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학위라는 것의 의미

박사 학위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힘든 대학원 생활을 거치면서 기어이 받으려고 하는 그 박사라는 것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떤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그 목표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막연한 생각만으로 목표를 추구했다가는 정작 그것을 달성한 후에, “어? 이 산이 아닌가벼?” 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박사가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학원 생활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디펜스의 추억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대학원에서 요구하는 학점을 모두 이수해야 한다. 논문 프로포잘을 통과해야 하고, 일정한 조건 이상의 연구 실적을 내야 한다. 대부분 논문의 편수,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와 내가 몇 번째 저자인지(authorship)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 관문은 바로 “디펜스(defense)” 라고 불리는 과정이다.

디펜스는 내가 지난 대학원 생활 동안 진행했던 모든 연구를 종합 및 요약해서 그 정수(?)를 발표하고 주변 동료들과 교수님께 내가 박사 학위를 받을 자격이 있음을 마지막으로 검증받는 과정이다. 이 관문이 ‘디펜스’ 라고 불리는 이유는 (모르긴 몰라도) 말 그대로 내 연구에 대해서 학위 심사 위원회 교수님들의 온갖 공격과 태클과 딴지를 끝끝내 방어하는 데 성공해야만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디펜스가 진행되는 구체적인 형식은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나의 모교 포항공대 생명과학 분야의 학과에서는 공개 발표 형식으로 디펜스를 진행했다. 누군가 디펜스 일정이 잡히면, 발표 제목과 요약문(초록), 일정과 장소가 학과 구성원에게 전체 메일로 뿌려진다. 우리 연구실 구성원뿐만 아니라, 내 연구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교수님, 학생, 연구원 등 누구든 내 발표를 들으러 올 수 있는 것이다. 꽤 많은 사람이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 연구실은 보통 강당에서 디펜스를 진행했다.

발표는 보통 20분 내외로 이뤄진다. 내가 수년 동안 진행했고 수십 장의 논문들로 발표했던, 혹은 발표할 예정인 여러 연구의 배경과 결과, 의의를 모두 20분에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결과를 기라성 같은 교수님들을 앞에 놓고 발표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꽤나 무대 체질이고, 예전부터 크고 작은 무대에 서본 경험이 많았다. 학부 시절 밴드 보컬도 했고, 학교 축제 공연의 단골 사회자로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도 여러 번 섰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에서 레크레이션 게임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사 디펜스를 할 때에는 솔직히 정말 많이 떨렸다.

“네가 왜 박사를 받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나?”

준비한 발표를 끝낸 이후에는 학생들을 포함한 청중들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이렇게 공개 질의 응답이 끝나고 나면, 박사 학위 심사 위원 교수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강당 밖으로 퇴장한다. 그리고 드디어 진짜 어려운 과정이 시작된다. 교수님들과 내가 5 대 1로 공격과 방어를… 아니 질문과 답변을 하는 비공개 세션이 진행되는 것이다.

사실 디펜스를 통과하지 못해서 박사 학위를 못 받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과정이 호락호락한 것은 절대 아니다. 본래 완벽한 연구라는 것은 없는 법이라 빈틈을 찾거나 딴지를 걸려고 하면 얼마든지 걸 수 있다. 더구나 디펜스는 대학원생에게 학교와 지도 교수의 이름을 걸고 박사 학위를 부여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기 때문에 일종의 신고식처럼 호되게 학생을 다루기도 한다.

나는 그때 하도 긴장하고 정신이 없어서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렇게 진땀 나는 5:1의 공격과 방어가 거의 끝나간다고 느낄 때쯤, 그때까지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으셨던 한 교수님께서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윤섭, 네가 왜 박사를 받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나?”

… 이 질문을 듣자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고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대학원 생활에서 겪었던 많은 일 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정말로 박사 학위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나는 정말로 내 나머지 인생을 박사라는 호칭으로 불리면서 살아갈 준비가 되었나?

이 질문을 던지셨던 분은 바로 국가과학자 남홍길 교수님이셨다. 세계 식물학계를 이끄시는 석학 중의 한 분이실 뿐만 아니라, 학부생 코흘리개 시절부터 나를 지켜봐 주셨던 분이시다. 교수님 연구실에서 학부 연구 참여도 했고, 교수님이 만드신 대학원에 1기로 입학해서 (디펜스만 무사히 통과한다면) 첫 번째로 박사를 받게 되는 사람도 나였다. 내 짧은 연구 인생의 아버지와 같은 분 중의 한 분이셨다. (지금은 포항공대를 떠나 대구과기대로 옮기셨다)

그 질문에 대해서 순간적으로 ‘내가 정말 박사를 받을 자격이 없어서 이런 질문을 하신 것이 아닐 것이다’ 는 생각과 함께, ‘이건 박사 학위라는 것의 가치에 대한 내 철학을 묻는 질문이다’ 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라면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시겠는가?

