들이 다 아는 이름의 학교를 가고 싶었다. 그래서 2012년 하버드, 카네기멜론, 조지아텍 등등 알만한 이름의 대학들 8곳에 지원했고, 모조리 떨어졌다.

마지막 학교에서 불합격 소식을 받았을 때의 그 참담함이란… 실패를 모르고 살아왔던 내가 처음으로 초라한 실패자의 모습을 보인다는건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난 보기좋게 실패했고, 날 줄곧 도와주었던 요행은 이번만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년의 도전도 성공이 보장된 것이 아니었기에 그만큼 더 참담했고 불안했다.

나는 실패했다.
나는 처음으로 나의 실패를 친구들에게 고백해야했다.

2012년, 실패했던 나의 유학준비과정

2012년 당시 나는 석사 병역특례로 월화수목금금금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주말에도 늘 하루 이상은 일을 나가야했고 게다가 회사도 집에서 멀었던지라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하면 밤 11시가 넘어야 집에오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특히 답답했던 회사의 조직문화는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들게 했고, 난 유학을 결심하였다.

“팀장님. 저 유학을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곳에선 유학을 준비하기 힘들 것 같아 회사를 옮기려고요.”

이 말을 들은 팀장은 그 날부터 매주 나를 불러내며 각종 회유와 협박(?)을 했다. 예를 들면 ‘너 이 바닥 얼마나 좁은지 아느냐…’와 같은… 좁아도 당신 밑으론 안갈거다 당시 회사는 신입사원들이 썰물같이 빠져나가던 시절이었고, 자기 팀의 인재가 퇴사를 하게되면 팀장이 인사 상으로도, 실무 상으로도 불이익을 받았기에 팀장은 나를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했다. 여러차례 면담 끝에 난 퇴직을 연기하는 대신 ‘학원가는 날 칼퇴권‘을 따냈다. 그렇게 4월에 처음으로 해커스 토플 주말반을 등록했고, 4,5,6월 토플반, 7,8월 GRE반을 다니면서 영어시험을 치뤘다.

성적은 아까 말씀드린 그대로다. 실력도 없었고 운도 따르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말씀드리겠지만, 안좋은 영어점수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음해에 유학을 준비하며 영어시험을 다시 보지 않았다. 그만큼 영어학원에 돈을 버리는게 낭비 같았고 (특히 GRE), 내가 갈 길은 연구로 인정받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난 그렇게 5개월을 공부하고 참 별로인 점수를 얻었다. 보통 토플은 105점 (상위권 110점),  GRE Verbal은 155점 (상위권은 160점)은 넘어야 알만한 대학에 명함을 내밀 수 있다고 하는데, 내 성적은 그것에 턱없이 못미치는 영어성적이었다. 그리고 학점 역시 좋지 않았고 말이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며 허겁지겁 영어성적을 준비한 뒤 나는 교수님께 추천서를 부탁드렸다. 다행히 나는 연구가 아닌 축구로 교수님께 사랑을 받고 있었고(;;;) 추천서 내용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공부는 못해도 성격 좋은 애임’과 같은 추천서를 받았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우리 교수님이 워낙 솔직하신 분이시라…) 그렇게 하나는 지도교수님께, 다른 하나는 옆 연구실의 로봇공학 교수님께,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회사의 선임 분께 추천서를 받아 총 3개의 추천서를 제출했고, 그 세 추천서 중 그 어느 것도 인상적이지 않았을거라 확신한다.

참고로 많은 분들이 아마 교수님께 추천서를 받는 단계부터 어려워하시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그저 철판을 깔고 교수님 방의 문을 두드리는 수 밖에… 처음엔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 그 뒤에도 가끔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 찾아뵈어야 한다. (나는 휴가 때 마다 찾아뵀다.) 이 정도 되면 대충 교수님들도 눈치를 챈다. ‘얘 추천서 필요하구나…’. 그래도 다짜고짜 추천서 제출 몇달 전에 ‘교수님 저 좀 추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단 나으니 유학을 생각 중이시라면 우선 교수님과의 불편한 벽부터 깨시길 바란다.

“그는 수학 천재입니다.” 존 내쉬와 같이 내가 이런 추천서를 받을 사람이었다면 내가 이렇게 유학 때문에 고생하지도 않았을거다. #그럴일읎다

10월에 모든 영어성적표를 얻고, 11월부터 허겁지겁 SoP (State of Purpose, 일종의 학업계획서)를 작성, 학교 별로 원서를 작성하여 11월 중순부터 1월 중순까지 총 8개 학교에 원서를 접수하였다. 바쁜 회사일을 하면서 성적표 떼오랴, 은행 잔고증명하랴, 외국에 우편 보내랴… 참 만만찮은 일이었다. 각각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바쁜지라 내 지원서는 ‘완벽’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고, 누가봐도 대충 만든 원서임이 보였을 것 같다.

난 그렇게 허겁지겁 영어성적, 추천서, SoP를 만들어 ‘이름이 맘에드는’ 학교 8곳에 원서를 제출했고 보기좋게 떨어졌다. 평범한 학점, 영어성적, 추천서, SoP 등 내가 봐도 뽑힐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난 그래도 내 연구경력에 기대를 걸었었다. 나는 석사 때 Robot Motion Planning 쪽으로 해외학회 논문들이 있었고, 회사에서도 실제 exoskeleton(착용로봇)을 개발하고 있어서 관련 경험들이 내 성적을 만회해 줄 수 있을거라고 기대했었는데, 결국 내 기대는 기대일 뿐이었다.

