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학생, 나쁜 학생, 이상한 학생 (2편)

지난 글에서는 박사과정 기간을 제법 훌륭히 보낸 학생 A를 만나봤다. 이번 글에서는 다른 학생들을 만나보자.

학생 B

학생 B는 지도교수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며 존중할 줄 아는 심성을 가진 학생이었다. 지도교수는 학생보다 대체로 경험이 많고 연구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분명 학생이 지도교수의 말을 존중하는 것은 필요하다. 다만 학생 B는 그 정도가 지나쳐서 지도교수가 말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 시간을 보내거나 의견을 내거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거나 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학생은 매주 정해진 미팅시간 이 외에 지도교수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서류처리 따위를 위해서 지도교수의 서명이 긴급히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미팅시간에는 주로 학생과 교수가 몇가지 아이디어에 대해서 의논하다가, 그 중 가장 괜찮아 보이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보고, 한 번 간단히 시도해보고 잘 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해보자라는 식으로 마무리짓곤 한다. 학생 B는 ‘그 괜찮아 보이는 한가지 아이디어’에 대해서 ‘미팅 시간에 의논했던 그 간단한 시도’를 적당히 해 본 뒤 그 다음 미팅시간까지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가 걸렸건, 실패를 했건 성공을 했건 상관없이 말이다. 자신이 직접 판단해서 무언가 모험적인 시도를 하는 일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 학생과는 2년 정도를 그렇게 보냈다. 연구가 진척이 있었을리 없었고, 학생과 나 모두 지쳤다. 결국 이 학생은 박사과정을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둬야했다. 이 학생이 그만두게 되는 과정에서 학과의 대학원생 지도를 총괄하는 교수님과 면담을 한 일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지도교수의 의견에 ‘아니오’라고 해도 된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놀랐다고 했다.

학생 C

학생 C는 중도에 지도교수에게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중간에 지도교수를 바꿔야 했던 학생이다. 학생 C는 수업 성적도 좋았고, 연구와 관련된 여러가지 일들도 제법 잘 하는 학생이었다. 지도교수와 여러가지 연구 및 개발 프로젝트를 했고, 그 일을 바탕으로 논문도 출판했다. 다만, 중간 중간 갑자기 연락이 안되고 사라지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한 번은 논문 제출 기한을 한 달여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차에 이 학생과 연락이 안되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논문 제출 기한을 넘겨서 다시 나타났다. 화가 난 지도교수가 추궁을 하니, 인터넷 및 전화가 되지 않는 산악 지대에 있는 국립공원에서 야영장 관리 자원봉사를 하러 갔다고 했다. 학생 C는 더 이상 그 지도교수와 일할 수 없었고, 다른 지도교수를 찾아야했다.

학생 D

학생 D는 수업 성적이 아주 좋은 학생이었다. 학과 내 다른 대학원생들과 비교했을 때 수업 성적으로는 최상위 5% 내에 들어가는 학생이었다. 학부과정과 석사과정을 좋은 대학에서 보내고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이 학생이 박사과정 1년차 때 들었던 수업에서는 모두 최고 성적을 받았으며, 이 학생을 가르쳤던 교수들은 아낌없는 칭찬을 보냈다.

이 학생은 무사히 졸업 하긴 했으나, 이 학생과 함께 했던 연구가 썩 즐겁진 않았다. 정해진 연구 회의 시간을 미루는 일이 잦았고, 연구가 진행되는 속도도 더뎠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었겠으나, 내가 의심컨데 학생 D는 전형적으로 ‘강의실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만 연구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답이 있음이 잘 알려진 연습문제를 교수가 알려주는 방법으로 ‘열심히’하기만 하면 잘 되는 수업에서는 정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공부하지만, 연구는 그렇지 않음에 어려움을 느꼈던 게 아닐까 한다. 그래서 연구에 집중하지 못 하고 결국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연구에서는 답도 없고 정해진 시간도 없다. 동기부여도 부족했고 그로 인해 시간 관리도 잘 하지 못 한 것 같다.

