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안정적인 삶, 그런 거 없다.

“좀처럼 글이 잘 나오질 않네요…”

지난 3년의 집필 과정 중 절반은 이런 고통 속에서 겨우 글을 짜냈었다. 지금 쓰는 에필로그 역시 마찬가지다. 에필로그로 어떤 글을 써야할 지에 대해 지난 한달을 고민했는데, 결국 좋은 주제를 찾지 못해 쓰는 글이 ‘좀처럼 글이 잘 나오질 않네요’란 글이다. 참으로 한심하다.

근데 어쩌면 이 말이야 말로 나의 지난 3년을 가장 잘 표현하는 문장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인생을 표현하는 말 역시 ‘좀처럼 논문이 잘 나오질 않네요’, ‘좀처럼 실험결과가 잘 나오질 않네요’, ‘좀처럼 성적이 잘 나오질 않네요’, ‘좀처럼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질 않네요’ 등, 늘 ‘좀처럼 잘 ㅇㅇ되지 않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참으로 답답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한심하고 답답한 상태가 인생의 본성(nature)이고 기본 모드(default mode)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어쩌면 이런 지극히도 자연스런 인생의 본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이룰 수 없는 환상만 좇다 보니 이리 불행한 건 아닌가 싶다. 동화 속 신데렐라만 꿈꾸는 소녀가 어찌 현실해서 행복할 수 있겠는가? 신데렐라도 환상이고, 일이 술술 풀리는 인생 역시 환상이다. 하는 일마다 턱턱 막히고,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고꾸라지는 것이 인생의 본성이고 기본 모드다. 그러니 우리가 ‘별일 없이 산다’는 친구를 부러워하는 것 같다.

불안정한 현실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좋은 학벌, 좋은 직장, 좋은 결혼이 나를 안정적인 미래로 이끌어 줄 거라 기대한다. 그래서 수많은 청년들이 의대 진학을 희망하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안정적인 사람과의 결혼을 꿈꾸나 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내 인생에 영원한 안정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왜냐하면 불안정이 인생의 본성이고 기본 모드이기 때문이다. 입시경쟁에 고통 받는 고등학생은 좋은 대학만 가면 고민이 다 해결될 거라 믿겠지만, 고민들은 그저 다른 고민들로 대체될 뿐, 대학에 간다고 고민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직장 역시 마찬가지다. 힘겹게 취업의 바늘구멍을 뚫었다 해도 이내 “퇴사”를 꿈꾸는 것이 한국 직장인의 현실이다. 결혼 역시 마찬가지인데, 안정된 삶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결혼은 더 많은 사회적 역할의 저글링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들곤 한다. 그 속에서 개인의 꿈을 포기하는 경우도 여럿 봐왔다.

안정은 환상이다. 불안정이 디폴트다.
술술 풀리는 인생은 환상이고, 뭐든 턱턱 막히는 인생이 디폴트다.

그러니 지금 삶이 불안정하다고, 지금 삶이 하나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너무 좌절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소셜미디어 속 사진에 속아 못 느낄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시궁창 같은 현실에 살고 있고, 누구나 불안한 미래와 싸우고 있다. 필자의 삶도 예외가 아니다.

중요한 건 탈출이 아니라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일이다. 행복한 삶은 안정된 삶,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삶이 아니라, 불행과 함께 공존할 줄 아는 삶이다. 그러한 삶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을 우리는 현명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대학원 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행복한 대학원 생활은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이상적인 나날들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꽃을 피울 줄 아는 현명한 처신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괴로운 현실 속에서도 모두 한낱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집필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3년이 흘렀다. 집필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고, 아직까지도 내가 대학원생일 줄 몰랐다. 처음 집필을 시작할 땐 ‘내 주제에 무슨 조언을!’이라며 염치 모르고 글을 쓰는 내 자신을 한없이 부끄러워 했는데, 내 역할이 조언이 아닌 “공감”과 “위로”라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의 서두에도 밝혔지만 이 책의 목적은 누군가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것에 있지 않다. 나는 그러한 정답을 알고 있지도 않고, 쓸 자격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공감하고 위로해드리고 싶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면 내겐 그 만큼의 보람이 또 없을 것 같다.

“지금껏 잘 살아오셨고, 지금도 잘 하고 계신다. 그러니 너무 불안해 말고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잘 해 나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이 그런 당신께 조그만 응원이 되었으면 한다. 모두 화이팅!”

 

책은 4월에 곧 출간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엄태웅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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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가 곧 내 삶이 되는 ‘굿 라이프’의 길

최근 ‘굿 라이프’라는 행복에 관한 교양서를 읽었다. 연구에 바쁜 나날에 이 책을 꺼내든 이유는, 첫째, 좀더 행복해지고 싶어서였고, 둘째, 저자인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님이 내가 너무나 존경하는 은사님이었기 때문이었다. 주위의 권유로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으나 결국 본인이 하고싶은 심리학을 하기위해 서울대 심리학과로 재입학을 하셨던 최인철 교수님. 본인이 원하는 심리학 공부를 시작한 교수님은 이후 사회과학대 전체 수석 졸업에 이어 훌륭한 학문적 성과를 이어 가셨고, 결국 서울대 교수가 되어 지금까지도 연구와 강의, 인품까지 완벽한 나의 워너비 롤모델로 활약 중이시다.

(여담이지만, 원래 고등학교 시절 심리학과 진학을 고민했던 나는 1학년 때 심리학개론 첫 수업에서 이 얘기를 듣고 ‘교수님 저도 자퇴할래요’라며 상담을 자처했고, 교수님은 내게 ‘공대 내에서도 인공지능과 같은 학문으로 충분히 심리학을 연구할 수 있다’라며 치기어린 나를 돌려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현재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다.)

11년 만에 책을 출간한 교수님은 서문에서 “2007년에 쓴 ‘프레임’이 다른 학자들의 연구를 재해석한 ‘리메이크 노래’였다면 ‘굿 라이프’는 저자가 지난 10년간 한 연구에 기초한 ‘자작곡’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남의 연구결과로 강의를 하고있는 연구자들 대부분이 느끼는 공통된 감정이 아닐까 싶다. 나도 남의 연구만 번지르르 늘어놓는 사람이 아닌, ‘자작곡’으로 노래하는 사람이 되리라…  대중서 역시도 누구처럼 강의로 밥 벌어먹기 위한 얕은 계략이 아닌, 10년의 연구로부터 얻은 지혜들을 세상과 나누고자 하는 학자적 행위로서 하고 계신데, 필자 역시도 그렇게 소통하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해본다.

서론이 좀 길었는데, 오늘은 저자가 책에서 제시한 행복에 대한 이야기 중 대학원생의 행복에도 적용할 말들이 있는 것 같아 그 중 몇몇 구절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대학원 생활도 소중한 인생의 나날들인만큼 부디 행복 안에서 함께 해 나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많은 좋은 것 중에 행복처럼 갈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경계와 의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드물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너무 행복할까 봐’ 걱정한다. 너무 창의적이 될까 봐 걱정하지 않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대학원생들은 참 걱정이 많다. 할 일이 많으면 너무 많아서 걱정, 할 일 없이 놀고 있으면 ‘너무 나태한거 아닌가’라며 무능감과 죄책감에 몹시 불안해 한다. 내 삶과 남의 일의 구분이 확실한 직장생활과는 달리 대학원 생활은 그 경계가 모호하여 일상이 무너지기 쉽기에, 늘 할 일을 집에 가져오고, 낮과 밤, 평일과 주말이 구분 없는 생활을 하지만, 늘 해야할 만큼 이루지 못한 것 같아 죄책감이 드는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정말로 낭비하고 있는 시간들은 열심히 집중하고 있는 시간도, 너무 열심히 놀고 있는 시간도 아닌, 연구해야 하면서도 놀고싶고, 놀면서도 연구걱정을 하고 있는 그런 시간들이 아닌가 싶다. 늘 ‘바쁘고 시간없다’ 말하지만 정말로 부족한건 시간이 아닌 나의 성실함과 집중력이다. 지금 연구 안하고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죄책감 갖지 마시라. 밀도있게 행복했다면 그건 밀도있게 연구한 것만큼 가치있는 시간을 보낸 것이니까. 탓해야 할 것은 모니터 앞에서 걱정만 하다 날려버린 아까운 시간들이다.

[관련 글] 내게 뒤쳐질 수 있는 행복을 하락하라

 

행복감이 낮은 학생들이 행복감이 높은 학생들보다 자신이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했다. 행복감이 높은 학생들은 그 일을 자신이 좋아하면, 잘하는지 여부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면 그 일을 자신이 얼마나 잘하는지는 애초부터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의 고민은 짬뽕과 자장면 사이의 고민만큼이나 해묵은 고민거리이다. 정답은 없다. 아니, 모두에게 적용되는 공통된 정답은 없고, 개인마다 다른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의 어떤 optimal point들만이 존재한다. 대체적인 의견은, ‘좋아하는 쪽’을 선택한 이들이 행복감이 높고, 일에 대한 몰입도가 좋으며, 그것이 결국 ‘잘하는 쪽’만큼 혹은 그 이상의 성과물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록 성공한 재능러들의 꿈같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필자는 ‘결과에서의 승리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과정에서의 승리를 만끽하는 건 자기 하기 나름이다’ 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연구 주제에 대해서도 ‘내가 잘하는 것을 쫓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궁금해하고 하고싶은 것을 쫓고 있는 것인지’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책에서도 밝혔듯, 행복감이 높은 사람들은 그 일을 좋아하면 잘하는지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반면, 행복감이 낮은 사람들은 그 일을 잘하는지에 과도하게 매달린다고 한다. 혹시 본인의 연구에 있어서도 즐거움은 잊고 잘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약 내가 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연구주제는 내가 즐기고 몰두 할 수 있는 주제인가? 만약 이제껏 잘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연구방향을 잡고 있었다면 약간은 본인이 즐기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보자. 내 연구는 내 행복 속에서 꽃 피워야 하니까.

“정말 좋아하는 연구 하고 계신가요?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보다 얼마나 하고싶었던 주제인지가 더 중요한거 맞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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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즐기는 자가 쓴 논문은 그 즐거움이 논문에서 묻어난다. 즐기자.

 

인간은 의미를 향한 의지가 충만한 존재다. 의미는 우리 삶에 질서를 부여할 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주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켜주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중략)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고 느낄 때, 인간은 의미를 경험한다.

좋은 일이란 직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해답을 제공해주는 일이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는 삶, 즉 소명이 이끄는 삶이 굿 라이프다.

창작물에선 늘 창작자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고흐의 그림에선 고흐를 느낄 수 있고, 김동률의 노래에선 김동률을 느낄 수 있다. 만약 창작물에서 창작자의 향기를 느낄 수 없다면 그건 창작물이 아니라 공산품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연구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연구자들의 연구에선 늘 그들이 믿고있는 철학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이들에게 살아온 인생 얘기를 해보라고 하면 본인의 연구 스토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왜냐하면 그들의 연구가 곧 본인들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연구자들의 연구는 스토리가 있고, 자기다움이 느껴지며, 이러한 연속성이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이들이 논문을 위한 논문이 아닌 ‘의미를 쫓는 연구’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 하고있는 연구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번 자문해보자. 나 자신을 찾아가는 길과 내 연구가 가는 길은 얼마나 닮아있는가? 나는 어떤 의미에서 이 연구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 연구를 하는 의미가 분명하고, 그래서 그 연구들이 ‘자기다움’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될 때, 비로소 나도 행복하고 결과물도 훌륭해지는게 아닌가 싶다. 문제는 의미다.

 

품격 있는 사람은 비판적 사고와 냉소적 불신의 미묘한 차이를 아는 사람이다. 비판적 사고라는 이름으로 냉소 어린 독기를 뿜어내지 않는 사람이다. 건설적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기를 꺾는 사람이 아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스스로 똑똑하다고 느낄지는 몰라도 이런 반응이 습관이 되면 곤란하다. (중략) 자신의 전문 분야든 아니든 모든 문제에 대해서 늘 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우리가 경계하는 이유는, 그에게서 자신의 지적 한계를 인정하는 격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원 생활을 오래한 세월만큼 함께 늘어나는 것이 바로 ‘냉소’다. 대학원 생활에서 너무나 많은 헛짓거리들을 봐왔기 때문일까? 박사들은 마치 칭찬하면 자존감이라도 잃는 마냥 누가 무얼 발표하더라도 좀처럼 놀라지 않고, 오히려 불신과 반례를 찾아내기 바쁘다.

‘그거 내가 해봐서 아는데 실제론 아마 잘 안될꺼야.’
‘이게 뭐야. 그냥 A에다가 B를 가져와서 조합한 것 뿐이잖아. 별거 아니네.’
‘저 사람 또 전문가랍시고 나대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비판적 사고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냉소적 불신과는 철저히 구분되어야 한다. 상대를 냉소하는 순간 어쩌면 자신은 비판의 대상에서 교묘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개선의 기회를 잃고 배움의 기회를 걷어차 버리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의 목적은 남을 깎아내리는데 있지않고 내가 제대로 배울점을 찾기 위함에 있다. 그러니 전체를 싸잡아 냉소하는 태도는 이미 비판에 실패한 모습이다. 냉소하지 말자. 대신 배울 점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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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얘기를 할 땐 한없이 초라하다가도 남을 까내릴 땐 무한한 자존감이 솟는다.

 

아무리 확신에 찬 주장이라 할지라도, 더 나은 주장이 존재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인 경우에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는 것은 의식의 편협함을 드러낼 뿐이다. (중략) 유연한 삶이 곧 타협하는 삶은 아니다. 삶의 복잡성에 대한 겸허한 인식이고, 생각의 다양성에 대한 쿨한 인정이며, 자신의 한계에 대한 용기 있는 고백이다.

사람의 말투를 보면 대게 그 사람의 과학적 사고역량을 알 수 있다. 확신의 찬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은 대게 지식에 대한 확신 정도(uncertainty)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에겐 누군가로부터 전해들은 말, 어디 매체에서 전문가란 사람이 한 말, 친구가 한 말 중 너무 뜻밖이어서 뇌리에 박힌 말들이 모두 과학적 검증없이 지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본인이 지식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uncertainty 개념이 없었던만큼, 남들에게도 확신이 가득찬 말들로 내용을 전달한다.

하지만 과학적 사고가 충실히 내면화된 사람은 그렇게 확신에 찬 말들을 쏟아낼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많이 아는 분야는 많이 아는만큼 다양한 예외들도 많이 알기에 흑백으로 속 시원히 얘기할 수가 없고, 모르는 분야는 모르는 만큼이나 uncertainty를 화법에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지식인들을 보면 늘 말투가 조심스럽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며, 혹시라도 내가 틀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말투를 사용한다.

본인의 주장을 더욱 설득력있게 만드는 것은 강한 어조나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닌, 논리적인 근거들의 긴밀한 징검다리일 뿐이다. 초보 연구자들의 논문에선 대게 불필요한 부사의 사용이나 본인이 발견한 지식의 정도보다도 훨씬 과한 표현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를 시니어 연구자나 지도교수님이 종종 고쳐주기도 한다. 그들은 그만큼이나 더 uncertainty를 확실히 measure 할  능력이 축척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인의 언어습관을 한번 돌아보자. 언어가 곧 우리의 사고 방식이다.