고해커스에서 하라는 팁은 다 따라했던 것 같다. 교수와의 컨택이 중요하다기에 원서를 다 제출한 후 나는 내 연구를 정리한 슬라이드를 만들어 교수들에게 뿌리기도 했었고 (대부분 답장을 받지 못했긴 했었지만…), 그 랩의 아는 사람을 통해 내가 지원했다는 사실을 교수에게 알리는 등 나는 지원서 외적인 면에서도 발버둥을 쳤었다.

누나  :  “태웅아. 너 하버드에서 우편왔더라? 이거 뭐야?”
나      :  “봉투가 얇아 두꺼워?”
누나  :  “얇은데?”
나      :  “그럼 그냥 떨어진거야… 찢어버려…”

아직도 제일 싫어하는 영어문장은 “We regret to inform you…”로 시작하는 문장들이다. 하나하나 불합격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 희망은 점점 무너져갔고, 2013년 5월, 나는 모든 곳에서 최종 불합격 소식을 들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문장, We regret to inform you...
내가 제일 싫어하는 문장, We regret to inform you… (출처: PhD Comics)

무엇이 문제였을까?

사실 문제가 아닌 점을 찾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 싶다. 내 지원서는 그 어느 것도 뛰어난 점이 없었다. 사실 유명대학의 교수들은 이미 알고있는 지원자들 중에서만 뽑아도 신입생 자리가 부족할 것이다. 같은 학부에서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온 학생, 자기와 친한 다른학교 교수가 추천한 학생, 처음 받아본 지원서지만 성적과 논문실적이 인상적인 학생 등등… 그런 학생만으로도 신입생 정원을 채울 수 있는데 굳이 내 지원서를 뽑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박사생을 선발한다는 것은 교수로서도 매우 신중해야하는 선택이다. 석사생이 본인이 1년 쯤 가르쳐야 성과가 나올 수 있는 유소년과 같다면, 박사생은 바로 자신을 대신에 연구성과를 내줄 제자이자 동료와도 같다. 따라서 교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면 그만큼 실력도 검증되어 있어야하고 믿을 수 있어야할텐데, 익명의 평범한 지원서는 그만큼 큰 믿음을 주기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박사는 최소 4년이다! 박사생 만큼이나 교수 역시도 악몽같은 학생과 4년을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교수가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넌 그리고 가져오는 장학금도 없고 게다가 영어도 못하자나ㅠ

2013년 5월 마지막 불합격 소식을 들음과 동시에 나는 또다른 입시를 6개월 후에 앞두게 되었다. 그 사이 나는 과연 지원서의 어느 부분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영어성적? 학업계획서? 그런다고 내가 붙을 수 있을까? 처음 맛본 실패에 나는 모든 것이 불안했다. 다시 도전한다고 내가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난 영어시험을 다시 보지도 않았고, 학업계획서에 크게 매달리지도 않았다. 6개월 후 나는 총 여섯 곳에 지원했고 네 곳에서 합격을 받아 지금의 University of Waterloo로 오게되었다.

준비하는 6개월 동안 내가 고민했던건 영어성적이나 학업계획서와 같은 합격 기술이 아니었다. 그동안 고민했던건 나 자신에 대한 탐구였다.

나는 과연 무얼 연구하고 싶은 사람일까…?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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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냐, 대학원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지난 이야기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에선…

“그렇다면 학습력 말고 진학을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점검해봐야 할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지적호기심이다. 만약 당신이 해결하고 싶은 어떤 문제가 있고, 그 문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적 난이도를 가지고 있으며, 당신이 그것을 이론적,실험적으로 해결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당신은 대학원에 꼭 가야할 사람이다.”

“석사 또는 박사에 대한 선택이 결코 대학 다음에 대학원 또는 회사 대신에 대학원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중략) 중요한 것은 20대 중반, 여러분의 소중한 2년 또는 4년을 도피로서의 선택이나 환상에 기반한 선택으로 결정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학원 생활은 좀더 낫지 않나요?

사람의 성향이 모두 같을 순 없다. 진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대학원이 더 적성에 맞는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직장생활이 천성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헬조선에서 꿀보직이 아닌 이상 도대체 어떤 사람이 헬조선 직장생활과 맞겠느냐만은, 툴툴 거리면서도 매달 따박따박 월급 들어오고, 그 돈으로 배고픈 대학생활과는 차원이 다른 럭셔리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직장생활의 매력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유학을 가지 않는 이상 당신은 여전히 헬조선의 대학원생이란 점이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할 유학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다.) 내가 회사에 다닐 시절,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하던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넌 그래도 돈이라도 받지. 난 과제하랴 보고서 쓰랴… 일은 일대로 하는데 돈은 최저시급 수준이야. 6년 동안 남들 1억원 전세값 모을 때, 서른이 넘어서도 돈 한푼 없는게 대학원생의 처지다.  대학원생이 부럽다고? 넌 그래도 돈 받으면서 노예 생활 하는걸 다행으로 알아.