학생 E

학생 E도 학생 D와 비슷했다. 수업시간에 최고의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이었다. 해야 하는 연구가 있음에도 불구 하고, 연구보다는 수업 성적에 더 신경을 쓰는 듯 보였다. 학생 D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듯 했으나, 그보다는 훨씬 더 좋은 연구를 했고 더 좋은 성과를 냈다. 내가 판단컨데 가장 큰 차이점은 학생 E는 지도교수의 연구실에 자주 찾아와서 여러가지 질문을 하고 의논을 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학생 D는 연구와 관련된 궁금증으로 지도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학생 A만큼 자주 왔던 것도 아니고 질문이 잘 정리되어 있지도 않았지만, 학생 E는 자주 찾아와서 연구와 관련된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면서 자기 연구를 해나갔다. ‘강의실 모드’에서 ‘연구실 모드’로 바뀌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그 지점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학생 F

학생 F도 중간에 지도교수를 바꿔야했다. 처음 만난 지도교수와는 1년 정도를 같이 보냈는데, 그 지도교수가 불같이 화를 내며 이 학생과는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음을 통보했다고 한다. 상심 끝에 새로운 지도교수를 찾는 과정에서 나와 연락이 되었고 함께 해보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 학생과의 연구를 굉장히 즐겼다. 학생 A만큼 독립적인 학생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나의 기대를 넘어서는 성과를 보였다. 연구 성과가 나왔을 때면 다음 주의 미팅 시간 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이메일로 소통을 했고, 때로는 내 연구실에 찾아와서 연구 진행 사항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을 내기도 했다. 미팅 시간에 정한 ‘이번주에 해보기로 한 것들’을 마치자마자 그 다음을 바라보고 자신만의 판단으로 여러가지 실험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또, 내가 ‘참’이라고 믿었던 몇가지 생각의 오류를 발견해 내기도 했다. 물론 자신의 생각에 대한 오류도 자기 스스로 발견해내기도 했다.

이런 학생은 교수에게 굉장히 큰 힘이 된다. 나는 이 학생을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로 생각했다. 교수의 의견을 적절한 선에서 존중하여 말을 귀길울여 듣되,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교수의 생각을 의심할 줄 알았다. 내가 제안했던 방법이 잘 되었을 경우에는 그 다음 단계를 미리 보고 자신 만의 로드맵을 만들어 나갔으며, 내가 제안한 방법이 잘 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자신만의 대안을 만들고 시험할 줄 알았다. 연구는 그 누구도 답을 갖고 있지 않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교수라고 다 알 수는 없다. 언제나 100% 확신을 가지고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수도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스스로 오래 반복해서 생각해보거나, 혹은 주위의 동료 연구자의 의견을 물으면서 검증해나간다. 그 ‘동료 연구자’가 내 지도학생이라면 아주 큰 힘이 된다. 나는 학생 F가 굉장히 자랑스럽고, 이 학생을 지도하면서 많은 기쁨을 누렸다.

이 학생이 왜 첫번째 지도교수에게 이별통보를 받아야만 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 학생이 성장했을 수도 있을 것이고, 단지 그 지도교수와 잘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찌됐건 학생 F는 성공적인 박사과정 기간을 보냈다.

내가 바라는 박사과정 학생

내 생각에 박사과정 기간을 가장 훌륭히 보냈던 학생은 학생 A와 학생 F인 것 같다. 다른 학생들이라고 지금 인생을 잘 못 살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박사과정 기간에서만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새로운 박사과정 학생을 뽑을 때 바라는 학생 유형은 역시 학생 A 또는 학생 F이다. 그러면 그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이었나를 돌아보면 나는 두 가지로 정리한다. 호기심과 책임감.