결론

‘나는 얼마나 훌륭한 연구자인가’는 결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삶에 시간을 쏟고 있는가’와 반비례하지 않는다. 그러니 행복을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고 너무 죄책감을 갖지 말고 충분히 즐기며 대학원 생활을 하자. 유능함에 대한 욕구와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우리가 대학원 생활을 하는 근본 목적이 아니다. 중요한건 ‘얼마나 자신의 연구 속에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가’이고, ‘그들이 의미있게 엮여 곧 나 자신이 될 수 있는가’이다.

내가 나의 연구를 즐기고, 그것을 통해 더욱 나 다워질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면 나는 점점 더 좋은 연구, 나 다운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는 결국 ‘나’라는 창을 통한 결과물이기에 좋은 태도를 내재화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냉소’와 ‘무분별한 확신’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적인 반면, ‘비판적 배움’과 ‘겸허하게 열린 자세’는 우리를 더욱 넓은 지평으로 이끌어 줄 원동력이다. 좋은 태도를 가진 연구자는 말투에서도 그 태도가 묻어난다.

연구와 행복, 연구와 인생은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니 부디 본인의 행복과 본인의 인생 안에서 연구를 녹여내실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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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이 갖추어야 할 의외의 덕목들 4가지

“무슨 일 하세요?”
“아 네. 저 아직 박사과정 공부 중 입니다.”
“우와.. 대단하세요. 전 대학교 이후 더는 공부 못하겠던데 ㅎㅎ”
(…사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에요…ㅠㅠ)

대학원에 다니시는 분들은 아마 이런 대화를 꽤나 많이 나눠봤을 것 같다. “박사”라는 이름이 주는 고정관념 때문인지, 사람들은 박사라고 하면 공부를 엄청 좋아하고 열심히 책상 앞에서 공부만하는 공부벌레를 상상하는 것 같다. 물론 두꺼운 책들이 책상 앞에 꽂혀있는 것도 맞고, 공부를 엄청 많이 해야하는 것도 맞지만, 그것이 꼭 내가 두꺼운 책을 읽으며 열심히 공부를 하는 공부벌레란 뜻은 아니다ㅠ 그러니 지금도 필자가 이렇게 딴짓을 하고있지 않은가…

컴퓨터 수업의 현실
컴퓨터 수업의 현실… 벌써 아비터 체제까지 갖춰졌다.

우리가 막연히 갖고있는 박사, 교수, 학자에 대한 고정관념 역시 이처럼 실제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을지 모른다. 특히나 그들의 미래 모습을 상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옛날엔 책만 열심히 파면 유능한 박사가 될 수 있었는지 몰라도, 요즘엔 참으로 다양한 덕목들이 박사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이다.  그래서 오늘은 ‘박사는 공부벌레야’가 아닌 그들이 갖추어야 할 추가적인 (어쩌면 의외인) 덕목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세상에 한가지 유형의 사람만 존재하지 않듯, 박사도 정말 다양한 형태로 본인들의 재능을 발휘하며 살고있다. 그러니 본인이  박사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 말자. 당신만의 개성이 발휘될 수 있는 사회가 왔다.

커뮤니케이션 능력

공부는 혼자하는가? 보통 그렇다.  물론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도 많이 하지만, 최고 퍼포먼스는 역시 시험 전날 독서실에 쳐박혔을 때 나온다. 그렇다면 연구는 혼자하는가? 답은 ‘절대 아니다’. 심지어 독방에 박혀 혼자 연구를 하는 사람마저도 논문과 피어리뷰(논문심사) 과정을 통해 다른 연구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팀을 이뤄 연구하는 경우는 더더욱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있고 말이다.

결국 핵심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지식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지식을 발표하는 일 모두 본인과 세상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대화가 안통하는 사람은 어디에 가든 답이 없다…

어떤 연구자들은 본인의 전문분야가 칼 같이 좁고 뾰족해서 자신의 분야에서 조금만 벗어나더라도 대화가 잘 안통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어떤 연구자들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학습력이 뛰어나, 심지어 그것이 본인과 전혀 다른 분야일지라도 적정수준까지 이해하고 소화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은 보통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진다. 생소한 분야의 개념들을 어찌 두꺼운 책을 통해 공부한단 말인가. 대화의 장소가 연구실 내가 되었든, 학회가 되었든, 이메일이 되었든, 온라인 커뮤니티가 되었든 간에, 서로 질문을 주고 받으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지식을 쌓고 교류를 쌓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평소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즐기고 ,이를 통해 많은 정보들을 얻는 편인가? 그렇다면 학자의 자질 +1

연구자는 늘 세상과 소통하고 있어야 한다. 빠르게 변화하고 많은 것들이 융합하는 시대엔 더더욱 그렇다. “요즘 어떤 연구하고 있어요?”, “그건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 핫한 거에요?”, “내가 이런 고민이 있는데 혹시 의견 좀 줄래요?” 등등.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은 책 속에 파묻혀 머리를 쥐어뜯어야 할 시간을, 단 대화 몇마디만으로, 그것도 정확히 핵심을 찔러가며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세상과 함께 고민하자. 그 중심에는 커뮤니케이션이 있다.

사업적/정치적 능력

사업질, 정치질만 하는 학자라면 어떨까? 아마도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사업적 능력에 정치적 능력까지 갖춘 학자라면 어떨까? 아마도 많은 사람의 환영을 받지 않을까?

사업질, 정치질”만” 하는 학자들이 많은 비난을 받기는 하지만, 그것만 잘해도 잘나가는 학자가 될 수 있는 것이 비정한 현실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것만으로도 잘나가는 학자가 될 수 있는데, “그것마저” 갖춘다면 얼마나 훌륭한 학자가 되겠느냐는 말이다. 학자들도 사업적/정치적 능력을 그저 ‘더럽다’며 경시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능력들도 고루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교수가 연구실을 운영하는 것은 여러모로 스타트업 경영과 비슷한 면이 많다.

  • 투자를 받아야 한다.
  • 인력난이 심하다. (인력들이 2년~4년이면 그만둔다.)
  • 좋은 제품(논문)을 만들어야 한다.
  • 그러려면 충분한 투자와 양질의 인력이 필요하다.
  • 돈, 돈, 돈….

교수는 잠재력 있는 재원을 받아 그들을 성장시키며 함께 좋은 연구를 수행해나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들을 펀딩해주고 좋은 연구환경을 마련해 줄 수 있는 “돈”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돈을 벌려면 정부과제나 기업과제를 잘 따와야하는데, 학생들을 귀찮게 하지않는 양질의 프로젝트들(=연구와 관련이 많고 잡일이 적으며 연구비가 큰 것들)를 따오려면 정부, 기업, 학계와의 적절한 관계유지는 필수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에만 파묻혀 사는 교수보다는 어쩌면 적절한 사업적 능력, 정치적 능력을 갖춘 교수가 많은 학생들과 함께 더 좋은 연구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덧1: 물론 대가나 훌륭한 인재들에겐 이러한 걱정없이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사회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슬프게도 대부분에겐 이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지만 말이다.)
(덧2: 한국에는 사업과 정치의 중요성을 깨닫다가 결국엔 여기에 함몰되어 학문의 본질과 학생의 교육으로부터는 멀어지는 교수들도 많이본다. 과유불급이다.)

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교수가 아닌 산업계에 있는 박사라면 더더욱 사업적, 정치적 능력이 중요하다. “사업력”이라 함은 기술을 고객의 수요와 마침맞게 연결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정치력”이라 함은 많은 사람과 조직들을 움직여 결국 도전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이다. 그 어떤 것도 “기술”만으로는 목표를 완수할 수 없다. 그러니 본인의 기술을 단단하게 갖고있는 것과는 별개로 사업력, 정치력을 갖추는 것 역시 박사에겐 무시하지 말아야 할 능력일 것이다.

본인이 비지니스적인 마인드가 있고 여러사람들과 큰 과제를 도모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학자의 자질 +1

마케팅/브랜등 능력

필자가 속해있는 딥러닝 연구분야는 정말 “신세대”들이 모인 연구분야이다. 꼭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렇기도 하지만…) 정말 파격적인 문화들이 급진적으로 학계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대부분의 저널은 open access (누구나 무료로 열람이 가능한 방식)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 연구자들은 학회나 저널 출판을 기다리지 않고 본인의 성과를 arXiv.org 에 업로드하여 공개하고 있으며, 논문 심사조차도 open review를 통해 “댓글로” 서로 까고 방어하고 점수 주는 오디션형(?) 논문심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레터를 보내 기고를 하고, 우편으로 저널을 받아보며 공부하는 시대에 비해 지금은 인터넷 기술이 상전벽해 하였으니,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당연한 변화일지 모른다. (그리고 필자는 타 분야도 미래엔 이런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 믿고있다.)

딥러닝 학계에서 발견되는 또다른 특징 중 하나는 많은 연구자들이 트위터 계정을 통해 다른 연구자들과 소통하며 “마케팅”을 펼친다는 점이다. 학자의 논문은 많은 사람들을 통해 읽히고 그 기술이 이용되고 인용될 때 더욱 빛난다. 하지만 엄청난 양의 논문이 쏟아지는 현실에서 그렇게 주목받는 논문이 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본인이 정성들여 출판한 논문이 관심받지 못하고 사장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답은 “마케팅”. 요즘 딥러닝 연구자들은 단지 논문만 출판하는 것이 아니라 트위터를 통해 독자의 접근성을 높히고, 쉬운 블로그 글을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코드 공개를 통해 독자의 사용을 쉽게하는 등, 논문 출판이 끝이 아니라 그것이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될 수 있도록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필자도 이렇게 트위터를 통해 논문 홍보를 하고있다. 그리고 이 첨부사진도 사실 마케팅을 하고 있는거다…

어떤 논문들이 잘 인용되는가를 유심히 살펴보면 주로 “유명인”의 논문들이 많이 인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명인이라 함은 물론 대가여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나처럼….  마치 가수가 노래를 잘해야 뜨는게 맞지만 초반엔 홍보를 위해 예능활동도 해야하는 것처럼…? 매일매일 쏟아지는 논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독자에게 도달율을 높여야하고, 이를 위해선 비록 본인이 대가는 아닐지라도 차곡차곡 개인 브랜드를 쌓아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개인 브랜딩이라는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성을 무기로 꾸준히 자신을 세상에 노출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OOO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의 개인 브랜드도 생길 것이며, 본인 논문의 영향력도 점차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오해하지 말자. 실력이 먼저다. 마케팅에 앞서, 먼저 누구에게 팔아도 부끄럽지 않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마케팅은 좋은 상품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안팔릴 때 쓰는 수단일 뿐이다. 상품도 좋지않으면서 마케팅을 하는 사람은 그저 사기꾼이니 주의하도록 하자.

평소에 사람들에게 “너 사기꾼해도 되겠다”라는 말을 듣는가? 그렇다면 학자의 자질 +1 …(…)

연애 잘하는 능력

‘엥? 무슨 얘기인가?’ 싶으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연애를 잘하는 능력은 박사과정에서 너무나너무나너무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수월하게 연애를 할 수 있는 능력은 정말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박사과정은 참 기나긴 항해이다. 항해를 하다보면 대부분은 아마도 서른 언저리를 찍을 것이고, 그 사이에 연애와 이별과 연애와 이별을 해야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박사과정 중에 혹은 박사과정을 갓 마치고 결혼을 해야할 것이며, 따라서 연애와 결혼은 박사과정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부분일 것이다. 박사과정의 연애에는 험난한 장벽들도 많다. 어쩌면 돈을 벌지못한다는 사실에 경제적 압박을 받을 수도 있고, 유학을 하는 이들이라면 장거리 연애에 힘들어 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필자 주위에선 연인이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각각 박사를 마치고 서로 다른 지역에서 교수임용이 이루어져 네버엔딩 롱디 연애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봤다.

박사과정이 곧 20대 중후반과 30대 초중반의 삶을 의미하는 만큼, 연구와 함께 다른 인생의 과정들도 순탄하게 진행시켜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순탄하게 연애하고 결혼을 하는 일일 것이다. (모두가 결혼을 해야한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만약 연애를 하는데 매우 많은 시간과 감정을 소모해야한다면 어떨까? 누구는 소개팅 몇번으로 쉽게 이성친구를 사귀어 오는데 본인은 수십번 소개팅을 해도 생기지 않는다면?(ㅠㅠ) 누구는 헤어져도 금방 ‘사람은 사람으로 잊혀지네’를 실현하는데, 본인은 헤어지고 처절하게 망가져 술만 퍼마시고 있다면?(ㅠㅠ) 누구는 연인이 힘도 되어주고 긴 박사과정을 응원해주는데 본인은 늘 만나면 싸움이고 전쟁같은 사랑을  하고있다면?(ㅠㅠ)

연애를 잘하는 능력은 참으로 중요하다. 좋은 연구도 모든 생활이 순조로이 흘러갈 때 가능하다. 기나긴 박사과정 항해를 하다보면 슬럼프도 빠지고, 괴로운 때도 있고, 현실로부터 도망쳐버리고 싶은 때도 있을텐데, 이러한 희노애락을 함께 해줄 수 있는 연인이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니 박사과정을 고민하고 있는 학생이시라면 우선다양한 연애를 통해 연애능력을 길러놓도록 하자. 당장 소개팅 고고

잘생겼는가? 그렇다면 학자의 자질 +1….

은 농담이고, 여자친구가 있는가? 그렇다면 학자의 자질 +1

은 농담이고…

모두들 미안…ㅠㅠ

연구란 원래 상상을 현실로 실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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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못해도 논문 잘 쓰는 법

논문을 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어로 쓰는 논문은 더더욱 그렇다. 나는 첫 해외학회 논문을 석사과정이 끝나갈 무렵에야 쓸 수 있었는데, 당시엔 영어로 한 문장, 한 문장 쓰는 것 자체가 무척 고역이었던 기억이 난다. Introduction의 첫문장을 시작하는데도 몇날 며칠이 필요했었다.

‘In these days, OOO approaches have been attracted large attentions…. 아냐아냐… OOO approaches have shown a powerful performance in OOO in the last decade… 이게 아냐ㅠㅠ 딴 곳에선 어떻게 썼지…?ㅠㅠㅠ’

나는 문장 하나하나를 그럴듯하게 쓰기 위해 수많은 논문들을 ‘단지 영어 때문에’ 찾아보며 문장들을 따와야 했고, 나의 논문 쓰는 속도는 매우 느릴 수 밖에 없었다. 더 끔찍했던 점은, 교수님께서 내용을 다 바꾸라고 하시면 나는 그렇게 피땀흘려 모은 금쪽같은 문장들을 모두 버려야만 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아직도 논문을 쓰는 것이 어렵다. 지금도 교수님이 달라는 논문 초안을 못드리고 있다ㅠ 매력적인 Abstract과 Introduction을 쓰는 것은 여전히 지상 최대의 과제이고, 나의 어설픈 영어는 내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필자의 “영어 못해도 논문 잘 읽는 법” 글을 좋아해주셨던 것처럼 “영어 못해도 논문 잘 쓰는 법” 역시 필요로 하실 것이라 믿고 글을 시작해본다. 아마 추석이라 아무도 안읽을거야ㅠ

나의 논문은 늘 빨간펜으로 촉촉히 적셔져 돌아온다.

일단 써라

가장 먼저 해드리고 싶은 말씀은, 모든걸 두려워하지 마시고 일단 쓰기부터 시작하시란 것이다. 영어가 어렵다면 한글로라도 좋다. 일단은 뭐라도 그려져 있어야 전체적인 구성이 보이고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 그리고 초안이 있어야 그걸 가지고 지도교수님 혹은 다른 동료들과 이야기가 가능하다.