또다른 내 후배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우리 대학원은 9am to 9pm이에요. 방장인 박사과정 언니는 벌써 박사 6년차인데, 졸업을 못해서인지 히스테리가 정말 쩔죠. 연구실 분위기가 꼭 그 년 여인 한 명 때문에 작살이 난다니까요…할 일도 없는데 금요일 저녁까지 연구실을 지키고 있노라면  정말 ‘내가 여기서 뭐하는건가…’란 생각이 든다니까요. 회사는 그래도 휴가라도 있자나요..ㅠ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한국의 직장생활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들은 직장생활을 ‘돈을 위해 내 자유가 뺏기는 선택’이라고 여기는 반면, 대학원 진학을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주변 환경이 어떠하냐에 따라 당신의 대학원 생활은 헬이 될 수도 있고, 신의 한수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이 둘 사이의 선택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적성의 문제이다. 아니, 적성의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삶을 추구하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그러니 회사 대신 대학원으로의 선택이 꼭 본인의 행복한 삶을 찾아줄 것이란 생각은 버리고 올바른 선택을 내리도록 하자.

결국 어떠한 선택 자체가 당신을 확 바꿔주지는 못한다. 그저 그런 사람이 회사 대신 대학원을 선택했다고, 또는 회사 대신 대학원을 선택했다고 갑자기 막 잘나가고 그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선택”이 당신의 성공을 좌지우지 한다고 생각하면 한번 생각을 다시해보시라. 다시 말하지만 대학원과 회사 사이의 선택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적성의 문제, 아니, 적성의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삶을 추구하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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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야 비로소, 대학 바깥에 더욱 큰 대학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대학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그저 일부일 뿐입니다. 인문학은 내 주변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모든 이들은 존중할 만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고, 누구라도 내 인생의 지도교수가 될 수 있다는 자각, 이러한 삶의 태도를 얻었기에 저는 지금 무척 행복합니다.”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中

회사 경험과 대학원 경험의 장단점

개인적으로 나는 회사 경험과 대학원 경험 모두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회사경험 없이 학교에만 쭈욱 있다가 교수가 된 사람, 또는 대학원에 가지 않고 회사에서 평생을 회사원으로 살다 정년퇴직한 사람들이 많았을테지만, 수명은 길어지고 명퇴는 짧아진 만큼(ㅠ) 앞으로는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하게 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회사에 가도 언젠가는 다시 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학계이 있더라도 창업을 하거나 회사에 합류할 기회가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둘 중에 무얼할까’에 대해 너무 큰 고민하지 말도록 하자. 앞으로 회사를 다니다가 대학원에 가게되든, 아니면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를 가게되든, 길게 봤을 때 두 가지 모두 경험해 볼 가능성이 크니 말이다. 그러니 ‘둘 중에 무얼할까’ 보단 ‘둘 중에 무얼 먼저 해볼까’란 고민으로 바꿔 생각해본다면 조금은 선택의 무게가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다. 특히 석사 진학에 대한 고민은 말이다.

그래도 각각 선택에 대한 장단점은 알고 선택을 해야할 것이다. 회사 생활과 대학원 생활, 각각의 경험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점들은 과연 무엇일까?

회사생활로부터는…

내가 느꼈던 회사생활 경험의 가장 큰 소득은 다양한 어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다들 아마 스무살이 넘었기 때문에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중 스스로 공간을 독립하여 독립경제생활을 하는 사람은 많지않고, 또 부모님의 그늘에 벗어나 온전히 자신의 뜻대로 선택을 하며 인생을 꾸려가는 이들은 더더욱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린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고, 대학원보다는 회사가 본인을 더욱 빠르게 “어른”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어른이 되는 과정이 꼭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말이다.

회사에 들어가면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부모로서, 헬조선의 직장인으로서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눈에 담게될 것이다. 그리고 본인 역시 하나씩 그러한 루트를 하나하나 밟아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인생에 꼭 필요하다. 학생으로만 살고, 비슷한 환경의 동년배들에게만 둘러싸여 살다보면 그만큼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좁아진다. 그러다보면 마치 꼰대 어른들이 “요즘 젊은 것들이 뭐가 힘들다고 그래. 우리 때엔 말야…”라며 이해가 부족한 이야기들을 하듯, 우리 역시도 “아니, 공부하고 경쟁해서 취직하면 되지… 왜 이렇게 앓는 소리만 하는거야?”라며 또다른 꼰대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또한 회사에 가면 가뭄에 콩나듯 존경할만한 인물을 찾을 수 있게되고, 그리고 ‘저 사람 반대로만 살면 되겠다’ 싶은 수많은 counter examples 들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거울처럼 타인의 모습을 통해 비친 내 모습을 통해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나 스스로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먹기도 한다. (물론 악랄한 군대 선임처럼 본인이 또다른 사회 암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좀더 나은 사람, 좀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분들이라고 믿겠다.) 당신이 꿈꾸는 세상이 꼭 남을 짓밟고 올라가 나만 편하게 사는 세상이 아니라면, 나는 수많은 example과 counter example들을 보며 자신의 태도를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회사에 가면 배울 것이 너무나도 많다. 아 참, 시간의 소중함!을 빼먹을 뻔 했다. 젊었을 땐 그렇게 펑펑 남아돌던 시간이었지만, 회사에 종속된 이후로는 2~3일 휴가 붙이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워진다. (방학은 꿈도 못꾸고 말이다..ㅠ) 그렇게 시간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하다보면 더욱 부지런하게 살게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쪼개 취미를 키우고, 어떤 사람은 시간을 쪼개 사회 봉사를 한다. 이 모든게 의미없는 시간 블랙홀 속에 의미있게 살아보려는 발버둥들이다.