교수들마다 박사과정 학생에게서 보고자 하는 점들이 다르겠지만, 나는 ‘호기심’ 있고 ‘책임감’ 있는 학생을 바란다. 글에서 계속해서 학생이 지도교수를 얼마나 자주 찾아오는가를 강조했다. 연구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지도교수를 찾아오지 않고 무작정 다음 미팅 시간을 기다리는 학생을 볼때면 ‘궁금해서 어떻게 기다리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지도교수가 제안한 방법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자신이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보지 않는 학생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지도교수의 생각대로 잘 되지 않은 이유가 왜 궁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든다. 나는 이런 것들을 궁금해하며 해결책을 찾아내거나 이유를 알아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학생을 바란다. 책임감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자신의 연구는 자신의 것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다 보면 없던 호기심도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의성은 그 다음 문제다.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지만, 모든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기는 가능하지도 않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다른 학생들

위에 소개한 학생들은 내가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한 학생들이다. 다른 분들의 글 속에서도 참고할만한 사례가 있으니 소개한다.

먼저 “Applying to Ph.D. Programs in Computer Science”라는 글에 나오는 사례다.

Student X comes from famous school Y in country Z, where he was ranked 5th out of over hundreds of thousands of students and #1 in his college graduating class. The student comes to graduate school expecting to be the best and starts working very hard on research. By the end of his first or second year, the student realizes that he has not yet published any papers. His friends and family from home start asking what’s wrong with him. He feels frustrated and ashamed. He blames his advisor, he blames his department, he blames his school. Finally, he grows up and accepts the fact that maybe he’s not the best, but he can still do well if he works hard. He starts listening better, works harder, and ends up quite successful.

이 문서의 두 번째 장은 “Do I really want a Ph.D.? What does a Ph.D. entail?”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데, 박사과정을 고민하거나, 이미 박사과정에 들어온 학생들이라면 꼭 한 번씩 읽어 보길 권한다. 단어 하나 놓칠 것이 없다.

두 번째 참고할만한 사례는 “So long, and thanks for the Ph.D.!”이라는 글에 나온다.

At UNC, there is a famous anecdote about a former UNC graduate student named Joe Capowski. Many years ago, UNC got a pair of force-feedback mechanical arms to use with molecular visualization and docking experiments. The problem was how to move them to UNC. These mechanical arms were large, heavy beasts, and were in Argonne National Labs in Chicago, IL. Unfortunately, there was a trucker’s strike going on at the time. Joe Capowski, on his own initiative (and without telling anyone), flew out to Argonne, rented a truck, drove the mechanical arms all the way back to North Carolina, and then handed the computer science department the bill! Many years later, Joe Capowski ran for the Chapel Hill city council and won a seat. Prof. Fred Brooks gave him an endorsement. I still remember the words Dr. Brooks said: “I may not agree with his politics, but I know he’ll get things done.” (Thanks to Jim Lipscomb for corrections to this anecdote.)

While the Joe Capowski anecdote is perhaps a bit extreme, it does show that it is often better to ask forgiveness than permission, provided you are not becoming a “loose cannon.” Certain universities (e.g. MIT) are good at fostering a “can do” attitude among their graduate students, and therefore they become more assertive and productive. One of the hallmarks of a senior graduate student is that he or she knows the types of tasks that require permission and those that don’t. That knowledge will come with experience. Generally, the senior graduate students have the most freedom to take initiative on projects. This privilege has to be earned. The more that you have proven that you can work independently and initiate and complete appropriate tasks, the more your professors will leave you alone to do what you want to do.