또한 머리 속의 생각을 논문 글로 정리하다보면 연구할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논문조사나 실험의 필요성도 종종 깨닫게 된다. 그리고 본인이 글을 적으며 스스로에게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다보면, 열심히 앞만보고 달렸던 연구 때에는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빈틈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또다른 보완 연구로 이어질 수 있고 말이다.

그러니 일단 쓰시라. 추천하는 방법은 일단 목차를 나누어 놓고 개조식(bullet form)으로 들어가야 할 내용들을 하나씩 적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6페이지짜리 논문이라면 그렇게 개조식으로만 적어도 아마 3페이지 쯤은 찰 것이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어떤 형태의 그림과 표가 들어가면 좋을지 대충 넣어보자 (손으로 그려넣어도 좋다.). 그렇게 내용을 채우고 나면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고, 전체적인 윤곽도 보여 좋은 논문으로 개정해 나가는 것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일단 쓰자. 못써서가 아니라 쓰기 싫어서 시작 안하고 있는거니까…

Introduction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하다. 논문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추측컨데 90%의 논문은 Abstract과 Introduction을 읽는 단계에서 그 다음을 읽을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가 판단되는 것 같다. 논문 심사 때도 마찬가지이다. Introduction이 형편없으면 그 이후 내용에 대한 기대도 사라진다. 그러니 Abstract과 Introduction은 논문을 쓰는데 40~50%의 노력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Introduction을 읽고 난 뒤 독자가 어떤 느낌을 받으면 좋을지를 상상해보면 Introduction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할 지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우리는 이런 느낌을 독자가 갖기를 바랄 것이다.

  • 이 논문이 다루는 문제는 정말 꼭 해결해야하는 문제 같아.
  • 하지만 이전 문제들은 아직 한계점들을 갖고있군.
  •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는데, 이 논문은 새로운 기여를 보여주고 있어.
  • 특히 이 논문의 기여 중 OOO이 핵심이군.
  • 앞으로 나머지 논문에선 이런이런 내용이 나올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이 Introduction까지 읽고 다음을 읽을지 안읽을지를 판단한다는 것은, 바꿔말하면 저자는 논문의 큰 그림을 Introduction에서 “소개”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Introduction을 읽었는데도 아직 그 내용이 오리무중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독자의 잘못이 아니라 저자의 잘못이다. 그리고 그 논문의 퀄리티는 안봐도 뻔하다. “presentation clarity” 차원에서 이미 낙제점이다.

그러니 Introduction에서는 전체 연구의 큰 흐름 속에서 본 논문의 기여를 확실하게 잘 보여주도록 하자. 먼저 Introduction의 시작은 큰 문제제기부터 시작해 본인의 연구 영역까지 점진적으로 스코프를 좁혀오도록 하고, 그런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해 온 방식을 간략해 설명해주자. 그런 뒤 이들의 한계점과 본인 연구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고, 마지막으로 본 논문의 기여를 요약해주면 (그리고 앞으로 나올 내용의 outline을 그려주면) Introduction은 끝이 난다.

우리는 어떤 텍스트북의 Introduction이 아닌 내 논문의 Introduction을 쓰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룰 필요는 없고, 단지 내가 논문에서 발표하는 주제를 둘러싼 여러 생각의 갈래들만 잘 표현해주면 된다. 그리고 Introduction의 가장 큰 목적은 내 논문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위함 임을 다시한번 상기하자.

Introduction을 쓸 땐 두뇌 풀가동 하고 모든 집중력을 쏟아 붓도록 하자.

Related Work

Related work 은 사실 다른 섹션들에 비해선 중요도가 떨어지는 섹션이다. 이미 이 연구분야를 잘 아는 독자들에겐 읽어야 할 동기가 떨어지기도 하고, 내 연구결과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연구결과들을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섹션은 내 연구결과의 상대적인 위치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마치 내 외모를 설명할 때 ‘송승헌보다는 눈썹이 좀 덜 짙고 장동건보다는 피부가 하얀데, 공유에 비해선 좀더 얼굴도 크고 또렷한 편인 것 같아.’라고 막말을 하며 비교 설명하는 것처럼, 결국 Related work이 있는 이유도 내 연구의 위치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참고로 이러한 비교를 할 때는 ‘B연구는 A연구를 개선하였다’라고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B연구는 어떠한 측면에서 이러한 아이디어를 사용하여 A연구를 정확도 OO%에서 OO%로 개선하였다.’처럼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가며 비교하는 것이 좋다.)

그러니 논문들에 대한 단순 나열을 피하고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도록 하자. 최악의 Related work은 읽는 사람조차도 ‘얘가 Related work 쓰기 무척 싫었나보군’이라며 느껴지는 글들이다. 본인이 그 섹션이 필요한 이유를 모르니 결과물도 산만하게 논문들만 나열하여 형편 없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왜 Related work을 쓰는지 알고, 그 목적을 잃지 않으면서 이 부분을 써내려가도록 하자.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Related work은 다른 연구들을 보여주며 역설적으로 나의 위치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논문 속의 모든 요소가 나의 연구를 빛나게 해주기 위함 임을 잊지말자.

(덧: 남의 논문을 깔 때(?)는 주의하도록 하자. 이는 리뷰에서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고, 만에 하나 과하거나 틀린 지적이었다면 ‘본인 논문 띄우기 위해 부풀려 얘기했네’라며 신뢰를 크게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영어 단어의 선택도 중요하다. “no” 보다는 “less”, “shoud”보다는 “need” 등 단정적 표현 대신 완곡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Method / Result

본론에 해당하는 Method와 Result는 논문의 내용에 따라 그 형식이 워낙 다를 수 있으니 구체적인 틀을 말씀드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다만 Method와 Result를 쓸 때 강조하고 싶은 점은 자세하되, 자세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장난하냐. 본론의 내용은 논문을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한 내용을 포함하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엽적인 내용의 나열로 인해 논문이 지루해지거나 포커스가 흐트러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강약조절을 통해 글의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유를 하자면 쇼미더머니에서 랩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래퍼는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을 랩을 통해 내뱉지만, 잘 쓰여진 펀치라인과 훌륭한 래핑은 이를 지루하지 않게 들리지 않게 한다. 이는 강약조절과 리듬을 갖고 놀기 때문이다. 논문 쓰기도 마찬가지다. 너무 세세한 내용을 알려주느라 글의 포커스가 흐트러질 때면 다시 이들의 목적을 상기시키며 글의 긴장감을 조여주고, 이러한 부분들이 너무 길게 반복된다 싶으면 최대한 정보를 잃지않으면서도 컴팩트함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좋다.

간결하면서도 화려하고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하고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단순하지만 있어보이는 그런 느낌으로 써주세요.

실험결과를 해석할 때는 과대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 실험에서 “A조건보다 B조건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것과 “그러므로 B조건은 A조건보다 우월하다”의 결론까지는 매우 큰 간극이 존재한다. 수학적인 증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의 실험환경 하나하나가 구속조건이고 가설조건이다. 그러니 실험결과를 일반화해서 말할 때는 그러한 가정들을 염두해두며 조심스럽게 주장을 펼쳐나가도록 하자.

논문에 대한 평가는 연구 내용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지만 이를 연구한 연구자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아무리 논문이 인상적인 연구 결과를 포함하고 있다고 한들, 결과를 지식으로 도출해내는 과정이 적절한 과학적 사고과정을 수반하지 않았다면 논문 전체에 대한 신뢰성이 흔들린다. ‘이런 논리적 구멍이 있는 연구자라면, 실험 결과 자체의 신빙성도 떨어지는거 아니야?’라며 말이다. 그러니 자신의 연구 결과를 잘 세일즈 하되, 허위/과장광고를 경계하자. 그것이 논문 판매(?)에서 살아남는 법이다.

(막간 잉글리시 클래스 : buy 에는 ‘믿는다’라는 의미도 있다. 예를 들어 “I don’t buy it”이라고 하면 그 의견을 믿지않고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잘 buy할 수 있도록 논문을 쓰도록 하자.)

Conclusion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Conclusion을 Abstract의 반복처럼 쓰는 일이다. Abstract은 논문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읽는 글이고 Conclusion은 논문을 모두 읽은 후 전체 내용을 정리하는 글임을 기억하자. 따라서 똑같이 전체 내용의 핵심 요약을 포함하고 있다 할지라도 Abstract은 문제 제기와 연구의 중요성/기여에 조금더 큰 방점을, Conclusion은 실험을 통해 얻어진 지식과 의의에 조금더 큰 방점을 찍어야 한다. Abstract은 손님을 많이 끌어와야 하고, Conclusion은 손님에게 만족스러운 마무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각자의 역할을 견지하도록 하자.

당연한 이야기지만, Conclusion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부적절하다. 본문에서 주장했던 바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Conclusion은 약간은 건조한 느낌에서 전체를 되돌아보며 쓸 필요가 있고, 뒤늦게 지식의 샘물이 터지며 막판에 불타오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어떤 사람들은 하지못한 것들을 방어한다며 Future work에 너무 많은 것들을 나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Future work이 그냥 “OOO을 할 것임”이 아니라 “OOO은 안했음”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좋은 방어법이 아니다. 본 연구의 한계는 결과 디스커션의 말미에 솔직히 고백하도록 하고, Future work에는 너무 큰 부분을 할애하지 말도록 하자.

영어

사실 이 글을 읽은 많은 분들이 “영어 못해도”에 낚이셔서 클릭하셨을 것 같다. 그만큼 영어는 신비의 키워드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라이팅을 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한다ㅠ 특히 문법 공부를 충실히 해두는 것이 좋고, 많은 영어 논문을 읽으며 아카데미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본인이 쓴 문장이 논문에 쓰일만한 문장인지에 대한 감이 없으면 그것을 고칠 기회도 오지 않기에 논문들을 많이 읽어 논문 속 문장들의 품격에 익숙해지도록 하자.

단어를 사용할 때는 유의어 사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OO임을 보여준다”라고 이야기 할 때 본인이 show라는 단어밖에 모른다면, ‘show synonym’을 구글에 검색하여 어떤 단어들이 비슷하게 쓰일지를 보며 대체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 유의어들이 완벽하게 같은 뉘앙스를 가지고 있지 않음에 유의하자. 예를 들어 use와 exploit은 모두 “활용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exploit = make full use of and derive benefit from 이라는 정의에서처럼 exploit은 좀더 적극적으로 착취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유의어를 단순히 돌려쓰지 말고, 좀더 정확한 뉘앙스를 표현한다는 차원에서 다양한 유의어를 적절히 사용하도록 하자.

전치사와 관사는 한국인에게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어려운 문법적 부분들이다. 우선 영어 공부를 할 때부터 동사와 전치사의 collocation (궁합)을 같이 알아두는 것이 전치사 실수를 줄이는 길인 것 같다. 예를 들면 attach to, substitute for 처럼 말이다. ozdic.com은 훌륭한 collocation 사전을 제공하니 참고하도록 하자. 관사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용법은 당연히 알아야 하고, 단어를 쓸 때마다 나의 용도가 그 카테고리 전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인지, 어떤 하나를 끄집어 내 얘기하는 것인지, 특정한 개체 안에서 얘기하는 것인지 구분해가며 신중히 관사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사실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ㅠ 많은 예문 퀴즈를 통해 실제 문장으로부터 관사를 배울 수 있는 anathe라는 좋은 사이트가 있으니 참고하자.

어떤 분들은 영어를 대충 쓰더라도 영어 교정을 맡겨 돌아오면 좋은 영어 글이 되어있을 것이라 믿는 분들이 계신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생전 모르는 분야의 (예를 들면 어려운 화학분야의) 외계어들을 보고있다고 하자. 심지어 그것이 옳은 문장들로 쓰여져 있다 하더라도 쉽게 읽거나 그 문장들을 고쳐볼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원어민 영어교정이 그렇다. 내용 이해에는 조금도 근접하지 못한채 기계적으로 문법을 고치는데, 만약 그 과정에 “이건 이런 뜻으로 쓴거야?”라고 하는 대화조차 없다면 영어교정은 잘못된 오해들을 만들어내기 일쑤이다. 그러니 본인이 최대한 좋은 영어를 쓰도록 노력하자.

Data가 단수인지 복수인지는 내 마음 속에 있다.

내가 저지른 영어 실수들

이번 기회에 나도 원어민이신 교수님께서 빨간줄로 고쳐주신 영어들을 한번 정리해봤다. 내가 저지른 실수의 오답노트가 여러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이 중 일부를 공유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 논문 용어 / 형식

Experiment -> Experiments
Relate works -> Related work
Future works -> Future work
Fig. 1. AAA(red) -> AAA (red)    (띄어쓰기)
OOO[1] -> OOO [1]    (띄어쓰기)

  • 관사

– It exploits ( ) inherent properties of ( ) athletic movements  : (the), (-)
– regardless of ( ) number of ( ) joints or ( ) joint configuration  : (the), (-), (the)
– It is ( ) same as : (the)
– We take ( ) advantage of something : (-)
– In ( ) future work : (-)
– In ( ) preprocessing : (-)

  • 전치사

– with the learning rate 0.1 → with a learning rate of 0.1
– total 100 samples → a total of 100 samples
– evaluated by using OO dataset → evaluated on the OO dataset
– They have zero-mean and one-variance → They have zero-mean and a variance of one

  • 단수 / 복수

– several researches → several works / some research
– Park et al. introduces → Park et al. introduce
– A large amount of data is → A large amount of data are
– dataset → a dataset  (data는 주로 복수, dataset은 단수)
– less number of → fewer number of

  • 주어 바꾸기

– It can be concluded that → We can conclude that
– It is required to detect AAA for BBB → AAA are detected for BBB  (가급적이면 가주어 It-for-to 구문 삼가기)
– It would be able to AAA by BBB → BBB enables AAA
– From the result, we can claim that → From these results, it appears that  (바로 앞에 나온걸 받을 땐 the 대신 this, 그리고 실험결과가 보여주는건 we show보다는 it appears)
– It enables us to access AAA  → It provides access to AAA

  • 분사구문/콤마 등으로 문장 간략히 만들기

It is reduced to three as focusing on → It is reduced to three, focusing on  (콤마의 활용)
– 
it means that AAA, thus, implies BBB → it means that AAA, implying BBB
– 
for preventing injuries that can happen during training
– The parameters that should be chosen → The parameters to be chosen
– the data which have nine features → the data with nine features
– T
he AAA that is used for BBB is

  • with / using / by 구분하기

– ( ) AAA, it can be expressed :  (Using)
– They are classified ( ) a AAA :  (with)

  • 단어 

– The easiest classifiable exercises are → The most easily classifiable exercises are
– 
It exploits the genuine properties of  → It exploits the inherent properties of
– A is enough small →  A is sufficiently small
– The dataset has → The dataset includes
– 확인할 수 있다. We can assure that → We can observe that
– 예상된 바다. This is to be expected
– 
An interesting point is that → An interesting observation is that
– They are not ignorable → They should not be ignored

 

교수님의 교정으로 누더기가 된 나의 논문 초안… 이렇게 누더기를 만들어주시는 교수님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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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뒤쳐질 수 있는 행복을 허락하라

먼저 사과의 말씀과 함께 글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세 명의 저자가 매주 폭탄돌리기(?)를 하며  글을 써왔던 대.좋.들. 블로그는 지난 한달동안 새 글을 발행하지 못했었다. 내 차례에서 새로운 글을 생산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바빴다는 건 적절한 핑계가 되지 못할 듯 하고, 무엇보다 쓰고싶은 글감이 잘 떠오르지 않았기에 글을 섣불리 쓰지 못했었다. “오늘은 꼭 쓸게요”라며 글을 쥐어짜내 보았다가 완성하지 못한 글만 5개쯤 되는 것 같다. 어떻게든 내 순서를 넘기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대.좋.들. 공간이 나의 설익은 아무말을 조언으로 포장시켜도 되는 그런 만만한 공간은 아니었기에 부담이 참 컸다.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의 폭탄을 안고 살아갔고(ㅠ), 그 사이에 권창현 교수님은 논문 하나씩을 preprint 하였으며, 최윤섭 박사님은 “나는 그렇게 스스로 기업이 되었다” 책을 발간하셨다. 이러니 나 혼자 바빴다고 징징대지 못하는거다..ㅠㅠ 나는 늘 바쁘고 늘 무언가에 쫓기며 살지만, 불만족스러운 나의 퍼포먼스를 보면 늘 만족스럽지 못한 마음이고, 교수님께 죄송하고, 필자 분들께 죄송하고, 독자분들께 죄송하고, 그저 모두에게 죄송한 마음일 뿐이다.