이 외에도, 회사를 다니면 기업들이 어떻게 조직을 꾸려 어떠한 포지션에서 돈을 벌고있고 있는지도 알 수 있고, 직장 내에선 누가 뼈 빠지게 일을 하며 누가 무전취식을 하고있는지도 알 수 있으며, 팀플레이란 무엇인지, 갑을관계란 무엇인지, 착취란 무엇인지, 인간관계란 무엇인지 등등 정말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경험해보시기 위해 회사로 가는 것을 추천해드리고 싶다. 꼭 ‘너도 한번 당해봐라’란 심정은 아니다…;;

너무나 암울한 이야기만 한 것 같아 긍정적 측면도 이야기 해야겠다.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회사를(조직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회사를 통해 개인으로서는 하지 못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 개인 아무개였으면 못했을 거대한 프로젝트를 대기업 OOO팀이란 이름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프로젝트를 위해 대학원에선 다루기 힘든만큼의 예산을 집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아실현에 덧붙여지는 윤택한 경제생활과 높아지는 사회적 지위는 매력적인 덤이다. 그러니 회사에 간다면 회사를 본인의 꿈을 위해 적극적으로 이용하라! 나는 개인과 회사의 성장그래프만 맞아 떨어진다면, 회사야말로 돈도 벌고 자기계발도 할 수 있는 매우 유익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정장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멋있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겨드랑이에 땀차고, 앉아있기 불편하고 갑갑하고...ㅠ 자율복장 출근이 최고다ㅠ
정장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멋있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겨드랑이에 땀차고, 앉아있기 불편하고 갑갑하고…ㅠ 자율복장 출근이 최고다ㅠ

대학원으로부터는…

한편 대학원(석사) 생활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은 아마도 “논문을 읽는 습관“이 아닐까싶다.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했듯 대학원 생활을 통해 본인의 일반적인 지식수준이 향상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해당 분야 빼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가 될 확률이 더욱 크다. 결국 대학원의 장점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닌, 바로 지식을 얻는 방법에 있다. 그리고 어떠한 학문적 문제가 주어졌을 때 문제를 정의하고, 조사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적용하는 문제해결 방법에 있다.

처음에 대학원에 들어가면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연구라는게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몰라 그저 ‘수업을 들으면 되는건가?’라며 어리둥절해 있기 쉽다. 하지만 대학원 과정을 거의 마칠 때 쯤이 되면 ‘OOO에 대해선 어떤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을까?’라는 의문에 대해 즉각 관련 연구를 조사하고, 연구의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아닐 수도 있다…;; 이를 습관으로 잘 체화시키면 남들은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할 때, 여러분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논문을 통해 지식을 접할 능력을 갖추게 될 지도 모르겠다.

대학원 생활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한가지 더 꼽자면 “본인이 주도하는 삶”을 꼽고싶다. 물론 이 역시 개인차가 크다. 어떤 사람은 회사를 다녀도 본인이 주도하는 삶을 사는 반면, 어떤 사람은 대학원에서도 지도교수나 사수의 명령에 이끌려 살곤 한다. 하지만 경향으로 봤을 때 대학원이 조금더 넓은 자유와 선택의 폭이 주어지며,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에 따른 편차가 큰 것이 사실이다.

필자의 케이스가 약간 극단적인데, 필자는 석사(서울대) 시절과 박사(워털루대) 시절을 통틀어 단 한번도 출퇴근 시간을 강요당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저녁에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기도 하고, 굳이 연구실에 나갈 이유가 없다면 집에서 논문을 보기도 했다. 근데 사실 당연한거다. 어차피 이 과정은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고 그 결과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누구의 눈치를 본단 말인가. 그렇기에 내가 시간과 장소를 어떻게 보내든, 내 스스로가 판단하고 결정하고 평가한다. 다만 나태해질 위험도 있고, 일 중독이 될 위험도 있으니 이를 잘 조절해야하며, 그렇게 본인이 주도하는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 대학원 생활이다.

Choice

 

선택하자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대학원 3~4학년이 되었든, 아니면 현재 회사를 다니며 대학원을 고민하고 있든, 아마도 회사와 대학원 사이의 선택을 고민하고 있으실 것이다. 여러분께 글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본인의 행선지는 회사인가, 아니면 대학원인가?

사람마다 정답이 다르기에 제가 정답을 드릴 순 없겠지만, 선택에 있어 조금의 편견 깨고 선택을 하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아래와 같이 몇가지 선택 원칙들을 적어봤다.

  • 엉덩이가 불편한 쪽으로 선택하라.

모두들 본인이 선택해서 현재 상태까지 왔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선택하지 않아서 default(기본 선택옵션)를 따라가다보니 현재에 와있는 경우가 더욱 많을 것 같다. 관성을 이기시라. 다시말해, 현재 본인이 학교에 있다면 “학교”라는 선택이 더 쉬울 것이고, 회사에 있다면 “회사”라는 선택이 더 쉬울 것이지만, 이러한 편향(bias)을 없앤 상태에서 선택하시란 말씀이다. 이러려면 약간은 엉덩이가 더 불편한 쪽으로 선택해야 공정한 선택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 환상을 깨고 선택하라

위에서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라는 대학원에 대한 환상을 깨고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다. 석사, 박사 타이틀을 달면 삶이 더욱 윤택해질 것이란 환상 역시 마찬가지다. 기회비용만 계산해보더라도 대학원 생활이 꼭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란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으며, 큰 뜻 없이 대학원에 갔다간 몇년 후 ‘내가 왜 이걸 전공했을까’라는 후회가 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환상을 깨고 냉철하게 판단하고 선택하자. 본인은 진짜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고 싶은가?