이 문서 역시 읽어보고 음미할 부분들이 많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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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학생, 나쁜 학생, 이상한 학생 (1편)

지난 수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다양한 배경과 성격의 박사과정 학생들을 만나봤다. 내가 지도했던 학생들도 있고 내가 강의했던 수업을 통해서 그리고 박사논문 심사위원으로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학생들도 있다. 그 중 몇몇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학생 A

이 학생은 석사과정 중에 처음 만났다. 내가 강의했던 — 대체로 박사과정 학생들이 듣는 — 수업을 통해서 만났다. 그 학생은 수업 중에 그리 빛나는 학생은 아니었다. 시험 성적이 아주 우수하지도 않았고 수업 중에 나를 애먹일만한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학생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 학생과 함께 일하고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석사과정 학생이든 박사과정 1년차 학생이든 수업 중에 눈에 들어오고 지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학생은 주로 시험 성적이 좋거나 수업 중에 질문과 토의를 통해서 날카로움을 보여주는 학생이다. 그런데 왠일인지 나는 이 학생과 일하고 싶었다.

이 학생은 다른 박사과정 학생들 틈에서 공부하는 것이 그리 녹록치는 않았던지, 내 사무실로 종종 찾아와서 여러가지 질문들을 했다. 나는 이 학생과 강의실이 아닌 내 사무실에서 만나면서 호감이 생겼다. 이 학생은 나를 만날 때, 궁금한 질문의 목록을 미리 작성해서 왔다. 차례대로 숫자가 매겨진 목록이였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내가 강의한 내용의 중심 줄거리가 되는 부분의 맥을 정확하게 짚는 것들이었다. 비록 내가 가르치고자 했던 바를 순식간에 알아듣거나 그것을 넘어서서 날카로운 질문들을 쏟아내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묵묵히 자기만의 페이스로 정확히 맥을 짚어가며 공부를 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험성적은 여전히 좋지 못했고, 나는 최종적으로 이 학생에게 ‘B-‘를 줬다. 대학원에서는 아주 나쁜 평점이다. 그러나 나는 이 학생이 마음에 들었다.

그 수업이 열렸던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 학생에게 함께 연구할 것과 석사 학위 논문을 쓸 것을 제안했다. 거절당했다.

자신은 연구에 큰 관심이 없고 수업석사과정에 필요한 학점을 채워서 최대한 빨리 졸업하는 것이 목표라는 이유였다. 박사과정에 갈 일도 없으니 석사 학위 논문이 필요하지도 않단다. 하지만 한 번 생각은 해보겠다고 했다. 수업과 관련된 질문 때문에 내 사무실에서 만날 때 종종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연구주제에 대해서 소개해주기도 했다. 학기가 끝나고나서야 연구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지 내가 말한 연구주제로 석사 학위 논문 연구를 해보겠다고 했다. 연구주제에 대해 꽤 자주 이야기해왔던 터라 당장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연구를 진행하던 도중 첫번째 걸림돌은 데이터였다. 필요한 데이터는 정부 웹사이트에 우리가 원하는 형태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채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데이터 수집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 학생은 자신의 연구에 이 데이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노가다’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엑셀 스프레드시트 한 페이지에 불과한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서 두어달을 꼬박 보냈다.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연구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주기적으로 만났는데, 여전히 잘 정리된 질문 목록을 가지고 다녔고, 내가 이야기 해주는 것들을 미팅 중에 요즘을 잘 파악하여 정리해 노트에 받아쓰곤 했다. 그리고 자신이 다음에 해야 할 일도 명확히 해서 노트에 정리했다.

나는 이 학생이 마음에 들었기에 석사 학위 논문 연구를 하는 중간중간에도 박사과정 진학을 제안했다. 거절당했다.