그렇다. 인생은 늘 괴롭다.

개롭다.. 개로워… 그렇다고 내가 열심히 하고있단건 아니지만…

하지만 문득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며 지금 나를 가장 괴롭히는건 나 자신임을 깨달았다. 사실 교수님도, 대.좋.들. 필자분들도, 그리고 아마도 독자분들도, 세상 그 누구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스트레스를 주진 않는다. 오히려 독려하고 응원해주시는 마음으로 곁에 있을 뿐… 결국 계속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가장 큰 적은 나 자신 밖에 없었다.

난 언제부터 이렇게 자학하는 인간이 되어버린걸까…?

사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그 채찍질이 꼭 “나의 부지런함”의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끊임없이 채찍질을 맞으며 살아왔단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어렸을 땐 그 채찍질의 주체가 부모님 혹은 선생님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새 그 채찍은 우리 자신의 손에 쥐어졌고, 우린 때론 돈까지 써가면서 우리 자신을 채찍질해왔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아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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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롭다.. 개로워….

 

우리가 휘두르는 채찍질은 아마도 두가지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상대적 기준에서 비롯된 채찍질, 다른 하나는 절대적 기준에서 비롯된 채찍질.

상대적 기준의 채찍질

내 주변엔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엔 나보다도 훨씬 능력이 뛰어나고 훨씬 스펙 짱짱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MIT, Stanford 등 세계적 명문 대학을 나왔다거나, 논문 인용수가 벌써 몇백, 몇천이 된다거나, 이미 국내외 유명 대학의 교수이거나, 혹은 Google, facebook과 같은 글로벌 기업 연구소에서 몇억씩 연봉을 받으며 사는 친구들처럼 말이다. 지인을 넘어 눈을 외국으로 돌려보자면, 딥마인드 같은 곳에서 쩌는 논문들을 양산하는 연구자들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을 볼 때면 ‘과연 이들에겐 열등감이란게 있기나 할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그들도 끊임없이 열등감과 싸우고 있다.

OOO로 유학을 갔던 내 친구는 주변의 천재들을 보며 한없이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끊임없이 괴로워해야 했다고 한다. 나에겐 늘 천재같이 보였던 친구인데 말이다. 누구나 미래의 직장으로 꿈꾸는 곳인 OOO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는 늘 자신의 부족한 영어를 탓하며 능력도 좋고 원어민이기까지 한 다른 직원들과 자신을 비교한다. 그리고 그들에 밀리지 않기위해 집에까지 집에 일을 싸들고 와서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건 상상이지만, 딥마인드에 있는 연구자 아무개도 아마 엄청난 실적을 쏟아내며 주목을 받는 동료 연구자를 보며 자신이 그러지 못함에 조급함과 괴로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사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필자 본인 역시도 타인에겐 그런 오해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서울대에 처음 들어갔을 땐 주변 친구들이 ‘야, 너가 무슨 걱정이 있냐. 진짜 배가 불렀다 불렀어.’라고 얘기했었는데, 그건 참 내 사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었다. 내가 서울대에서 여러 천재들에게 치이며 살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미래에 대해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현재의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어떤 분들은 나를 보며 부러울 것 없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나도 내가 주변의 실력자만큼 술술 논문을 읽고 구현을 잘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참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언젠간 드러날 나의 빈 깡통에 대해서도 늘 죄책감을 갖고있고 말이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내가 깨달았던 점은, 상대적인 비교는 남들보다 더 높이 올라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딜 올라가더라도 늘 내 위에 사람이 있고, 늘 내 밑에도 사람이 있다.

상대적 비교의 승자는 제한된 조건 상에서만 존재한다. 예를 들어 ‘반 1등’이라고 한다면 그 반에서만 1등이 승자일 뿐, 전교로 따지자면 꼭 승자는 아닐 것이다. 전교 1등도 전국으로 보면 마찬가지일 것이고, 전국 1등도 다른 나이들의 전국 1등들과 세상에 나와 경쟁한다면 꼭 승자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조금만 눈을 세계로 돌려보더라도 분명 본인을 패자로 만들어 줄 사람이 있고 말이다.

세상에 강자는 많다. 이 세상은 강동원도 “정말 못생겼다. 잘 생겼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라고 말하는 무서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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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굴이냐… 못생겨가지고…(…)

비교에 있어 세상에 절대승자가 없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면, 사실 그 누구도 패자라고 괴로워할 필요없다. 상대적 비교의 그룹, 상대적 비교의 분야, 상대적 비교의 근거 모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기준들이기 때문이다.

“더 뛰어난 사람이란건 존재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건 그냥 “이 세상에 사람 졸라 많아요”와 동치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패배감이 자신을 이끌어 줄 동력이라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동력은 우리 자신을 사랑할 때 나오는 것이지, 쓰레기로 매도한다고 초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만 불행해질 뿐이지…

(여담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줄세우기 교육은 참 잘못되었다. 줄세우기 교육, 줄세우기 대학 서열은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들만을 양산할 뿐이다. 왜 청소년들이 반에서 1등을 못한다고 구박받아야 하고, 왜 많은 대학생들이 일류대를 못다닌다고 사람취급 못받아야 하는가.)

절대적 기준의 채찍질

어쩌면 나를 채근하는 것이 상대적 비교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너 왜 그렇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니’라든지, ‘너 왜 그렇게  게으름을 피운거야’와 같은 절대적 기준에서의 채찍질일지도 모른다. 이 경우는 그나마 상대적 기준의 채찍질보단 나은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팩트폭행이 꼭 필요하다거나 아프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도 참 많이 나 스스로를 채찍질 했는데, 만일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더라면 ‘거 보소, 그만 좀 갈구시요’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세상 살면서 마지막 힘까지 다해 쥐어 짜내야하는 순간들이 참 많다. 당장 내일인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그럴 수도 있고, 그보다 더 큰 시험인 수능이 그럴 수도 있고, 어떤 공모전과 같은 대회에서의 도전 순간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잠 자는 시간마저 모두 짜내 최고의 성적을 내야하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순간들에서 소위 “쥐어짜기”를 시전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쥐어짜기 혹은 자기극복의 순간들이 꾸준히 쌓여 궁극적으로 발전한 나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것도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부작용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내가 혼신의 힘으로 쥐어짜내어 내 평소 가진 실력 이상의 것을 얻게된다면, 나는 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써야 할 것이다. 만약 내가 얻은 최고의 성적을 자신의 ‘평균수준’으로 인식하고 난다면, 나는 그 수준을 재현하지 못함에 끊임없이 괴로워할 것이고, 다음 관문에서도 지난번과 같은 또다른 요행을 기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짜내기”를 반복한다면 마치 내 인생을 막판 스퍼트하듯 달려야 할텐데, 사실 인생은 그렇게 막판 스퍼트를 자주 할 만큼 짧은 순간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이다.

어떤 사람들은 순간순간에 “최선” 혹은 “무리”를 하여 가랑이 찢어가면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더 높은 확률은 결국 내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이다. 가랑이가 찢어지고 나면 나는 절뚝절뚝 아픔을 안고 올라가야 할 것이며, 결국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돌아서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 길다. 빨리 달리는 사람이 멀리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 달리는 사람이 멀리가는 것이다. 그리고 멀리 가려면, 우선 즐겨야 한다. 극한의 괴로움 속에서 짜냈을 때 기쁨을 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한 기쁨은 대부분 성취에서 오는지라 ‘성공이냐 실패냐’와 같은 외부적 잣대에 좌우될 때가 많다. 만약 최선을 다한 그 자체로 즐겼다면 OK, 하지만 실패했을 때 괴로워할 것이라면 굳이 그렇게 가랑이를 찢지는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마가편: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다. 잠깐, 근데 나는 말이 아니자나.

채찍 맞는 말은 오래 달리지 못한다

우리는 참 다양한 채찍질을 맞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어느새 그러한 채찍질에 길들여졌으며, 이제는 채찍질이 없으면 죄의식을 느끼는 단계까지 이르른 것 같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아마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이 자신을 채찍질 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게 맞는 방향이다. 그 누구도 나를 채찍질 할 순 없다. 나에게 채찍질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고, 그렇기에 더더욱 나를 향한 채찍질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삶에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단건 너무나 잘 알려진 격언이다. 하지만 우리의 채찍질이 정말 “방향”을 위해 쓰여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자면, 사실 대부분이 “속도”에 관계되어 있음을 알게될 것이다. 다시말하면, 우리는 “속도”에 대한 채찍질이 과한 반면, “방향”에 대한 채찍질은 그만큼 적게 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방향에 대한 고민에 대해 채찍질을 가하라는 말씀은 아니다. 방향이란건 자주 고민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방향만 자주 고민하다보면 머뭇머뭇 거리기만 하다가 제자리만 맴맴 돌 가능성이 크며, 이도저도 이루지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방향에 대한 고민이나 채찍질도 그렇게 자주 하시길 권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저 최대한 즐기시라.

사람은 경주마가 아니다. 채찍을 맞아 수동적으로 달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채찍 맞는 말에게 오래 달리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단 걸 잘 알고 있다. 나는 열심히 쥐어짜내면서 올라가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풍경을 천천히 즐기면서 올라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시험 성적과 같은 단기적 성과로 스스로를 구박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번에 성적이 조금 안좋았다 하더라도, 이번 일에 대해 결과가 좀 안좋았다 하더라도, 수고했다며 조금씩 토닥여주자. (사실 이건 나 자신에게 충고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대학원생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좋은 성적 받기? 많은 논문 쓰기? 졸업에 성공하기? 졸업 후 좋은 곳에 취직하기?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것도 현재를 흘려보내는 이 순간을 잘 즐기는 것만큼 중요한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적을 잘 받든 못받든, 논문을 많이 쓰든 못쓰든, 심지어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든 못하든 간에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내가 지금 떠나보내는 이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저 모든 것을 즐거움 안에서 찾아가시길 바란다. 너무 괴로워하며 하루하루를 쥐어짜지 마시고, 너무 자신의 못남을 부각시키며 채찍질하지 마시고, 오늘을 즐기시고, 조금은 게으름을 허락해주시고, 주변 사람들과의 행복을 만끽하시며 즐거운 인생여행을 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의 즐거움을 내일의 발전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내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한 발전의 길이 아닐까 싶다.

너무 자책하지 마시라. 그대는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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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가고 싶어요

대학원에 가려하시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은 ‘이제야 내가 하고싶은 전공을 찾았다’며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하길 원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제가 가려는 분야 쪽으론 아는 것도 거의 없고 논문 실적 등은 당연히 없는데, 어떻게하면 전공을 바꿔 그 분야의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을까요?’

이쯤되면 당신은 ‘경력있는 신입사원만 뽑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교수는 자신의 전공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을 석사로 뽑고 싶어하지 않는다. 반면 본인은 다른 전공에 속해 있었기에 가려고 하는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 경력있는 신입사원만 뽑는 교수님, 경력이 없는 나, 과연 나는 새로운 전공에 도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새로운 전공에 도전하는게 과연 맞는 선택일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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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근데 전공을 왜 바꾸려고 하시는데요?

전공을 바꾸려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다음의 두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1) 지금의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2) 가려고 하는 전공이 좋아보인다.

먼저 전공을 바꾼다는 것은 본인의 몇년의 시간을 재투자해야하는 매우 비싼 선택이라는 점을 유념하자. 따라서 그 비용이 큰 만큼 전공을 바꾼다는 선택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전혀 상관없는 전공으로 변신을 꿈꿀 땐 말이다.

(1) 나는 왜 지금의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아마 ‘애초에 선택이 잘못됐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고3 때 진로탐색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못했고, 점수에 따라 학교를 맞춰가다보니 지금의 전공에 오게되었다는, 그런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스토리.

하지만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전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전공이 나중에 다시 꼭 만나게 되는 일이 있다는 점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데, 여러분의 전공은 적어도 개똥보다는 더욱 자주, 그것도 더욱 심각하게 그 필요와 함께 미래에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전공을 떠날 결심을 하셨다 하더라도 절대 현재의 전공을 헛것으로 만들지는 말자. 만약 지금의 전공을 헛것으로 만들었다가 두번째 전공마저 헛것이 되어버린다면 그땐 정말 멘붕에 빠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캘리그래피로 뭔가 쓸모 있는 것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죠.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당시의 경험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컴퓨터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부터 캘리그래피 기술을 적극 활용했으니 매킨토시는 그 기술을 적용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 셈이죠. 만약 그 때 그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이처럼 다양하고 독특한 서체(font)를 개발해 내지 못했을 겁니다.” –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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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다녔던 리드대학의 캘리그래피 수업

우리의 인생은 생각지도 못했던 A와 B가 만나고 이를 예상치 못했던 C가 도와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A,B,C 모두를 내 것으로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버리려고 하는 자신의 전공이 바로 그 A,B,C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니 현재의 전공을 너무 쉽게 무시해버리거나 불성실한 태도로 낭비해 버리지 말고, 잘 갈무리 하셔서 미래의 무기로 가지고 있으셨으면 좋겠다. 당신의 지금 그 전공이 미래 스티브잡스의 ‘캘리그래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99.999%로 당신은 스티브 잡스가 되지 못할 것이다ㅠㅠ

(2) 나는 왜 옮기려는 전공이 좋아보이는가?

여기선 다음 두가지의 바이어스(bias, 편향)에 대해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게 내 적성처럼 느껴진다‘라는 바이어스와 ‘이 분야가 유망하다‘라는 바이어스.

먼저, 가려는 전공이 내 적성처럼 보이는 이유는 어쩌면 현재 내 상태가 매우 불만스럽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새로운 전공에 돌입해보면 생각했던 것만큼 아주 즐겁진 않을 수도 있다. 어떠한 취미도 본업이 되면 스트레스가 되고만다고 했던가. 곁다리로 introduction 강좌들을 들을 땐 그렇게 재미있어 보이던 새로운 전공도, 막상 전문적으로 파고들다보면 이곳 역시 노잼의 벽과 난이도의 벽, 그리고 극한 노가다 노력의 벽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결국 이전 전공이든, 새로운 전공이든, 많은 인내로 배움의 과정을 견뎌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분들은 ‘6개월만 배우면 프로그래머로 일할 수 있다.’, ‘1년 코스로 전공을 세탁한다.’ 등에 혹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어떤 단기코스도 오랜 기간의 학습결과를 따라잡을 순 없다. 그러니 허니문에 빠져 금사빠처럼 새 전공에  마음을 뺏기기보단, 새로운 전공에서도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 존재할 것이란 예측 하에 전공 전환의 판단을 고심하셨으면 좋겠다.