  • 대안이 아닌 최선으로서의 선택을 내려라

어떤 회사원이 창업을 결심했다고 하자. 그런데 결심의 이유가 ‘회사 생활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라고 한다. 과연 이 회사원이 창업한 회사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만큼 선택의 동기나 목표가 강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대한 선택 역시 마찬가지이다. ‘회사생활이 싫어서…’라거나 ‘난 아직 준비안된 것 같아서…’와 같은 이유는 기피의 이유이지 선택의 이유가 아니다. 기피의 이유 말고 진짜 이유를 찾아봐라. 아마 진짜 이유를 찾으려면 정말 내면을 깊게깊게깊게 성찰해야할지도 모를 것이다.

  • ‘될놈될’의 교훈을 기억하라

환경이 나의 전부를 만들어주진 않는다. 현재의 환경에서도 잘 해나갈 수 없다면, 새로운 환경에서도 잘 해나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무언가를 해나가는 주최는 본인 자신이다. 그러니 지금 진로에 변화를 꾀하려는게 혹시 ‘환경 탓’ 때문은 아닌지 의심해보자. 내가 ‘될놈될'(=될놈은 뭘해도 된다.) 중 한 명이라면 지금의 환경에서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하고, 더 좋은 선택에선 더 크게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 ‘환경은 거들 뿐’ 이란 것을 유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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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라는 소설이 있다. 이는 “과학논문작성 과정에 대한 고찰“이란 글로도 유명한 KAIST 전산과 박사과정 김창대님의 웹 연재소설인데, 대학원생들의 찌질하고 우울한(?) 삶에 대해 사실적으로 그리고있어 많은 대학원생들에게 공감을 사고있다. 사실 나는 이 연재소설을 읽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글의 제목만으로도 나는 그 이야기가 다루는 고민들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이 말은 아마도 대학원을 고민하고 있을, 또는 현재 대학원에 다니고 있을 많은 사람들이 절절히 되내였던 물음이었을 것이다. 과연 나는 박사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 과연 나는 공부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 크고 작은 좌절을 겪을 때마다 대학원생들은 늘 내가 맞지않는 옷을 입으려 하고 있는건 아닌지 의심부터 들곤 한다. 내가 박사를 꿈꿔도 되는지, 그것은 정말 많은 고민이 필요한 선택이다.

프롤로그에서도 언급했 듯, 석사 또는 박사에 대한 선택이 결코 “대학 다음에 대학원” 또는 “회사 대신에 대학원”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대안으로서의 선택 도피로서의 선택 이 최악은 막아줄 수 있을지언정 최선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있다. 물론 내 인생이 언제 최선의 길만을 걸었겠냐 만은 – 입시도 실패, 취업도 실패했었는데 말이다 – 그렇다해도 이렇게 똥차만 피하다 인생을 끝낼 순 없다. 지금부터라도 최선의 선택을 해보자. 중고등학교 때 좀 놀고, 대학교 때 좀 덜 성실하게 살았다고 해서 내 남은 인생을 모두 똥빛으로 그릴 이유는 없다. 나도 할 수 있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출처)

나는 공부를 해도 되는 사람인가요

대학원을 가려할 때 가장 먼저드는 생각은 아마 ‘내가 공부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공부를 더 해볼까 생각하니 갑자기 고등학교 때부터 날고기던 공부머신의 얼굴이 떠오르고, ‘넌 정말 공부로 밀고 나가야 해’라고 믿고 있었던 우리과 과탑 친구가 갑자기 취업 스터디로 돌아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에 비해 내가 시험 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얼른 공부를 때려쳐야겠다’는 괴로움 뿐이었고, 성적은 받았으되 그 과목을 내가 잘 알게되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보다 성적 좋은 애들이 다 취업준비 한다는데… 내가 어떻게…

십수년 간 상대평가의 프레임에서 배워온 우리들에게 이러한 비교 판단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건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 기억하도록 하자. 우리과 과탑이 대학원에 가건 안가건, 옆집 순이가 박사를 하건 안하건, 그건 내 인생의 선택에 아무 상관없는 일들일 뿐이다. 어차피 경쟁 아니냐고? 아니다. 대학원은 이제껏 봐왔던 ‘동일한 문제를 동일한 시간에 풀어 제출하는 것’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과정들이다. 따라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꼭 연구를 잘하라는 법도 없다. 그러니 지레 겁먹지 말고 희망을 갖도록 하자.

석사/박사과정을 한다는 건 ‘공부를 하는 것’이 맞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연구생활의 일부일 뿐이다. 오히려 내가 석사/박사과정을 통해 얻는 가장 소중한 경험은 그 기간 중 공부를 했던 내용들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세우고 그것을 해결해갔던 일련의 과정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부’는 그 과정 중 아마 (논문으로 따지자면) introduction(도입)이나 related work(관련 연구조사) 부분일 뿐일 것이다. 물론 훌륭한 introduction과 related work 조사는 연구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훌륭한 논문을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보단 problem formulation(문제 정의), method(방법론), experiment/evaluation(실험)이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연구의 본질은 제대로 된 문제를 제대로 된 접근으로 푸는 것이다. 그러니 단지 학습을 대학원 생활의 전부로 생각하진 말자. 학부 때 학습에 대한 비중이 어림잡아 80% 였다고 한다면, 석사 때는 40%, 박사 때는 아마 20%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밤을 새는 일은 많을 수도 있지만, 공부 때문에 밤을 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밤을 새는 일은 많을 수도 있지만, 공부 때문에 밤을 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습력” 말고 진학을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점검해봐야 할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지적호기심이다. 만약 당신이 해결하고 싶은 어떤 문제가 있고, 그 문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적 난이도를 가지고 있으며, 당신이 그것을 이론적/실험적으로 해결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당신은 대학원에 꼭 가야할 사람이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면,