여러 개인 사정에 대한 이유도 있었지만, 아직 연구라는 것에 ‘박사과정’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할 확신이 없다고 했다. 석사 학위가 끝날 즈음에 연구가 꽤 재미있는 것 같다면서 박사과정 진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기뻤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나는 이 학생을 지원할 연구비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학과에 요청했더니 다행스럽게도 수업조교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박사과정에 들어와서 첫 연구는 석사 연구의 후속연구였다. 중간 중간 몇몇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알고 있는 연구 주제였기 때문에 큰 탈 없이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석사 연구와 박사과정의 첫 연구는 이 학생의 많은 노력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나는 그 두 논문을 이 학생의 논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 논문으로 생각한다. 두 사람의 공동연구이기는 하지만 굳이 따진다면 말이다. 기본 아이디어 구상부터 실제 글쓰기 까지 많은 부분이 내 손을 거쳤다. 대부분의 박사과정 학생의 논문이 이런식이다. 지도교수의 손과 머리를 많이 거친다. 전공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내 전공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이 학생A의 박사학위 논문은 좀 달랐다.

박사과정 첫 연구를 마무리 할 때 즈음, 이 학생이 자기는 전혀 다른 분야의 연구에 흥미가 생겼고 그 쪽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 학생에게 연구 주제 전환의 장단점을 이야기 해줬다. 주로 앞으로 벌어질 어려움에 대한 단점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지도교수인 내가 잘 알고 있는 분야가 아니므로 세세한 지도는 어렵다는 점과 연구가 어려움에 빠졌을 경우 내가 좋은 해결 방안을 가지고 있지 못할 수 있다는 점 등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학생의 새로운 연구 분야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고, 결국 그 분야로 연구를 진행했다. 다행히 몇 몇 학회 참석에서 주워들은 것들이 있었기에, 나도 처음에는 몇 가지 이야기들을 해줄 수 있었다.

연구를 시작하고 연구 방향을 어느정도 잡았을 즈음, 또 다시 데이터 수집에 대한 문제가 생겼다. 여러 경로를 통해 이 학생은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서 알아봤다. 주변의 연구센터에 문의하기도 했고, 여러 관련 연구자에게 연락을 취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결국 직접 수집하기로 했다. 이번엔 웹사이트 몇 군데 돌아다니면서 수집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실험을 해서 그 결과를 발표한 논문을 하나씩 찾아서 읽어보고 보고된 수치 한 두개를 기록해야 하는 일이었다. 천편이 넘는 논문을 검토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유사한 연구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는데, 거기에선 수많은 학부생 연구원을 고용해서 한다고 들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수많은 학부생 연구원을 고용할 수 있는 연구비가 없었던 터라, 학생A는 혼자서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다.

1년 정도 걸렸다. 그 기간 동안 수학적 모델을 손보고 연구 방향을 수정하는 등 많은 일을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데이터 수집에만 1년이 걸린 셈이다. 수학 모델을 바탕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들고 실험에 들어갔다. 2년 정도가 더 지나서 이 학생은 학위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학회에서는 최우수 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이 학생은 내가 만난 학생 중 박사과정을 굉장히 성공적으로 잘 보낸 학생들 중 한 명이다. 그 이유를 알아보는 것이 박사과정을 지낼 분들께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곰곰히 생각해 본 뒤 내가 내린 결론은 이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라는 것이다. 내가 이 학생의 개인적인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나, 적어도 박사과정, 연구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서 만은 절대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하고 싶은 방향대로 이끌어 나갔다. 자신의 연구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 학생의 박사 학위 논문에 내가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바가 없지는 않으나, 나는 이 학생의 학위 논문은 온전히 그 학생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박사과정 학생이 성공적으로 학위 과정을 잘 마칠 수 있을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를 가늠해 보는 잣대로 삼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지도교수와 얼마나 자주 연락을 취하고 싶어 하고 의사 소통을 하고 싶어하는지이다. 나는 학생들과 매주 정기적으로 개별 미팅을 갖고 있다. 어떤 학생은 그 사이에 아무런 연락이 없다. 이메일을 보내지도 찾아 오지도 않는다. 하던 일이 끝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하거나 막힌 부분이 있어서 같의 의논해야 하는 일이 있더라도 다음 주에 있을 정기 미팅 시간 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어떤 학생들은 미팅을 갖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오거나 다시 찾아온다. 미팅이 끝난 뒤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뭔가 정리가 덜 된 부분이 있었던 거다. 그리고 그 다음 주 까지 기다리지도 않는다. 연구를 진행하다가 좋은 결과가 있으면 기쁜 마음으로, 혹은 또 다시 걸림돌이 생기면, 그에 대한 대화가 필요해서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이메일이 오거나, 추가적인 개별 미팅을 요청 하기도 하고, 지나가다 내 사무실로 불쑥 찾아 오는 일도 있다. 자신의 연구를 진행해야 되는데, 막힌 부분이 생겼고 자신의 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니 지도교수의 도움 혹은 의견이 필요한 일이 생겼고, 다음 주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는 것이다.