노오오력을 하란말야 (출처)

그리고 ‘유망하다’라는 전망도 사실 ‘나에게 유망하다’ 혹은 ‘미래에도 유망하다’란 말은 절대 아니란 점을 명심하자. 비유를 하자면, 지금 유망하다는 전공을 쫓아가는 것은 주식을 살 때 오늘 뉴스에서 ‘이런 종목이 유망합니다’란 소식을 보고 묻지마 주식구매를 하여 10년 뒤 그 결과를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일이다. 이미 현재 레드오션이고, 그 미래는 알 수 없으며, 사실 ‘유망하다’는 정보의 신뢰성마저 의심스럽다.

그러니 ‘유망하다’라는 전망은 철저히 무시하셔도 좋을 것 같다. 지금 전공을 선택한다면 아마도 10~15년 뒤에나 본격적으로 자신의 시대가 열릴텐데, 그 때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참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 땐 내가 페북 중독이 될 줄 몰랐지. 10년전인 2007년, 미국 US News에서 뽑은 최고 유망직종은 다음과 같았다.

내과의사 보조, 공인 간호사, 펀드레이저, 직업관리사, 교육심리학자, 시스템분석가

위의 리스트가 10년 뒤인 2017년 최고의 직종이라는 것에 과연 동의하는가? 예를 들어 ‘직업관리사’는 2000년대 꾸준히 유망직종이라며 리스트에 올랐던 직업인데, 10년이 지난 지금 ‘직업관리사’는 과연 모두의 예상만큼 유망직종이 되어있는가? 그렇다면 현재 유망직종이라 불리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나 ‘인공지능 전문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정말 10년 뒤에도 여전히 유망할까? 안돼 내 직업..ㅠㅠ

미국 유망 직종들의 연평균 수입
2007년 US News가 꼽은 미국 유망직종들 (출처)

이제껏 여러분들의 ‘새로운 전공 세탁에 대한 환상’을 깨려 여러 각도로 말씀드려봤다. 요약하자면,

  • 전공을 바꾼다는 것은 매우 비싼 선택이기에 신중해야한다.
  • 현재의 전공도 미래의 무기가 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해선 안된다.
  • 재밌을 것만 같던 새 전공 역시 고생길과 노오력이 함께할 것이다.
  • 새 전공이 미래에 유망하다는 썰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결국, 전공을 바꾸든 안바꾸든, 나를 성공으로 이끌 키워드는 “HOW”이지 “WHAT”이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보통 ‘저 사람은 뭐를 했어도 잘했을거야’란 생각을 종종 갖게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훌륭한 사람에겐 주제를 가리지 않고 적용될 수 있는 훌륭한 태도가 가장 큰 자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공 바꾸길 포기하란 얘기?

전혀 그런 말씀이 아니다. 사실 필자는 오히려 ‘현재의 전공에 얽매이지 말고 본인이 하고픈 길을 선택하세요’란 조언을 많이드리는 편인데, 미래에 지나고보면 현재까지 배웠던 지식이란게 참 보잘 것 없었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현재까지 뭘 배웠든 그것은 단지 “교양”일 뿐이기에 미래 선택에 영향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고등학교 때 단지 OO 과목을 조금더 잘했단 이유로 가고픈 학과 대신 현재의 학과를 선택해 후회했던 분들이라면 이 말 뜻을 잘 이해하실 것 같다. 내 선택은 내가 하고픈대로 하는 것이다. 컨설팅 결과처럼 하는게 아니라 말이다.

다만, 지금까지 드린 말씀은 현재 전공을 실패로 규정해 버리기 앞서 지금까지의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고, 새로운 곳에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자감을 경계하며, ‘유망하다’와 같은 근거없는 말들에 흔들리지 않는 선택을 하시라는 바람에서 드려본 말씀이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으시다면 하시라. 방법에 있어 현실에 발을 딛고 위대한 꿈을 꾸는 것만이 여러분의 가랭이를 찢어줄 것이다 포부를 실현시켜 줄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여러분은 지금의 전공 말고도 두세개의 “전공”을 더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전공 전환 고민 역시 이러한 필요에 따라 느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금 버리려는(?) 현재의 전공, 새롭게 시작하려는 미래의 전공 모두 내가 인생을 살면서 어차피 정복해야할 몇가지 전공 분야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또하나의 전공을 배우는데 너무 주저하지 마라. 드디어 글에 모순 발견. 새 전공으로의 도전은 너무 주저하지도, 너무 성급하지도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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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포기하면 편해’란 짤도 있지요…(…)

이 글을 제목을 보고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합격하는 팁’을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많이들 실망하셨을 것 같다. (사실 이 블로그의 취지가 얕은 팁을 공유에 있진 않다.)  ‘경력있는 신입사원만 뽑는‘ 대학원 선발의 딜레마를 깰 방법은 사실 많지 않다. 학부 때 필요한 관련 “경력”을 쌓지 못했다면, MOOC(온라인 공개강좌)가 되었든, 개인적인 GitHub 프로젝트가 되었든, 연구실 인턴이 되었든, 회사 경력이 되었든, 다양한 방법으로 관련 연구 경력을 쌓고 기록을 남기는 방법 외엔 뚜렷한 왕도가 없다.

그래도 한가지 기억하셔야 할 점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내가 준비해야할 것은 다양한 입시조건 충족이 아니라 실제 그 일을 하는 것이란 점이다. 예를 들어 딥러닝과 관련하여 대학원을 진학하고 싶다면 경쟁자들보다 더 높은 학점, 더 높은 영어점수, 더 훌륭한 인터뷰 스킬에 신경쓰기보다, 실제 딥러닝을 공부해보고 이에 대해 호기심을 키워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준비 방법이다. 시간을 투자해 실제 이론들을 공부해보고, 그것을 텐서플로우 등을 가지고 구현해보며, 이러한 공부 과정을 블로그든 GitHub든 기록을 통해 잘 보여줄 수 있다면, 해당분야의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일 역시 크게 어렵진 않을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여러분이 실제 그 일을 해본적이 없다는 점이다.

“전공을 바꾸고 싶어요”

“꼭 그렇게 하시라. 다만 새 분야에 대해 그만큼의 열정을  보여주시라. 당신을 빛나게 하는 것은 당신의 조건이 아닌, 당신의 의지와 노력과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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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관리가 대학원 생활의 전부다

학부와 대학원의 차이

대학원 생활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떤 분들은 대학원 생활을 단지 학부 공부의 연장으로 보시는 것 같다. 학부를 졸업해도 아는게 없으니 세부분야의 수업들을 더 들으며 자신만의 전문성(specialty)을 키워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전문성이 키워지는 거였다면 진작에 학부 4년동안 키워졌어야 했을 것이다. 팩트폭행ㅠ 다시말해, 학부 생활을 2년 연장한다고 당신이 4년동안 얻지 못했던 것이 갑자기 얻어지진 않는다는 말이다. 팩트폭행투ㅠ 석사생활 2년의 시간연장 후, 당신은 여전히 2년 전에 하던 취준고민을 다시 꺼내 하고있을 것이며, 2년 동안 무언가를 배운만큼, 무언가는 이미 당신의 머리속에서 잊혀져 있을 것이다. 팩트폭행쓰리…ㅠ

대학원 생활에서 얻어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지식”이 아니다. 여러분이 배웠던 지식은 5년 후면 금방 구닥다리가 되고 말 것이며, 따라서 단지 지식만을 위해 대학원 생활을 한다는 것은 참 비효율적인 시간 교환일 것이다.

또한, 만약 지식을 쌓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어쩌면 고3 생활이나 재수생 생활처럼 공부하는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대학이나 대학원은 학생을 그런 방식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고등학교보다 대학에서, 대학보다 대학원에서 우리는 학교로부터 더 많은 자율을 부여받는다.

그렇다. 자율. 가방끈이 늘어나며 여러분이 얻게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자율”을 관리하는 방법이며, 구체적으로, 목표를 향해 주어진 자원을 분배하고 시간을 관리하여 자신 스스로를 자가발전하는 과정을 배운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라는 격언은 모두가 아는 너무 식상한 격언이지만, 아마 다들 그렇게 코웃음을 쳐놓고는 여전히 대학원에서 “물고기(지식)”에만 집중하는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지식이 안중요하다는건 아니고, 학문과 학문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 둘 다 중요하다.

과연 지금 당신은 대학원에서 물고기 잡는 법을 잘 배우고 있는가? 혹시, 자신에게 열려있는 많은 가능성에 대한 탐색은 게을리한 채, 그저 졸업을 하기위한 무거운 숙제 하나에만 매달리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하기싫은 숙제 + 학위와 나의 소중한 청춘을 바꾸이 위해 대학원에 왔던 것일까? 대학원은 단지 지식을 배우기 위한 곳이 아니다.  5년짜리 말고,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어야한다.

자유.자율.자발.책임.관리.자립.독립.

대학과 대학원은 학생을 주입의 대상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주체로 완성시켜주는 교육의 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당신의 대학원 생활이 오직 온갖 타의로만 점철되어 있는 환경에 처해있다면 당신의 대학원 생활을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마치 프로젝트의 노예처럼 느껴진다거나, 혹은 별로 존경하지도 않는 사수의 수족으로만 이용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꼭 한번 대학원 생활을 되돌아보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는 주체가 되려고 대학원에 왔지, 누군가의 수족이 되려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덧: 오해가 있으실까봐 덧붙이는데, 프로젝트가 무조건 나쁘고, 사수의 실험보조를 하는게 무조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프로젝트를 통해 실제 제품에 적용될 수 있는 실전적인 연구를 하고, 또 실험보조 활동을 통해 뛰어난 선배의 사소한 장점들을 내 것으로 가져간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제 뜻은, 본인이 프로젝트나 사수의 노예처럼 느끼고 있다면 본인의 자세든 처한 환경이든 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주인공으로 살기도 바쁜 세상, 어찌 남들만을 좇다가 끝날쏘냐…

자신이 주체가 되는 일은 대학원 생활에서 너무나도 중요하다. (사실 이것은 대학원 생활 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에서 중요한 일이다.) 자신이 모든 행위의 주체가 되어야지만 대학원에서도 내가 내 연구의 주체가 될 수 있고, 흥미로운 연구들과 함께 ‘참 재미있게 대학원 생활 했어’라며 성공적인 대학원 생활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대학원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이제까진 남이 내준 문제를 풀어 남이 채점해주는 삶을 살았겠지만, 앞으론 내가 문제를 내고 내가 풀어 내가 스스로 채점하는 삶을 살게될 것이다.

그 누구도 당신이 하고픈 방향을 제시할 수 없고, 그 누구도 당신의 만족을 채점해 줄 수 없다.

“교수님 저는 어떤 연구를 하면 되죠?”라고 묻는 것은 “교수님, 저는 무얼 궁금해하죠?”라고 묻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마찬가지로, “교수님 저는 어떻게 이 문제를 풀까요?”라고 묻는 것 역시 내 행동의 주체가 나임을 부정하는 미성숙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지도교수는 영어로 supervisor이기도 하지만 advisor이기도 하다. 지도교수를 내가 돕는게 아니라, 교수가 나를 돕는다는 뜻이다. 어쩌면 대학원 생활이란 것은 supervisor 밑에서 시작해 advisor의 곁에서 끝마치는 일인지도 모른다. 처음엔 지도에 따라야겠지만, 결국엔 스스로 우뚝 서야한다.

나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역시 내가 결정해야한다. 시간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따라서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여러분 대학원 생활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고, 반대로 얘기하면, 대학원 생활을 통해 여러분은 시간관리 방법을 배우셔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대학원을 통해 배운 “지식”보다도 더 오래남는 “지혜”일 수 있기 때문이다.

IT기업가였던 안철수에게 의학 대신 공학이나 경영학을 했으면 더 좋았지 않았겠냐는 질문에, 안철수 왈,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땐 다른 학문을 하고 있었지만 새벽엔  V3를 만들고 낮에는 의학연구를 하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지식은 나중에 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이 그 때 가졌던 태도는 오래도록 여러분에게 남아있을 것입니다. “

돌아와요 촬스… 기회를 줄게…

자기관리가 대학원 생활의 전부다

대학원마다, 연구실마다 천차만별이기에 각자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의 정도는 모두 다를 것이다. 필자 같은 경우는 출근시간도 없고, 퇴근시간도 없는 자유로운 연구실만 나왔어서, 주로 오후에 출근했었고, 종종 학교를 안가기도 하고 그랬었다. (요즘에도 일주일에 한번쯤 미팅을 위해서만 학교에 간다.) 반면 9 to 9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와 같이 정말 빡빡한 규율 속에서 생활하는 대학원생들도 매우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리됐건 저리됐건, 어쨌든 소비되는 것은 나의 소중한 시간들이다. 그리고 (간섭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분배하고 쓰느냐에 대해 최종 결정하는 사람은 바로 ‘나’이다. 공부만 하고 연구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대학원 생활 동안 보컬 레슨을 받기도 하고, 헬스를 해 몸을 만들기도 하고, 사진에 취미를 들여 작품사진을 찍기도 한다. 이성친구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는 일 역시 결코 무시되어선 안되는 인생의 ‘대소사’이다. 한창 청춘에 벌어질 수 있는 이 다양한 일들 중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안할 것이냐, 그리고 한다면 얼만큼의 시간을 들일 것이냐, 이런 모든 것을 결정하는 주체가 ‘나’일 것이고, 대학원 생활에선 이러한 자기관리를 배우게 될 것이다.

(어떤 분은 ‘공부할 나이에는 공부에 집중해야해’라고 하시고, 어떤 분은 ‘다양한 경험이 중요해’라고 하시는데, 본인의 성향에 잘 맞고, 그러면서도 같은 시간 분배에 대해 최대의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결정을 하도록 하자. 정답은 없다.)

일주일 넘게 종일 실험실에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종일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험과 동시에 미드를 시작했다. 실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보기에는, 한 회에 20분 정도인 미드는 매우 적절하다. 게다가 영어로 되어 있어 놀고 있지만 놀고 있지만은 않은 느낌도 준다. 물론, 한글 자막을 늘 깔아 놓지만. 미드를 보다보면 시간은 20분 단위로 흘러갔다. 때로는 실험이 끝나고 나서도 한 편만 더, 한 편만 더, 하느라 1시간이나 늦게 결과를 확인한 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보는 예능 프로그램도 늘었다. 긴 실험에 좋다.

눈 뜨고 바로 실험실로 향하는 것도 맞긴 하다. 하지만, 그 시간이 11시쯤일 따름이다. 시간이 애매해서 샌드위치를 사오는 것뿐이다. 샌드위치를 그냥 먹긴 아쉬우니 예능을 틀어놓고 먹기 시작하면 바로 1시간이 흐르고, 실험 결과를 잠시 확인하다가 페이스북을 좀 하다보면 학교 식당 점심시간이 이미 지나있다. 그래서 라면을 먹으러 가는 것이다. 에이, 관두자. 동정이 부담스러운 건 둘째 치고 너무 쪽팔린다. 아니, 그보다, 만에 하나 교수님이 보실라

– 김창대님의 소설,  “과학 논문 과정에 관한 고찰” 중에서…

나도 이런 모습은 아닐까 한번 반성해보자.