  • 나는 로봇을 보고 ‘로봇(인공지능)은 왜 이렇게 바보 같을 수 밖에 없는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했고, (문제 제기)
  • 단순히 수많은 “if-else”로 해결하기보단, 진정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로봇을 만들고 싶었으며, (기술적 난이도)
  • 이를 위해 학자들은 어떤 고민들을 해왔는지 알고 싶었고 내 아이디어와 수학적 배경으로 이 분야에 기여를 하고 싶었다. (지적호기심과 기여 욕구)

그래서 나는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도 없는데 석사/박사과정 내내 교수님이 던져준 주제에 대해 ‘이건 내가 흥미로워야 하는 학문이다’라며 최면을 걸고 있어야한다면 당신은 아마 대학원에서도 성공적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타의에 의한 행동은 늘 자의에 의한 행동에 하위한다.  그렇기에 성공적인 연구생활을 위해선 강한 동기(motivation)가 필수적이며, 이것이 석사/박사과정 모집글에 “self-motivated”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공적인 대학원 생활을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더욱 강렬하게 궁금해하고 파고들어라. 그 호기심 만이 당신에게 의미있는 경험과 좋은 성과를 가져다 줄테니 말이다.

Self-motivated
A self-motivated person.

환상

마음 같아선 ‘돈을 벌고 싶은 사람 모두 OUT’, ‘취업이 목적인 사람 모두 OUT’ 등 학문적 목적 외에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분들은 모두 부적격자로 몰고싶은 맘도 있다. 올 단두대. 하지만 ‘석사 학위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회사가 연구진은 모두 석사 이상을 요구한대서…’ 등의 현실적 부름을 모두 외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또한 위에 대학원 진학을 위한 이상적인 조건들에 대해 언급하긴 했지만, 자신의 지적호기심을 탐색할만한 “낭만적” 생각을 학부 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들 성적관리하기 바쁘고, 스펙 관리하기 바빴을텐데 말이다.

대부분은 어영부영 지내다보니 벌써 3, 4학년이 되었고, 갑자기 맞딱뜨린 사회의 거대한 벽 앞에서 이리저리 찾아본 돌파구 중 하나로 “대학원”이라는 선택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3 때도 학과선택에 대한 충분한 고민을 하지 못했듯, 대학원 진학에 있어서도 많은 고민을 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환상’에 기반하여 선택을 내리진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CEO가 되고싶어 경영학과를 간다든지… CEO의 조건은 경영학과가 아니라 회장님 아빠가 아니던가.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데 있을 수 있는 몇가지 환상이나 오해를 살펴보도록 하자.

학부 공부로 뭘 알겠어. 석사 정도는 해야 뭘 아는거지…

전혀 아니다. 석사를 해도 모른다. 박사를 하면 아냐고? 사실 박사를 해도 모른다. 왜냐하면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담아야 할 그릇의 크기는 점점 커지는데 반해, 내가 채우는 속도는 좀처럼 빨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망각 속도는 위대하다. 박사과정 쯤 하고있으면 아마 학부 때 배웠던 과목들은 거의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말해 만약 당신이 막연한 일반 지식의 전체적 향상을 위해 대학원을 택했다면, 그 목적은 쉬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대학원은 표족한 침을 만드는 곳이지 넓은 바다를 만드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교수되고 테뉴어 받은 뒤 해보시라능… 

석사나 박사하면 아마 취직은 더 잘될거야

전혀 아니다. 내가 전문분야로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많은 기업들과는 업무 적합성(fit)이 어긋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괜히 대기업에서 학부졸업생들 뽑아다가 재교육 시키는 것이 아니다. 석사/박사는 각자의 전문 분야가 생기기에 그것을 살리기 위한 길은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으며, 여기엔 바늘구멍 같은 경쟁이 기다릴 수도 있다. 특히 박사 학위 후 ‘포닥’이라 쓰고 일용연구직이라 읽는다을 떠돌며 고용불안에 떨고있는 이들 중에는 ‘차라리 박사하지말고 취업을 할 걸’이라며 후회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석사나 박사 학위가 취업에 꼭 악영향만 주는건 아닐테지만, 이것이 진학의 큰 이유가 되는 건 위험한 일일 것이다.

일단 버티다보면 학위는 나올거야

석사는 ‘…그럴지도…’, 박사는 ‘전혀 아니다’. 석사는 학교에 따라 물렁하게 봐주는 곳도 있는 것 같다. 현대 들어 학생들의 교육기간이 점점 늘어나며 석사과정을 학부의 연장으로 보는 시각도 많이 늘고 있기에, 수업을 듣고 형식을 갖춘 논문을 제출하면 다들 졸업을 시켜주는 것으로 알고있다. 또한 유럽의 경우엔 논문을 써야하는 석사학위와 수업만 들어도 되는 석사학위가 따로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이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물렁하게 얻은 학위는 내게 물렁한 연장책 만을 쥐어줄 뿐 내게 큰 발전을 안겨다줄 순 없기에, 그러한 ‘무사안일’이 내 목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박사학위는 전혀 얘기가 달라진다. 박사학위는 논문자격시험(일명 퀄, qualifying exam)을 통과해야하고, 박사 학위논문 제출과 이에 대한 디펜스 과정을 거쳐야하며,  졸업 요건으로서 SCI 저널논문을 요구하는 등 그놈의 SCI 시간만 버틴다고 박사학위를 주지는 않는다. 박사과정에서 요구하는 학점을 다 이수할 경우 이를 “박사 수료”했다고 보는데, 사실 이 이후의 과정이 험난해 박사 수료 후 중도 포기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주변에서 “박사수료”란 경력을 많이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시간만 버티다 보면 학위가 나온다’라는 오해는 하지 말도록 하자.