학생A가 바로 그랬다. 지나가다가 내 사무실의 문이 열려 있으면 불쑥 찾아와서 질문을 던지고 의견을 구하는 일이 많았다. 횡설수설하는 경우는 없었다. 잘 정리된 질문을 던졌다. 그만큼 자신의 연구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고, 충분히 생각을 해 봤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연구를 했다. 처음 시작의 아이디어가 자신의 아이디어였든, 지도교수의 아이디어였든, 자신의 연구를 했다.

박사과정은 학생이 자신의 연구를 하기 위해서 지도교수의 경험과 시간을 빌리는 곳이다. 이 학생A는 아주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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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개구리가 올챙이에게

본격 꼰대질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대학원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글과 책은 언제고 쓰고 싶었지만, 공동 집필 프로젝트에 덥석 참여하기로 하고 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꼰대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박사학위를 마친지가 어느덧 8년이나 지났고, 나는 내가 박사과정 학생일 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 것이 힘들었었는지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면, 흐려진 기억 속의 즐겁고 아름다웠던 젊은 20대 시절이었다는 것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이미 나는 올챙이적 기억을 하지 못하는 개구리가 되어 버렸다. 내가 쓰는 글들은 어쩔 수 없이 내 개인적인 경험에 바탕을 둔 이야기일지 언데, 결국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질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글 쓰기가 조심스럽고 겁난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는 숨길 수 없는 꼰대 본능 독자가 알아서 잘 판단하고 흘려들어 주실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 집필 프로젝트에서 세명의 저자가 공통적으로 할 이야기는 아마도 “니 인생이니까 네가 알아서 잘 사세요” 일 것 같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할 이야기는 그렇다. 안 그래도 고달픈 대학원 생활인데,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내 마음대로 하지 않으면 — 모든 부분을 온전히 내 마음대로만 할 수는 없겠지만 — 더욱더 괴로운 생활이 될 것이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기만의 생각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이 잘 전달되기만 한다면, 꼰대질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은 독자들께서 지나가는 말로 흘려들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굳이 몰라도 되는 것까지 이야기하려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도 있다. 불필요한 정보로 불필요하게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염려스럽다. 때로는 생각을 단순화시켜서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가리는 것 역시 독자께 맡기기로 한다.