사실 이 글은 내 스스로에게 말하는 글이다. 나는 공부에만 집중하기도 버거운 박사과정 생활 속에서 너무나 많은 일들을 벌이고 있다. 주제넘게 이런 꼰대글들도 쓰고 말이다. 내가 해야할 일도 너무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난 페북에 흘러가는 소식들을 읽고 이에 반응하는데 몇시간을 소모하고 만다. 오늘이 지나가면 잊혀질, 결국 몰랐어도 될 그런 떡밥들에 대해서 말이다.

나 정말 잘하고 있는걸까…?

나는 늘 이런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박사과정, 나는 아직도 그 정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근데 아마 졸업을 하고 나서도 인생 내내 그 정답을 찾고 있을 것 같다. 결국 모두 내가 결정하고 내가 평가해야할 내 스스로의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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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못해도 논문 잘 읽는 법

‘그 발번역 정말 못읽겠더라. 차라리 원서 읽어.’

‘맞아맞아~ 어떻게 한글이 영어보다 어렵니? 원서가 훨씬 쉬운 듯’

대학생 초년 시절, 영어가 너무 벅찬던 내가 운좋게 번역본이라도 구해 들고 있을지면 친구들은 항상 내게 이런 말을 건냈다. 번역본이 훨씬 어렵지 않냐면서 말이다.

‘당연하지… 그냥 원서 읽을 걸 그랬어…!’

나도 이렇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이 번역이 발번역이라면 내 번역은 똥번역인걸…ㅠ 적어도 번역본을 읽으면 하루에 한페이지 이상은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아무튼 나는 영어를 무지 못했고, 지금도 못하며(…ㅠ), 앞으로도 못할 것이다(ㅠㅠ팩트폭행ㅠㅠㅠㅠ)

하지만 결국엔 그 어떤 대학원생들도 영어를 피해갈 순 없었다. 최신 지식은 영어로 되어있고, 대부분의 지식공유(=논문)도 영어로 되고 있으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영어도 읽지 못하고 ‘누군가의 번역본’만 읽는 본인 역시 독립적인 연구자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어에 까막눈인 나, 어떻게 하면 논문을 효율적으로 읽을 수 있을까?

논문, 보기만해도 울렁거리는 그것이여...
논문, 보기만해도 울렁거리는 그것이여…

논문 영어, 겁먹지 마라

먼저 말하고 싶은건, (적어도 이공계) 논문 영어는 일상 영어보다 훨씬 쉽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냥 논문만 읽기도 어렵고, 영어만 읽기도 어려운데, 논문 영어면 얼마나 어렵겠어?’라며 지레 겁을 먹는데, 사실 논문 영어는 뉴스 영어나 소설 영어보다 백만 배 쉽다. 왜냐하면 논문은 표현의 간결성(conciseness)과 명료성(clarity)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중언부언 하지도 않고, 괜히 추상적인 말을 쓰거나 모호한 말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논문의 영어 구조는 매우 명확하다.

나는 이런 문제를 풀거야 (abstract)
사실 이 문제는 이런 동기에서 연구가 시작된건데 (introduction)
관련해서 이런저런 접근들이 있었지 (related works)
난 이런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보려고 하는데 (method)
정말 이게 잘 먹히는지 실험도 해봤어 (experiment)
이를 통해 이런 사실도 알아냈지만 한계점도 있지 (discussion)
마지막으로 귀찮은 너를 위해 요약 (conclusion)

논문은 위의 구조에서 ‘이런, 저런, 어떻게’ 등등이 무엇으로 치환 됐는지만 알면 된다. 수식? 그건 정말 이 논문을 재현할만큼 관심이 있을 때 자세히 들여다 보는거고 (혹은 문장보다는 수식으로 확인하는게 더 명확하기에 들여다 보는거고), 결국 논문의 핵심은 ‘내가 주어진 문제에서 이러한 기여(contribution)를 했다’가 내용의 대부분인 것이다.

그러니 미리부터 겁먹지 말자. 영어기사는 못 읽어도 논문 영어는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다음 섹션부터는 실제 논문 하나를 잡고 읽는 과정을 같이 해보도록 하자. 사실 오늘 논문을 하나도 안읽었기에 1타 2피를 취하려는거다. 필자가 석사를 갓 입학한 학생이라 배경지식이 매우 얕다고 가정해보고 한번 같이 읽어보겠다.

논문 고르기

일단 논문부터 찾아봐야 할텐데, 가장 쉬운 방법은 구글스칼라를 이용하는 것이다. 구글스칼라에서 웹문서를 검색하듯 관심있는 키워드를 넣고 논문을 검색 하면된다. 한번 같이 해보도록 하자.

우선 그 분야의 개략적인 연구들을 훑어보려면 관련 키워드와 함께 ‘review’, ‘survey’, ‘tutorial’ 등을 넣고 함께 검색해보면 좋다. 이들은 특정 문제를 푸는 일반 논문들과 달리, 관련 연구들을 종합하거나 (review), 조사하거나 (survey), 쉽게 설명하고 있다. (tut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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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을 보면 논문의 출판 연도의 범위를 설정해가며 검색할 수 있음을 참고하자. 위의 논문 검색 결과에서 보면 두번째에 나온 deep learning이란 논문이 대가들에 의해 쓰여지고 네이처에도 실렸던 ‘개론적 성격’의 논문인데 매우 쉽게 쓰여졌고,  논문 인용수 (cited by 부분)도 짱인듯 하니 저 논문부터 딥러닝 공부를 시작하면 될 것 같다. 딥러닝 공부 방법도 알려주는 꿀 포스팅

리뷰 논문은 특별한 형식의 논문이니, 이 논문 말고 일반적인 논문을 하나 검색해서 함께 읽어보자. 논문 제목은 “Deep, Convolutional, and Recurrent Models for Human Activity Recognition using Wearables”(2016). 뭔가 웨어러블 장치에서 얻은 데이터를 딥러닝을 이용해 사람 행동 인식에 사용한다는 내용인 것 같다.

초록 읽기 (Abstract)

세상 연구자들 중 99%는 초록(abstract)부터 읽는다. 물론 제목부터 읽고… 초록은 마치 ‘출발 비디오여행’에서 보여주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와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논문들은 ‘초록 읽기’ 단계에서 나머지를 읽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 그러니 논문 읽기는 초록의 한문장 한문장을 유심히 뜯어보는 것으로 시작하도록 하자.

Human activity recognition (HAR) in ubiquitous computing is beginning to adopt deep learning to substitute for well-established analysis techniques that rely on hand-crafted feature extraction and classification techniques. (한가한 소리로 시작하고 있네.)

From these isolated applications of custom deep architectures it is, however, difficult to gain an overview of their suitability for problems ranging from the recognition of manipulative gestures to the segmentation and identification of physical activities like running or ascending stairs.(어떤 점들이 어려운 점들이라 하는군... 문제 소개)

In this paper (밑줄 쫙, 이제부터 내가 뭘했다는 얘기다. 아마도 위에서 언급한 어려움을 해결하려 했겠지?) we rigorously explore deep, convolutional, and recurrent approaches across three representative datasets that contain movement data captured with wearable sensors. (딥러닝을 세가지 웨어러블 센서 데이터셋을 가지고 탐색했군. 탐색이라... 뭐 이런 애매한 단어를...) 

We describe (1) how to train recurrent approaches in this setting, introduce a (2) novel regularisation approach, and illustrate (3) how they outperform the state-of-the-art on a large benchmark dataset. (이런 것들을 했구나... 앞으로 이런거 찾으며 읽으면 되겠다.)

Across thousands of recognition experiments with randomly sampled model configurations we investigate the suitability of each model for different tasks in HAR, explore the impact of hyperparameters using the fANOVA framework, and provide guidelines for the practitioner who wants to apply deep learning in their problem setting. (실험도 했고 파라메터들의 영향도 조사했고, 실험결과에 따른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고 하네.)

영어를 보니까 벌써 졸음이…ㅠ

논문 초록을 다 읽었다면 적어도 이 논문이 ‘무슨 문제’를 풀려고 했고, ‘어떠한 새로운 기여’를 담고 있는지 파악했어야 한다. (만약 이 문제가 내가 관심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논문 패스…)

우리가 선택한 이 논문에서는 애플워치 같은 웨어러블 센서를 이용해 사람의 행동을 인식하는 문제(HAR)를 다루고 있는데,  (1) 웨어러블 센서 데이터는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지 소개하고, (2) 거기에 적당한 새로운 regularization 방법을 제시했으며, (3) 이것이 어떤 파라메터 세팅 속에서 잘되는건지 실험을 통해 증명한 것 같다.

이정도면 오케이. 혹시 내가 잘못 이해했을 수 있으니 결론을 미리 한번 보도록 하자.

결론 읽기 (Conclusion)

논문은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필자 같은 경우엔 내가 초록을 통해 ‘다루는 문제와 이 논문의 기여’를 파악한 후,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결론을 먼저 읽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왜냐면 나는 나를 못믿으니까…

In this work we explored the performance of state-of-the-art deep learning approaches for Human Activity Recognition using wearable sensors. (아까 사람행동 인식 문제를 푼다고 그랬었지?) 

We described (1) how to train recurrent approaches in this setting and (2) introduced a novel regularisation approach. In thousands of (3) experiments we evaluated the performance of the models with randomly sampled hyperparameters. We found that bi-directional LSTMs outperform the current state-of-the-art on Opportunity, a large benchmark dataset, by a considerable margin. (얘 아무리 귀찮아도 앱스트랙이랑 똑같이 썼네...)

(중략)

We found that models differ in the spread of recognition performance for different parameter settings. Regular DNNs, a model that is probably the most approachable for a practitioner, requires a significant investment in parameter exploration and shows a substantial spread between the peak and median performance. Practitioners should therefore not discard the model even if a preliminary exploration leads to poor recognition performance. More sophisticated approaches like CNNs or RNNs show a much smaller spread of performance, and it is more likely to find a configuration that works well with only a few iterations. (원래 파라메터에 따라 성능이 많이 달라지는데, DNN이 파라메터 찾는데 제일 개고생이고 CNN이나 RNN은 그나마 좀 낫다네... 별 인사이트가 없자나ㅠㅠ 논문 잘못 골랐나..ㅠㅠㅠ)

초록과 결론을 통해 논문이 무슨 문제를 풀려했고, 결국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 알았으면 이미 논문의 절반은 읽은거다. 마치 드라마의 인물관계도를 파악하고 나중에 엔딩을 스포일 받은 느낌이랄까?

만약 ‘이 드라마는 이쯤이면 됐어. 그만볼래.’ 싶으면 논문을 그만보면 되는 것이고, ‘우아, 재밌겠다. 도대체 어떻게 한거지?’ 궁금하면 서론부터 더 자세히 읽어나가면 될 것이다.

논문읽기에 지쳤을 땐 이렇게 외쳐보자. '이런 내맘 모르고 너무해 너무해.'
논문읽기에 지쳤을 땐 이렇게 외쳐보자. ‘이런 내맘 모르고 너무해 너무해.’

서론 읽기 (Introduction)

사실 서론이야말로 초짜 대학원생들에겐 가장 보물과 같은 파트이다. 왜냐하면 논문의 본론은 단지 자신의 지엽적인 문제 해결만을 다루고 있지만 (게다가 이해하기도 어렵다!) 서론에서는 주옥같은 주요 연구들을 한줄 요약들과 함께 너무나도 친절하게 소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개되는 논문들은 대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연구자라면 꼭 읽어야 하는 논문들이 많다!

그러니 이번 논문은 버리더라도 서론을 통해 다음 논문은 꼭 소개받도록 하자!

한 논문의 서론에선 적게는 한두개, 많게는 대여섯개까지 읽고 싶은 (혹은 읽어야 할)  논문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 것을 읽으면 또 주렁주렁 다음에 읽어야 할 논문들이 생긴다. 이것이 대학원생들이 논문만 쌓아놓고 안읽는 이유  첫 논문을 읽기가 어렵지 그 다음의 사슬을 따라가는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니 다시 강조하지만, 연구 초짜라면 서론을 통해 주옥같은 논문들을 소개받도록 하자.

서론은 (1) 내가 어떤 문제를 풀고 있는지, (2) 관련 연구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왔는지, (3) 마지막으로 나는 그들과 달리 어떤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했는지를 상대 비교와 함께 설명해준다. 큰 그림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러니 서론을 읽을 때 산만하게 빠져들지 말고 각 연구들을 왜 서론에서 보여주고 있는지 이해하며 읽도록 하자. 모든 내용은 본론을 잘 이해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논문의 2/3는 읽은거다! 서론에서 다른 흥미로운 논문을 소개받아 그쪽으로 넘어가고 싶다면 여기서 읽기를 멈춰도 좋다. 하지만 그런식으로 논문 소개만 받다가 소개팅만 백번한 사람으로 끝날 수도 있음에 유념하자. 소개팅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소개받는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언젠간 사귀어야 한다. A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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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독해를 쉽게하는 방법 중 하나는 ‘앞에 나올 내용을 예상하며 읽는 것’이다. 이제까지 초록, 결론, 서론을 읽었던 것은 모두 본론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 잘 예측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또 한가지 본문 이해에 도움을 주는 소재가 있다면 바로 표와 그림들이다. 영어만 남은 사막같은 논문에 한줄기 오아시스와도 같달까?

논문을 읽기 귀찮다면 초록,서론,결론으로 논문의 개요를 파악한 뒤 표와 그림을 통해 본문을 예측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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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없게도 우리가 선택한 논문은 표가 2개, 그림이 2개 밖에 없다. 저자한테 따지고 싶은 심정ㅠ  Table 1은 실험에 사용된 다섯가지 딥러닝 모델들(행)과 이들의 파라메터값들(열)을 보여주고 있다. 그냥 실험 세팅 이렇다는 것에 대한 디테일. 과감히 패스….

Table 2는 이 논문의 메인 실험결과이다. 5가지 모델을 가지고 3가지 데이터셋에 대해 실험해봤는데 굵게 표시된 성능들이 최고 성능들이었음을 나타낸다. 결국 이 논문도 노가다&쇼 논문이구나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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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은 5가지 모델을 설명하기 위한 그림들이다. 처음보면 어려워보이지만 사실 이 분야 사람들에겐 교과서에 적힌 내용을 옮겨온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패스… 난 시험에 안나오는거 팍팍 패쓰해주는 선생님이 좋더라…

마지막으로 Figure 2은 그냥 단순히 Table 2처럼 성능만 보여주면 뭔가 심심하니까 통계적으로 약간의 허세를 부린 것이다;;; 이 그래프를 통해 얻은 특별한 인사이트가 있나해서 본문에서 찾아봤지만 별게 없었으니 이 역시도 과감히 패스. 논문 읽기 싫은지 점점 성의가 없어지는구나…

방법과 실험 (Methods & Experiments)

은 생략하도록 하겠다ㅎㅎㅎ 다들 지치셨을 것 같으니…ㅎㅎㅎ 특히 내가 지쳤다ㅎㅎㅎ

이제까지의 논문읽기가 “무엇을”, “왜”에 대한 내용이었다면, 방법과 실험은 “어떻게”에 대한 본연구의 자세한 설명이다. 이 부분을 읽는데는 왕도가 없다. 수식이 이해가 안되면 글을 뚫어져라 읽고, 글이 이해가 안되면 수식을 뚫어져라 보도록 하자.

“수식이 이해안되면 어쩌나요? 그냥 넘어가나요?”