이 외에도 사실 석사/박사에 대한 오해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잘 기억나지 않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차차 풀어보기로 하자. 중요한 것은 20대 중반, 여러분의 소중한 2년 또는 4년을 도피로서의 선택이나 환상에 기반한 선택으로 결정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선택에는 좀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대학원 생활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연재들이 그러한 탐색의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에 나눈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공부와 연구는 다르다.
  • 그러니 공부 못한다고 쫄지마라.
  • 근데 공부 못한다고 연구를 잘한다는건 아니잖니;;;
  • 중요한건 지적 호기심이다.
  • 궁금하냐? 그럼 해라. 안궁금하냐? 그럼 하지마라.
  • 환상만 갖고 결혼하지마라 대학원에 가지마라
  • 석사/박사가 보장해주는 건 아무 것도 없다.
  • 줄 수 있는 건 이 노래밖에 없다 문제해결 경험이다.
  • 풀고자 하는 문제가 있다면 대학원에 도전하라.
  • 그렇다고 꼭 성공한단 뜻은 아니고…;;;

기승전 나도몰라…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이시간에 하기로 한다. 주간 폭탄 돌리기, 다음 글은 윤섭님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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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거창한 이야기의 시작

우리는 인생을 산다.

하지만 그 인생이 온전히 자기의 것이 되기까진 참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만약 흔히 말하는 “어른”의 정의가 “우리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가고 책임지는 단계”를 뜻하는 말이라면, 아마 대학원을 고민하고 있는 많은 분들은 아직 어른이 되지못한 미생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아직 우린 어른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쓰려는 글은, 바로 그 어른이 되기위해, 다시말해 독립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고 이끌어 갈 주체가 되기위한 한 과정으로서 대학원 생활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하는 것이다.

사뭇 거창했던 도입부에서도 읽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이런 글을 시작한 이유는 단지 사람들에게 ‘좋은 대학원에 진학하는 팁’ 또는 ‘석사/박사 학위를 잘 받는 팁’을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이 글들을 모두 읽고난 뒤엔 당신이 좋은 대학원에 진학할 팁을 얻었을 수도 또는 수월하게 석사/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팁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이 글을 읽으며 스스로 고민하던 과정 중에 얻었을 부산물일 뿐, 그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님을 밝혀둔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보려 한다.

물론 그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주제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며 그 부담과 한번도 정면으로 맞서서 질문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남들이 세워놓은 “통과의례”의 관문에만 허덕이다 늙어버릴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후엔 대학교를 가고, 대학교 후엔 대학원을 가고, 대학원 후엔 회사를 가고, 입사 후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사고, 자녀를 입학시키고….. 이렇게 눈 앞에 펼쳐진 통과의례만 해결하다보면 도대체 내가 내 삶의 주인이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후회가 밀려온다. 난 사회가 살아가라는 답안에 떠밀려 살기 바빴단 생각에 든다. 내가 떠밀려 갔던 곳엔 나처럼 떠밀려 온 남들과의 치열한 경쟁이 늘 기다리고 있었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느라 나는 나를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

우리는 적어도 여러분의 연구 인생에서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연구 생활은 사실 인생의 축소판이다. (사실 연구 생활도 인생의 일부이니 굳이 구분지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인생에서도 그렇듯 대학원 생활에서도 수많은 모습의 선택, 갈등, 도전, 성공, 실패와 마주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대학원생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대학원 생활을 해가는 모습이 그들이 삶을 대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많은 학생들은 “대학 다음에 대학원” 또는 “회사 대신에 대학원”의 통과의례로서 떠밀려 왔으며, 대학원 생활 속에서도, 그리고 대학원 생활이 끝난 이 후에도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대부분 그들은 불안함에 스스로를 또다른 통과의례에 몰아넣곤 하는데, 나는 이러한 쳇바퀴가 인생을 주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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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의 삶이 끝이 없다…

누가 이렇게 살라고 시켰을까

생각해보면 학창시절엔 부모님과 선생님의 기대가 우릴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고, 이후엔 치열한 경쟁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사회는 줄에서 이탈한 자들을 낙오자라 불렀고,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긴 자만이 달콤한 빵을 나눠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대학원에 와서까지 우리가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늘 떠밀려왔던 과거와는 달리, 나는 언젠가는 어른으로 거듭나야 했으며, 독립적인 주체로서 내 삶을 장악하고 컨트롤해야 했다. 나는 대학원 속에서의 삶의 변화가 그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진 누군가가 내주는 문제를 열심히 풀어 누군가가 평가해주길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턴 다르다. 스스로 문제를 찾고 스스로 푼 뒤 그것을 스스로 평가하는 삶으로 바뀌어가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이 문제를 풀어야하는가’이다.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이 문제를 풀면 남들에게 고용당하기 쉬울까봐…? 그 이유만으론 충분치 않은 것 같다.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의 대학원 생활이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그래야 내가 늘 재미있게 연구에 달려들 수 있을 것 같고(self-motivated), 그래야 더 좋은 성과도 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인생이 그렇다. 내 인생의 미션을 내가 스스로 주지않는다면 또 누가 줄 수 있으랴. 만약에 우리의 미션을 남들이 주고있는 상황이라면 나는 세상의 부속품, 회사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것을 탈피하기 위해 대학원에 온 것이라면 부디 주체적인 대학원 생활 하루하루를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글이 그러한 변화에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우리는 대학원 진학부터 졸업까지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하게될텐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들은 우리의 인생에도 적용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대학원 생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 역시 대학원 생활의 꿀팁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자세를 이야기해보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거창한 제목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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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년 만에 학사모를 쓰던 날