대학원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지도교수이다. 나는 이미 지도교수의 입장에서 지내온지 벌써 8년이나 되었다.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보낸 5년의 기간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을 학생의 반대쪽 입장에서 있었기 때문에, 내가 줄 수 있는 조언은 그다지 생생하진 못 할 것이다. 어쩌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대학원 선배로써 해줄 수 있는 생생한 조언은 공동 집필을 하시는 두 분께서 잘 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대학원생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 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역설적이게도 지도교수의 시각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다른 두 분이 지도교수를 어떻게 정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신다면, 나는 교수들은 어떤 학생을 지도하고 싶어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학생과 지도교수의 관계는 굉장히 오묘한 것이어서 흔히 결혼에 비유되기도 한다. 복잡하다면 복잡하고 단순하다면 단순할 수 있는 관계 속에서 학생이 교수에게 쌓이는 불만은 아주 여러 형태가 있을 것이고, 나는 그것의 일부에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교수들의 생활은 어떠한지, 교수는 어떤 고민을 하며 사는지와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교수의 입장과 생각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해서, 좀 더 잘 이용해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 대학원은 사실 학생이 교수를 이용해 먹는 곳이다, 아니 이용해 먹어야 하는 곳이다. 자신이 바라는 연구를 위해서 부족한 경험과 지식을 교수에게서 빌려오고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훈련을 해 나가는 곳이다. 나는 내 글이 학생들에게 그런 면에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2011년부터 ‘잡생각 전문 블로그‘라는 이름으로 개인 블로그에 글을 가끔씩 써오고 있다. 그중 ‘박사과정 학생이 유의해야 하는 점‘을 포함한 글 몇 편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면서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하게 되었다. 윤섭 님께서 ‘슬라이드계의 강남스타일’이라 불리는 슬라이드에 내 글을 추천해주셨고, 덕분에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원래 잡스러운 개드립을 날리는 블로그를 꿈궜으나… 아아…

‘박사과정…’ 글이 많이 읽히는 걸 보면서 좀 놀랬다. 따지고 보면 그 글에서 내가 한 말은 딱히 특별할 것도 없고 둘러보면 여기저기서 많은 분들께서 이미 했던 말을 반복한 것뿐이다. ‘자기 주도의 자기 연구’라는 당연하게 들리는 말을 했다. 수업 듣고, 필기하고,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등 주어진 문제를 잘 풀어야 하는 ‘공부’라는 것과, 문제조차, 그것도 이 세상에서 아무도 푼 적 없는 문제를, 내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연구’라는 것은 굉장히 다르다. 많은 이들이 공부와 연구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 속에서 내 글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한 것이 여러 번 읽힌 이유가 아닐까 추측한다.

또 한편으로는 댓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연구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가 하는 비슷한 고민들이고, 끝날 때 즈음이면 대체로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나누는 것만으로도 글을 읽는 사람도 글을 쓰는 사람도 마음에 큰 위로와 용기가 된다. 학위 과정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용기, 연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용기가 되고, 학생 지도에 더 힘을 내는데 큰 도움이 된다.

‘박사과정…’ 글을 쓴 것이 벌써 2011년, 5년 전의 일이다. 그 글을 읽었던 박사과정 학생들이 졸업을 했고,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그 글을 읽었던 학생들은 크고 작은 성취를 이루었을 것이다. 몇몇 분들께서 시작할 때 내 글을 읽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몇 년이 지나 다시 댓글로 남겨주셨다. 내 글이 그분들의 성취의 이유였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박사과정 하다 보면 고민들이 쌓이고 그 고민들 속에서 비슷한 결론들에 도달했을 것이고, 비슷한 성취를 이루었을 것이다. 내 글이 없었어도 원래 다 잘 되었을 일들이다. 진리의 될놈될 다만, 내 글이 그분들께 ‘그래 네 생각이 맞아. 우리 모두 다 같은 의견이다. 네가 생각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한 번 해봐. 네 연구잖아.’ 라며 등 떠밀어 준 역할은 어느 정도 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비슷한 일을 하고자 한다.


아이엠 그라운드… 나는 카이스트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생산공학을 전공하는 연구실에서 석사과정 학생으로 한 학기를 지냈다. 수많은 고민들 속에 첫 해 여름을 보냈고, 결국 석사과정을 휴학/자퇴하고 웹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회사에서 자바 프로그래밍 일을 했다. 많은 고민 속에서 가져온 작은 이 변화들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수학을 잘하지도 못하면서 수학을 좋아했었다. 수학을 전공으로 선택할 용기는 없어서, 수학을 비교적 많이 쓴다고 하는 기계공학을 전공으로 택했었다. 석사과정 첫 해 가을학기를 시작하고 몇 주 후에 휴학을 했었는데, 휴학 전 마지막으로 들었던 ‘광학’ 수업 중에 수학을 떠나보내는 것 같은 마음에 아쉬워서 필기하다 말고, sin x, cos x를 노트에 몇 번이고 끄적였던 기억이 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교과서 밖의 세계를 처음 경험했고, 자연스레 ‘사람’ 혹은 ‘인간’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그래서 ‘인간공학’ 전공으로 산업공학과에서 더 공부하고 싶었다.