이러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만약 그 수식의 역할만 이해한다면 디테일을 모르고 넘어가도 상관없다. 중요한건 그 수식이 인풋으로 무엇을 받아 아웃풋으로 무엇을 내놓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왜 이 수식이 필요한지, 없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만약 이정도까지 이해했다면, 디테일한 수식이 외계어로 써있어 못읽겠다 하더라도 이해한셈 치고 넘어가도 좋다. 전체 논문을 읽는데엔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건 수식이 아니라 ‘내가 뭘 읽고 있는지’와 ‘내가 왜 읽고 있는지’의 능동적 이해 자세이다. 혼미해지는 정신 꽉 부여잡고 이 논문의 핵심스토리에 집중하자.

마무리 

우리는 생전 처음 보는 논문을 함께 읽어봤다. 논문을 다 읽었으면 처음에 시작했던 논문 구조에 맞춰가며 내가 깔끔히 이해했는지 정리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혹자는 노트로 정리하기도 하고, 혹자는 슬라이드로 친구들 앞에 발표를 하기도 한다고 한다. 참고로 나의 지도교수님은 LaTeX로 각 논문을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풀어 메모해놓더라. 이렇게 하면 논문을 쓸 때도 복붙만 하면 되니 참 편리하다고 한다. 교수님이 원어민이니까 가능한건가…ㅠ

우리가 읽었던 논문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나는 이런 문제를 풀거야 (abstract)
    : 웨어러블센서 데이터를 이용해 사람 행동을 인식하는 문제 (HAR)
  • 사실 이 문제는 이런 동기에서 연구가 시작된건데 (introduction)
    : 보통 데이터와는 다른 웨어러블 센서 데이터의 특징들, 그리고 딥러닝 적용에서의 특별 고려사항들
  • 관련해서 이런저런 접근들이 있었지 (related works)
    : 딥러닝/HAR/딥러닝 모델들에 대한 소개
  • 난 이런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보려고 하는데 (method)
    : 새로운 regularization 방법 제시
  • 정말 이게 잘 먹히는지 실험도 해봤어 (experiment)
    : 새로 도입한 regularization 포함, 총 5개 딥러닝 모델의 3가지 데이터에 대한 비교실험
  • 이를 통해 이런 사실도 알아냈지만 한계점도 있지 (discussion)
    : DNN은 파라메터에 따라 성능이 많이 바뀌지만 CNN/RNN은 그나마 덜 바뀐다는 것. 반복적인 운동 인식에는 CNN이 성능이 좋고, bi-RNN은 레이어 수에 따라 성능변화가 심하다는 것 등등
  • 마지막으로 귀찮은 너를 위해 요약 (conclusion)
    : 사실 아주 획기적인 논문은 아니야. 힝 속았지?

여러분들도 이런 식으로 논문 읽기와 논문 요약을 반복해 나가신다면 연구동향 파악과 주제 정하기, 본인의 연구 시작하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덧) 많은 분들께서 페이스북 댓글들을 통해 본인들의 논문읽기 팁을 공유해주셨다. 여러분들도 본인의 논문읽기 초짜 탈출에 도움이 되었던 팁들이 있으시다면 이 글의 댓글로 함께 공유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대.알.좋… 앗.. 어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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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리디북스,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전자책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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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지도교수 만나는 법

지난 글 “나의 유학도전 성공 이야기”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관문”에서 성공과실패가 판가름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고3학생은 대학입시 “관문”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성시공과 실패가, 취업준비생은 취직 “관문”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성공, 실패가 갈린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 “관문”을 통과했다면 그건 “이제 시작이시네요”란 뜻이지, 결코 “성공하셨네요”는 아닐 것이다. 유학도 마찬가지다. 나는 유학에 성공한 사람이 꼭 Winner이고 실패한 사람이 꼭 Loser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학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일단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합격기술을 연마에 안간힘을 쓰고 계시겠지만, 학교는 수단일 뿐, 진정 성공을 얘기하고자 한다면 내가 가고픈 길부터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유학 입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좋은 학점, 영어성적, 자기소개서, 추천서, 지도교수 컨택 등이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게 있고, 그것을 향해 실제로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대학원 선택, 무엇이 중요한가

대학원을 진학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무엇일까? 학교? 전공? 장학금? 아니면 연구분야?

많은 고려 요소들이 있지만 나는 ‘어떤 지도교수를 만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하고싶은 연구분야’를 선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최악의 지도교수 밑에서 하고싶은 연구를 하는 것과 최고의 지도교수 밑에서 적당한 주제의 연구를 하는 것 중에 굳이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후자를 선택하고 싶다. 대학원생에게 지도교수의 존재는 마치 아기가 부모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것과 같아서, ‘어떤 지도교수를 만나느냐’에 따라 학계가 푸르른 바다처럼 보일 수도, 또는 더러운 시궁창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 생활의 푸르른 바다를 만나고 싶다면 좋은 지도교수를 만나는 것은 아마 필수요건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학교 이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지도교수=연구분야>장학금>학교’이어야 할 선택의 우선순위를 그 반대인 ‘학교>장학금>연구분야=지도교수’로 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명문대 안좋을 과를 갈래 아니면 후진대 좋은 과를 갈래?’의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던 대학 입시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얕은 고민으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건 대학입시를 마지막으로 이별해야 하지 않을까…? 대학원을 간다는 것은 나의 미래 인생을 그리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단순히 스펙에 따른 줄세우기로 결정 되어선 안될 것이다.

물론 좋은 학교의 졸업장으로 받아 취업 만을 목표로 한다면 학교 이름을 우선시하는 선택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석사/박사 졸업장에 새겨진 (학사보다 더) 좋은 학교 이름이 꼭 취직에 ‘효능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것만을 목적으로 대학원에 진학하였다면 그것은 그저 취업을 위한 가방 끈 낭비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대학원 생활에 있어 졸업장에 새겨지는 학교 이름은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것일 뿐이어야지 그것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그리고 좋은 학교의 졸업장 만을 바라보며 ‘졸업만 시켜주세요’라고 바라는 대학원 생활은 그저 ‘전역만 시켜주세요’라는 군대 생활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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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시계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아니…

좋은 지도교수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참고로 이 글은 본인의 생각에 의해 쓴 글이지만 최윤섭님의 글 "지도교수는 어떻게 골라야할까"와 배현진님의 글 "지도교수와 학생의 만남은 결혼과 같다."와 유사한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다들 비슷하나 봅니다. 위의 두 글도 참 좋은 글들이니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도교수를 찾기 앞서 먼저 알아 두어야 할 점은 교수가 학부생을 대하는 모습은 자신의 대학원생들을 대하는 모습과 크게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교수에게 있어 강의는 일종의 쇼와 같다. 그리고 학부생들은 그 쇼에 입장한 관객들이다. 잘 짜여진 각본과 연기력에 의해 좋은 연극을 펼친다고 해서 그 배우가 꼭 가정에서 훌륭한 사람은 아닐 수 있듯, 강의를 잘하는 교수가 꼭 대학원생들에게 좋은 지도교수는 아닐 수 있다. 그러니 보기 좋은 떡과 먹기 좋은 떡을 구분하자. 정말로 좋은 지도교수는 오히려 대외적인 노출(showing)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교수일 수 있다. 왜냐하면 외부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수일수록 대외 노출(showing)을 위해 대학원생들을 더욱 쥐어짜고 학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학 전 지도교수를 잘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그 연구실에 들어가 인턴으로서 연구에 참여해보는 것이다. 이 때 처음부터 연구의 깊은 부분에 관여해 좋은 논문을 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버리도록 하자. 처음 부여 받은 일은 아마도 선배 대학원생들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한 단순 조사(survey)나 반복 실험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학문적으로는 얻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지만, 바로 곁에서 대학원생들의 고민과 삶을 간접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래 계획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지도교수님이나 연구분야에 대한 대학원생들의 생각들을 듣다 보면 본인이 이 연구실에 오는게 맞을지에 대한 생각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단, 대학원생들의 엄살에 주의하자. 많은 대학원생들이 본인이 최악의 헬에 살고있다고 이야기하겠지만, 세상에 헬 아닌 곳이 없고 힘들다고 얘기 하지 않는 곳이 없다. 참고로 회사에 간 선배는 회사에 오지 말라고 하고, 대학원에 간 선배는 대학원에 가지 말라고 하는게 보통의 반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연구실 인턴 생활을 하기 쉽지 않단 걸 잘 알고있다. 맘에 드는 교수님의 연구실을 고르는 것도, 교수님을 찾아가 인턴 자리를 요청하는 것도, 방학/계절학기/어학성적을 포기하고 연구실에 나가 무료 봉사를 하는 것도 나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올인할 수 있는 그리 쉬운 선택은 아니다.

그럴 땐 적어도 그 연구실의 대학원생과 대화라도 나눠보자. 직접 아는 사람이 없다면 아는 사람의 소개라도 받아서 말이다. 타 대학으로의 진학을 목표로 한다면 이러한 대화의 기회를 찾기가 참 힘들 것이란 걸 알고있다. 그래도 꼭 해야한다. 지도교수가 아무 정보가 없는 학생을 뽑을 수 없는 것처럼, 학생 역시도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지도교수와 한 배를 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연구실에 아는 사람이 없다면, 연구실 홈페이지에서 구성원 중 가장 인상이 좋아 보이는 몇 명에게 메일을 보내 보거나 아니면 무작정 (타대학이라도) 연구실을 찾아가 그곳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시도해보도록 하자. 그 어떤 행동도 아무 정보없이 내 인생을 맡기는 것보단 낫다.

필자가 서울대에 있을 떄의 경험을 비추어보면, 교수의 성격이 괴팍해 자대생이 잘 가지 않는 연구실이 주로 아무 정보가 없는 타대생 출신으로 채워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리고 이 학생들은 ‘그 랩에 누가 가’라는 곳에서 고생이 참 많은 것 같았다. 그러니 타대생 출신 멤버가 너무 많은 연구실을 기회의 땅으로만 보지 말고, 안좋은 사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의심해보자. (반면 타대생 출신 구성원이 많은 이유가 교수가 신임교수여서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거나 학교에 대한 편견이 적은 교수여서 그런 것이었다면 이러한 연구실들은 굳이 피할 필요가 없다.) 교수가 어떠한 사람인지 말로 잘 설명하기 힘들다면 아래의 그림을 해당 연구실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교수가 어떤 유형인지 물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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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가지 유형의 지도교수의 모습

어떤 유형의 지도교수가 좋을까?

말 나온 김에 위의 유형들에 대해 좀더 깊은 분석을 해보도록 하자. 위 그림에 나온 아홉가지 교수 유형 중 최선의 지도교수는 어떤 타입이고, 최악의 지도교수는 어떤 타입일까? 그래서 나름대로 순위를 한번 매겨봤다. 참고로 교수와 제자의 궁합은 제자의 성향과도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아래의 순위는 활발하고 주도적인 편인 필자의 입장에서 작성된 것임을 밝혀둔다.

9위 – 사이코

나는 일단 어느 유형이든 인간적 측면에서 실망을 안겨주는 지도교수는 실력과 상관없이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아동학대를 당하며 자란 아이가 나중에 부모가 되어 아동을 학대할 가능성이 크듯, 계속 실망스러운 지도교수의 모습을 통해 학계를 바라보다보면 본인도 그 모습을 닮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인간적으로 존경할 수 없는 지도교수는 대학원 생활 또는 그 이후의 미래를 생각하더라도 선택하지 않는 쪽이 좋다.

6위 – 노예주인, 구멍가게 주인, 느긋한 교수

세상 어느 일이든 그것들에 맞는 적정선이 있다. 내 생각에 노예주인은 대학원생에 대한 강요가 과해서, 반면 구멍가게 주인과 느긋한 교수는 의무를 다 하지않는 일종의 태업과 같아서 두 경우 모두 나쁜 케이스들인 것 같다.

굳이 꼽자면 노예주인이 조금더 나쁘다. 실제로 한국에는 이렇게 대학원생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교수들이 종종 있는데, 문제는 그들의 지도 방향조차도 틀릴 때가 많은 채 학생들을 이리로 저리로 휘두른다는 것이다. 이런 교수 밑에서 있다보면 본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은 채 퇴근만을 바라보며 살기 쉽다. 그러니 이런 지도교수들은 피하도록 하자.

구멍가게 주인과 느긋한 교수는 노예주인처럼 학생을 괴롭히지는 않는데, 반면 학생의 열정을 자연스레 소멸시키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다른 곳에 진학해 정상적인 지도교수를 만나고 나면 ‘연구가 이런거였어?’라며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저 시간만 떼우려고 대학원에 간 것이 아니고, 또한 지도교수가 안빈낙도하는 모습을 보기위해 대학원에 간 것도 아니니 이런 교수들은 피하도록 하자.

5위 – 달변가

이 교수들의 장점은 본인의 연구를 아름답게 포장해줘 중요한 연구처럼 보이게하며, 이런 능력들을 바탕으로 과제비를 잘 따와 풍족한 연구실을 만든다는 것이다.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이 자식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듯, 지도교수의 과제 획득 역량 역시 무시할 것이 되지 못한다.

반면 이런 교수들을 보고 배우다보면 진정한 학문의 길을 걷지 못하게될 때가 많다. 나도 어느새 ‘발표할 때 잘 포장하면 되지’라며 노력보다는 포장의 힘을 더욱 믿게되며, 쇼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연구로 본인의 연구가 격하될 수도 있다. 결국 그리 좋은 타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4위 – 반쯤 신

반쯤 신은 매우 좋은 교수일 수도, 매우 나쁜 교수일 수도 있다. 만약 교수의 얼굴을 거의 볼 수 없다면, 그리고 나의 팀 리더(예를 들면 프로젝트를 같이하는 포닥)마저 그리 배울 점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는 ‘구멍가게 주인’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유명한 랩의 일원으로서만 그냥 방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레벨이 된다면, 반쯤 신의 심오한 학문적 깊이를 이해하고, 그가 전세계에 걸쳐놓은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을만큼 본인이 실력자 레벨로 들어선다면 반쯤 신은 매우 좋은 유형의 교수 타입이 된다. 보통 학회를 가거나 졸업 후 취직시장에 나가면 지도교수의 이름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기 마련인데, 이 때 반쯤 신의 이름은 본인을 알리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2위 – 통제광, 과학 오타쿠

나는 석사생이라면 태업을 일삼는 교수보다는 오히려 통제광이나 과학 오타쿠를 추천하고 싶다. 교수는 분명 대학원생들보다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통제광/과학오타쿠가 하는 이야기들이 때론 성가시게 들릴 때도 많겠지만, 그들이 얘기하는 사소한 디테일들이 때론 연구결과에 큰 차이를 가져올 때가 많으며 그러한 배움은 논문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나는 통제광/과학오타쿠가 주니어 연구자들에겐 좋은 습관을 몸에 베게하는 좋은 지도교수 타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노예주인과는 구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통제광의 통제가 본인의 연구에 국한되어야지 사생활까지 넘어오면 안된다. 또한 많은 부분들에 대해 지도교수가 의견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왜 해야하는지 교수가 친절히 설명해주며 학생의 의견도 경청해주는 교수라면 이보다 금상첨화일 수는 없을 것이다.