나에 대하여…

함께 글을 쓰시는 다른 두 분(최윤섭님, 권창현님)은 각자 소개할 것이라고 믿고 내 소개를 해보려고 한다. 소개는 셀프. #살아나는_드립력

나는 2002년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에 입학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아서 입학했다. 겸손의 말이 아니다. 나는 내 스스로 가장 밑바닥 성적으로 서울대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도 대학교 1학년 생활을 하며 학생들의 높은 수준에, 그리고 나의 저급한 수준에 수많은 좌절을 해야만 했다. 미적분학 드랍은 기본. 우여곡절 끝에 돌고돌고돌고돌아 결국 6년 만인 2008년에 졸업을 할 수 있었는데, 그 땐 이미 재수강으로 1학년 성적표가 갈아 엎어진 후 였다.

나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가만히 앉아 책 읽는 것을 매우 싫어했고 (‘내가 학교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도 억울한데, 집에 와서까지 왜?’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지금도 책 읽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지금도 늘 ‘나는 과연 공부를 해도 되는 사람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왜냐하면 공부는 나의 취미도, 특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사과정의 길을 택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텅 빈 채로 떠벌리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실 지금도 이미 충분히 떠벌리고 있다. 지금도 떠벌리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공부마저 안하고 있었다면…. 나는 아마 텅빈 깡통으로서 내 스스로를 사기꾼이라며 자학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2008년부터는 동대학원에서 석사를 시작했다. 공대에서 수학을 가장 잘한다고 알려진 서울대 박종우 교수님 (일명 Frank Park)의 지도 하에 공부를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수학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수학 잘하는 사람들을 동경 하기에 계속 수학책을 붙잡고 있어보려 했다. 그러나 역시 본성은 달라지지 않는지 나는 늘 책의 앞페이지만 뒤적이고 있었다. 석사 때의 연구주제는 로봇의 모션 계획(motion planning)에 관한 연구였다. 이 주제는 외국에선 컴퓨터공학과(CS)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주제인데, 그래서 나는 기계과도 아니고 컴퓨터과도 아닌 애매한 사람이 되어 졸업을 하였다. (참고로 난 컴공을 부전공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난 ‘왜 vim 같은 걸 쓰라고 하는거야?’라는 푸념 외엔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메멘토)

2010년부터는 LIG넥스원에 전문연구요원으로 입사해 국방로봇을 개발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말이 대기업이고 말이 신사업이지, 선임 한 분과 박사님 한 분, 그리고 신입사원 두 명이 이끌어가는 로봇팀은 새로 생긴 구멍가게와 다름 없었다. 그 “일당백”의 조직에서 나는 끊임없는 야근과 특근을 반복해야 했는데, 덕분에 그 때가 바로 내 삶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 회사는 내 길이 아니구나…. 이후 나는 2012년 한국과학기술원(KIST)으로 자리를 옮겼고, 회사에서 하던 외골격로봇(exoskeleton, 일명 아이언맨) 연구를 벗어나 내가 늘 공부하고 싶던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2014년, 현재의 워털루 대학(University of Waterloo)에 입학을 하였다. 나폴레옹이 죽었던 그 워털루 전투의 그곳이 아니라, 그냥 캐나다의 토론토 옆 소도시 워털루이다. 참 더럽게 재미없는 도시다.

내가 걸어온 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나는 기계공학과에선 컴퓨터공학에서 다루어지는 연구를 했고, 회사에선 다시 기계설계를 맡았으며 현재는 전기공학부에서 기계학습을 하고있다. 도무지 일관성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 안에선 일관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믿는 철학을 향해 연구를 해왔고, 비록 지금까지의 성과는 미미하지만(ㅠㅠ) 곧 폭발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쯤 되면 의심해 볼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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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세 명의 저자가 처음으로 책 출판에 대한 얘기를 나눴던 모습.

사실 고작 박사과정생인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될지 많이 조심스러웠었다. 왜냐하면 내가 느껴왔던 것들이 편협한 시각일 수도 있고, 또 난 아직 대학원 생활 중이기에 내 대학원 생활의 끝이 안좋은 결과로 귀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리 없어ㅠㅠㅠㅠ 그렇기에 내가 앞으로 할 이야기는 정답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해 주셨으면 좋겠다.

하지만 애초부터 정답을 말하려 했다거나 또는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느 위치에서든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라고 믿는데, 나 역시도 현재 박사과정의 위치에서 분명 기여할 부분이 있다고 믿는다. (아마 그 중 하나는 내가 청년들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도 아재는 아재) 따라서 나는 나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풀어갈 것이며, 비록 나의 생각이 조금은 부족해보이고 조금은 틀린 지점이 있더라도, 부디 있을 수 있는 다양한 생각 중 하나로서 너그러이 받아들여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드디어 긴 항해를 시작한다. 거창한 시작이다. 비록 쉽지않은 여정이 되겠지만 기나긴 여정 끝엔 나도 성장해 있고, 다른 작가님들(=박사님들)도 성장해있고,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도 성큼 성장해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드디어 시작.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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