미국에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교의 산업공학과에 인간공학 박사과정 학생으로 입학했다. 웬일인지 첫 학기에 인간공학과는 별 상관이 없는 선형계획법(Linear Programming)이라는 최적화 수업을 듣게 되었다. 선형대수학 등의 수학을 제법 많이 쓰는 수업이다. 그리고 나는 최적화와 관련된 운영 과학(Operations Research)이라는 분야를 내 전공을 택했고, 그중에서도 지도교수님의 지도를 받아 교통(Transportation) 분야의 연구를 했다. 결국 수학을 이용해서 뭔가를 하는데 흥미를 느꼈고 그걸 좋아해서 지금껏 즐겁게 연구하고 있다.

박사학위 후에는 미국 뉴욕주 버팔로라는 도시에 있는 뉴욕주립대학교(State University of New York) 혹은 버팔로대학교(University at Buffalo)라고 불리는 곳에서 7년간 교수로 근무했다. 버팔로는 눈이 아주 많이 오는 곳인데, 기껏해야 눈 좀 내리는 블리자드 마법 공격에 몬스터들이 쓰러지는 이유를 알 수 있는 곳이었다. 2015년부터는 플로리다주 탬파라는 도시에 있는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University of South Floria)로 옮겨서 근무 중이다. 여름이면 아주 습하고 더워서 에어컨 없이는 생활 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곳이다. 두 곳 모두 산업공학과이다. 두학교에서 그동안 석사과정 학생 6명, 박사과정 학생 7명을 지도 혹은 공동지도했다. 지금 현재는 박사과정 학생 4명을 지도하고 있고, 다음 학기부터 새로운 박사과정 학생 2명을 더 지도할 예정이다.


이 책을 쓰는 세 명 모두 공학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다. 순수 자연과학 분야나, 인문사회 분야, 예술과 체육 관련 분야에서는 또 다른 상황이 있을 수 있고,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가 서로 다르게 설정될 수도 있겠다. 내 전공에서는 대체로 교수와 학생이 1대 1로 만나서 논문 지도를 하고 논문을 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내 분야에서 박사 후 과정(포닥)은 흔한 일이 아니다. 나는 5년간의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운이 좋게도 바로 교수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박사 후 과정이 수년간 계속되는 것이 당연한 전공과 그렇지 않은 전공 사이의 간극은 분명히 존재한다. 생긴지 수천 년 된 학문과 생긴지 몇십 년 밖에 되지 않은 학문 사이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라는 행위의 본질은 그리 다르지 않을 터이니, 우리 세 명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한 번 들어봐 주길 바란다.

사실 나는 내 블로그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이미 할 만큼 했다. 다른 이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몇몇 관련 글을 모아두기도 했다. 이 책 중간중간 그 글들을 다시 정리하고 재구성하여 쓰는 일도 있을 것이다. 같은 요지의 글이 반복되는 일이 있더라도 이해 바란다. 세 명의 저자 사이에서도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를 겹쳐서 하는 경우도 있을 터이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낼 것이니 한 번 기대를 갖고 봐주기를 바란다.

이 책이 완성되었을 때 어떤 책이 되어 있을지, 굉장히 궁금해진다. 남의 대학원 생활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꼰대서가 될 것인지, 아니면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던져주는 좋은 책이 될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한 번 두고 볼 일이다.

밑밥은 깔만큼 깔았으니 다음 편부터는 본격적으로 대놓고 꼰대질을 시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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