1위 – 떠오르는 별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실력만 된다면 떠오르는 별이 쏘는 로켓에 탑승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지가 아닐까 싶다. 다만 떠오르는 별은 매우 바쁘기에 정신차리고 따라가지 않으면 낙오되기 쉬우며, 주변의 많은 실력자들을 보면서 좌절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고 떠오르는 별의 꼬랑지를 잡아보도록 하자. 만약 본인의 실력이 아직 떠오르는 별을 쫒기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나는 오히려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통제광/과학오타쿠가 더 낫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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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학도전 성공 이야기

지난 이야기  “나의 유학도전 실패 이야기”에선…

“난 5개월을 공부하고 참 별로인 영어점수를 얻었다. 학점 역시 좋지 않았고 말이다. (중략) 난 그렇게 허겁지겁 영어성적, 추천서, SoP를 만들어 ‘이름이 맘에드는’ 학교 8곳에 원서를 제출했고 보기좋게 떨어졌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사실 문제가 아닌 점을 찾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 싶다. 내 지원서는 그 어느 것도 뛰어난 점이 없었다. 사실 유명대학의 교수들은 이미 알고있는 지원자들 중에서만 뽑아도 신입생 자리가 부족할 것인데 굳이 나를 뽑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2013년 5월 마지막 불합격 소식을 들음과 동시에 나는 또다른 입시를 6개월 후에 앞두게 되었다. 그 사이 나는 과연 지원서의 어느 부분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영어성적? 학업계획서? 그런다고 내가 붙을 수 있을까? 처음 맛본 실패에 나는 모든 것이 불안했다.”

나는 왜 유학을 가고 싶었던걸까?

유학에 실패하고나니 나는 근본적으로 이 길이 나의 길이 맞는지 깊은 회의가 들었다. 이미 나는 유학준비를 위해 1년을 허비했다. 그리고 또 한번 준비한다 한들 내겐 합격하리란 보장도 없었다. 아마 그 때 내 심정은 재수를 하게된 수험생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그렇게 나이 꽉찬 서른살에 유학 재수생이 되었다.

실제로 유학도전 실패 후 깔끔히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걷는 친구들을 종종 봐왔기에 나 역시도 포기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특히 공부보다는 잡기에 능하고 이리저리 나대기만 하던 내가, 진득히 책상 앞에 앉아 학문에 정진하는 학자의 길을 간다는 건 무언가 잘못된 선택처럼 보였다. (주 – 학자의 모습이 꼭 이런 모습만 있는건 아니라는 것을 박사과정에 들어와 알게되었다.)

사실 내가 유학을 가려던 이유는 본질적 이유보다는 부차적인 이유가 많았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러한 것들이었다.

  • 한국에서만 30년을 살았는데 외국에서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 미래엔 컴맹만큼이나 영맹(=영어 문맹)이 바보취급 받을 것이다. 외국에 나가서 영어를 배우자.
  • 게다가 공대 유학은 (펀딩을 받으면) 돈이 들지 않는다. 이건 마치 무료 해외체험과 같지 아니한가!
  • 답답한 회사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난 자유를 원한다. 박사가 되면 좀더 독립적인 주체로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 인생 길다. 4년의 투자 정도는 그리 큰 부담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나중에 다시 공부를 해로야한다면 많은 희생이 따를지도 모른다.
  • 그리고 난 아직 많이 부족하다. 로봇 분야에서 석사도 하고 관련 회사에서 일도 해봤지만, 난 아직도 할줄 아는게 별로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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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서른살에 다시 이런 모습을 꿈꿨던 것 같다. (근데 왜 책을 손에 들고 다니는거야..?;;)

여러분들도 이와 같은 이유들로 유학을 고려하시는지 모르겠다. 물론 위의 이유들이 틀린 말들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유학을 온다고해서 꼭 위의 문제들이 해결되는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연구실에만 쳐박혀 있기에 영어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유학 준비할 때가 더 잘했던듯…, 나이는 한살한살 먹어가기에 미래에 대한 부담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공부를 통해 내 분야에 대해 좀더 많이 알게된 것 같긴 하지만, 또다른 헬게이트(=새로운 분야)를 탐구해야 했기에 앎의 농도(=아는 양/알아야 하는 양)는 점점 옅어지는 느낌이고 자신감은 점점 줄어만 간다.

결국 유학을 온다고 해서 위의 문제들이 해결되진 않는다. 그리고 우린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함을 익히 들어 잘 알고있다. 위의 이유들은 ‘박사가 되면 얻어질 결과’들에 대한 기대였지만, ‘결과에 대한 기대’는 부차적인 것이고 선택의 이유는 박사 공부를 하는 ‘과정’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은 것이 바로 “지적 호기심”이라는 본질적 이유였다.

‘나는 4~5년을 투자해 도대체 무얼 알고 싶은거지? 내게 그런 호기심이 있긴한가?’

이 질문에 대한 긴 고민 끝에 나는 나의 연구분야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석사 때 연구하던 Robot motion planning도 아니고, 회사 때 담당업무였던 exoskeleton (일명 아이언맨)도 아닌, 새로운 분야 Machine learning 으로의 도전이었다.

2013년 5월, 모든 학교로부터 불합격 통지를 받고 새로운 입시를 단지 6개월 앞에 남겨놓은 그 때,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내가 그동안 알고 싶었던 분야로 내 전공을 옮겼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새로운 분야로의 이동, 불안한 상태에서 더 불안한 상태로의 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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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걸까… 유학을 갈 수는 있는걸까…?

머신러닝으로의 도전

정말 한가한 발걸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입시가 6개월 남았는데 아무 경력도 없는 곳으로 분야를 바꾸다니… 하지만 나는 그 분야가 아니면 박사 공부를 할 의미가 없다고 느꼈었다. 내가 정말 알고싶은 것이 머신러닝이었고, 그 분야라면 박사과정 내내 정말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스로 학습하는 로봇’이라는 나의 어렸을 적 꿈과도 맞닿아 있었다.

문제는 내가 머신러닝에 대해 공부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재활치료용 exoskeleton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연구실을 이끄시는 김박사님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분야를 옮길까 말까 갈등하는 내게 김박사님은 ‘태웅씨, 인생 짧은데 하고싶은거 해야지’라며 용기를 주셨고, 나는 그렇게 김박사님 연구실을 떠나 머신러닝을 연구하시던 박박사님의 연구실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박박사님은 바로 나를 멤버로 받아들이는 대신 2주 후 나의 연구계획 발표를 들은 후 나를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2주간 유투브에 있는 머신러닝 강좌머신러닝에 관한 책을 놓고 열공했고, 내가 관심있어 하던 연구자들의 논문들을 읽어내려갔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내가 하고픈 분야와 가장 가까운 연구를 찾았고, 이 연구의 단점을 파고들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다. 그리고 2주 후,

“음… 빈 곳들이 많아보이긴 하지만… 한번 그 주제로 학회 논문을 하나 내보도록 합시다, 태웅씨.”

그렇게 나는 새로운 분야에서 새출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비록 새로운 분야는 낯설었지만, 다른 분야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던 배경지식이 그 분야의 공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머신러닝을 공부한지 4개월 만인 2013년 9월에 아이디어를 짜내어 메이저 로봇학회인 ICRA에 관련 논문을 낼 수 있었다. 나도 내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논문을 낼 수 있을지 몰랐는데, 평소 알고싶던 분야였고 연구를 하는 재미가 있다보니 학습이든 연구든 속도가 매우 빨랐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았다.

새로운 분야에 논문을 내는 여정은 내 유학 분야 결정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공부를 통해 다음의 질문에 대해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 나는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가
  • 관련해서 어떠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가
  • 이 분야의 주요 연구자들은 누구인가
  • 현재의 연구엔 어떠한 한계점이 있는가
  • 나는 그곳에서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는가

더이상 나는 US News Ranking에서 학교 랭킹으로 쇼핑을 하며 그럴듯한 연구실에 지원서를 내는 학생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무얼 연구하고 싶은지 알았고, 어떤 연구자와 함께 일하고 싶은지 알았다. 이제 남은건 그 연구자들에게 지원서를 내고 그들이 나를 학생으로 받아주기만 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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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팝니다

하지만 지원서 상에서 작년과 다른 점은 단지 논문 한 줄 뿐이었다. 그동안 연구에만 집중했기에 영어성적도 그대로였고, 자기소개서도 그대로였다. 이제 원서 제출까지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는데 나는 무얼해야할까? 토플, GRE 시험을 다시 치기에도 빠듯한 시간일텐데…

나는 영어성적을 올리기보다 연구자들과 직접 부딪치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일단 나를 소개하는 슬라이드를 만들어 관심있는 연구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당연히 대부분 답장이 없었다(…) 혹시 그 연구실에 한국인 학생이라도 있으면 그에게 메일을 보내 교수님께 나의 존재를 알려달라 부탁도 했었지만 그 역시도 녹록치 않은 과정이었다.

온라인에서 한계를 느낀 나는 쌩돈을 들여 로봇연구자들이 많이 모이는 학회에 참석하기로 한다.

교수는 잘 모르는 사람을 뽑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직접 가서 나를 알려야겠다.

11월 도쿄에서 열리는 IROS, 장소도 그리 멀지 않다.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서울대 연구실 후배들의 호텔방 바닥에서 잤고, 학회장에도 등록없이 몰래 들어갔다. 여러분 이러시면 안됩니다ㅠ 학회에 참석한 나의 목적은 분명했다. Sell myself.

내 메일 씹은 사람들… I’ll find you, and I’ll sell myself…

학회 중간에 커피브레이크 때가 되면 내가 관심있는 연구자들을 찾아가 말을 걸었다. (보통 이런 유명 연구자들은 주위 다른 연구자들에 둘러싸여있어 말을 걸 타이밍을 잡기도 쉽지가 않다ㅠ) 꾸역꾸역 빈틈을 찾아 말을 끼어들 틈을 캐치한 후,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당신의 연구실에 지원을 하려고 하는 학생이에요. 예전에 메일도 보냈었는데… 혹시 보셨나요? 못보셨다고요? 그럼 잠깐 제 연구분야를 소개해도 될까요?”  (물론 나의 짧은 영어로…)

그렇게 연구자들을 찾아 내 소개를 하고 다녔다. 절반 정도의 반응은 마치 길거리에서 원치않는 전단지를 받는 사람들의 반응과 비슷했다.

“혹시 가져오는 장학금 있나요? 없으면 아마 쉽지 않을텐데… 그래도 한번 정식 루트를 통해 지원해봐요.” (떫떠름….)

하지만 일부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오… 메일을 보냈었다고요? 미안해요 워낙 메일들을 많이 받아서… 혹시 오늘 다시 메일을 보내줄 수 있나요? 확인해보고 연락줄게요.”

그렇게 나는 University of Waterloo의 교수님과 Imperial College London의 교수님에게 다시 메일을 보낼 기회를 잡았고, 교수님들은 내 자료를 본 뒤 다음날 인터뷰를 하자고 하셨다.

다음날, 나는 다음날 학회장 한켠에서 각각의 교수님들과 한시간 정도의 대화를 나눴다. 질문의 대부분은 그동안 내가 어떤 연구를 했는지, 연구 과정에서 어떠한 문제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박사과정 동안 하려는 연구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등이었다. 아마도 내가 말하는 내용 뿐만 아니라내가 연구를 설명하는 모습을 통해 나의 연구 이해도나 열정, 나의 인성 등을 알아보셨던 것 같다.

만약 내가 지난 5월부터 새로운 분야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박사과정 때 무얼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묻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인터뷰를 통과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전공으로 박사를 갈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저 ‘그 분야가 핫하니까’나 ‘배우고 싶어서’라는 이유만으론 교수를 설득할 수 없다. 내가 왜 그 분야에 도전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연구로서 보여주어야 하고, 미래의 연구계획에 대해서도 충분히 충분한 동기부여(self-motivated)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한시간의 인터뷰 끝에 나는 기쁘게도 그 자리에서 바로 합격 오퍼를 받을 수 있었다. 이번에 지원을 하면 합격을 시켜주시겠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다시 말하는데도 가슴 떨리고 기뻤던 감정이 살아나는 것 같다. 아마도 한번의 큰 실패를 겪어봤기에 그 기쁨이 두배로 컸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직접 부딪쳐 나의 목적을 달성했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Screenshot from 2016-09-06 20:25:40

2013년 말, 나는 인터뷰를 했던 두 곳을 포함해 연구 과정 중에 관심있게 지켜보던 논문들의 저자가 있는 연구실 여섯 곳에 지원서를 냈고, 그 중 세 곳으로부터 합격 소식을 받았다. 합격 후 어떤 곳에 갈지 선택을 위해 그곳의 학생들에게 메일로 ‘교수님은 어떤 사람인가요?’라고 물어봤는데, U. Waterloo 교수님의 학생으로부터 “Dana Kulic 교수님은 연구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존경할 수 있는 분이다.”라는 메일을 받아 감탄했다. 한국에서는 교수님 욕 밖에 다들 안하던데… 나는 그 메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세 곳의 학교 중 지금의 U. Waterloo로 오게되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나의 지도교수님에 대해 너무나 만족하고 있다. 정말로 연구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존경할 수 있는 분이다. 사람은 직접 부딪쳐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건 교수가 학생을 선발할 때도 마찬가지고, 학생이 지도교수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만약 아직도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이 연구실에 지원을 해도 될까?’ 고민을 하고 있다면, 교수는 아마 그것의 1/10도 안되는 관심으로 당신을 바라볼 것이다.

유학도전의 성공 방정식?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관문”에서 성공/실패가 판가름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고3학생은 대학입시 “관문”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성시공과 실패가, 취업준비생은 취직 “관문”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성공, 실패가 갈린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맞지않는 전공으로 끊임없이 방황하는 경우도 많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이 길이 내 길이 아닌데…’라며 끊임없이 퇴사를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누군가 “관문”을 통과했다면 그건 “이제 시작이시네요”란 뜻이지, 결코 “성공하셨네요”는 아닐 것이다. (이것이 좋은 학벌이 성공의 기준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학도 마찬가지다. 유학에 성공한 사람이 꼭 Winner이고 실패한 사람이 꼭 Loser인 것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민 끝에 유학을 포기한 사람이 더 좋은 길을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입시”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유학준비생 분들께 다시 한 번 유학을 가야하는 이유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시란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을 정말 의미있게 보낼 자신이 있는지 여쭤보고 싶다.

당신은 왜 유학을 가려 하시나요? 당신은 왜 박사를 꿈꾸시는건가요?

요즘에도 가끔 ‘내가 첫 해에 유학에 성공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연구경력 상 강점이 있던 exoskeleton 분야로 말이다.

물론 그 분야로 유학을 갔더라도 나는 그 분야에서 나름 열심히 연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 남아있는 호기심은 영원히 풀지 못한 채 큰 응어리처럼 남아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남들이 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런 재미난거 하고싶은데…’라며 부러워만 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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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학교를 선택할지 고민하던 시절, 박사과정 중이던 외국인 친구 중 한명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학교 이름이 뭐가 중요해? 난 이름 없는 학교라도 내가 하고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면, 이름 있는 학교에서 하기싫은 연구를 하는 것보다 백배 좋을 것 같아. 그게 하버드이든 MIT이든 말이야.”

참으로 맞는 말이다. 유학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아마 일단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합격기술을 연마에 안간힘을 쓰고 계시겠지만, 학교는 수단일 뿐, 진정 성공을 얘기하고자 한다면 내가 가고픈 길부터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대학 전공도 단 몇 일만에 결정했는데, 박사과정마저 그럴 순 없지 않은가. 

유학 입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좋은 학점, 영어성적, 자기소개서, 추천서, 지도교수 컨택 등이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게 있고, 그것을 향해 실제로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관심있는 연구실에 찾아가 6개월 정도 연구 기회를 얻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내가 진정으로 바라고 열심히 그 분야를 파고든다면 나의 열정이 지구 어느 한 편의 교수에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학교만 쇼핑하는 유학준비생은 결코 지원서들 속에서 학생을 쇼핑하는 교수의 눈에 들지 못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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