박사에 대한 흔한 오해들

박사라는 사람들에 대해서 흔히 가지는 잘못된 생각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잘못된 답을 보다 보면 박사 학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 해당 분야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아는 사람: 이건 한 마디로 불가능하다. ‘분야’ 라는 것의 정의를 아주 좁히고 좁혀서 매우 세부적인 주제로 정의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다음에 나오는 두 번째 이유에서라도 불가능하다.
  • 최고의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 특정 순간에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이 박사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무섭게 인류의 지식이 발전하는 시대에는 논문을 한두 달만 읽지 않아도 금방 뒤처지기 마련이다. 내가 박사를 딴 주제에 대해서도 하루에도 수십, 수백 편의 논문과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온다. 전문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급류를 거슬러 헤엄치는 것과 비슷하다. 열심히 발버둥을 치면 겨우 제자리에 머물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쉬려고 하면 금세 휩쓸려 내려가고 만다.
  • 최고의 실험 기술을 가진 사람: 특히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실험 테크닉이 좋은 (소위 ‘손이 좋은’) 것이 큰 의미를 가진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몇 가지 종류의 실험을 마르고 닳도록 하기 때문에 대게 능숙한 실험 스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는 직업적으로 특정 실험만을 평생 반복해서 수행하는 테크니션 (technician) 선생님들을 따라가기 힘들다. 테크니션은 본인의 연구 주제를 가지고 실험하기보다는 다른 분들의 실험을 보조하는 역할이지만, 그분들이 수없이 반복해서 얻게 된 ‘손의 깔끔함’은 장인의 수준에 이른 경우도 많다. 혹시 생명과학에 배경지식이 있다면 아래 그림을 참고해보자.
    technician
  • CNS (Cell, Nature, Science)에 논문을 낸 사람: 생명과학을 비롯한 많은 기초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가장 저명한 학술 저널이 바로 Cell, Nature, Science 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논문을 낸 사람은 진정으로 박사의 자격이 있을까? 이런 저널에 논문을 출판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논문은 우유와 같다.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이다. 논문의 유통기한은 대게 5년 정도라서, 일반적으로 새로운 직장에 지원하거나 과제 지원서를 쓸 때는 “5년 이내의 연구 업적”을 쓰게 된다. 필자도 Science에 공동 제 1저자로 논문을 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나서 필자의 이력서에 그 논문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이 박사 학위의 의미가 아니라면 그럼 뭐란 말인가?

인류가 가진 지식의 경계를 넓혀 간다는 것

초중고를 거치며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공부해왔는지 떠올려보자. 보통 교과서를 기본으로 학교에서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기도 하고, 참고서의 문제를 풀기도 한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체계적으로 누군가 과거에 정립해놓은 지식을 차근차근 배우는 것이다. 이는 대학에 와서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대학원에 진학하면 완전히 달라진다. 내가 연구하려는 주제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면 과거에 이미 연구가 된 내용이고, 그것을 연구하는 것은 이미 연구가 아니다.

우리가 대학원에서 주제를 잡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는 내용은 교과서의 마지막 페이지 그 이후의 내용이다. 만약 내가 하는 연구가 아주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학계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면, 그 내용이 이제 교과서에 한두 줄로 실리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동안 배웠던 교과서라는 것도 그렇게 조금씩 쓰여 온 것이었다. 태초부터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말이다.

이제 교과서 대신에 우리는 논문을 읽어야 한다. 하지만 누구도 내가 어떤 논문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려주지 않는다. 내 연구 주제에 대한 지식의 체계는 이제 나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한다. 몇몇 논문은 다른 동료 혹은 교수님과 함께 읽고 토론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다수의 논문은 나 스스로 읽고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지금까지 우리가 초-중-고-대학교를 거치며 해왔던 ‘공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이유에서 초-중-고에서 과외를 받으며 남이 떠먹여주는 공부를 해왔던 사람일수록, 대학원에서 받는 문화 충격은 더 커지는 것 같다)

박사 말년차이던 어느 날, 나는 재미있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연구하는 주제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생겼는데, 논문을 아무리 찾아봐도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누구도’ 라는 말은 우리 연구실이나 학교뿐만이 아니라,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전 인류의 누구도…라는 말이다.

이제 이 주제에 대해 내가 궁금한 것에 대한 해답은 교과서에도, 논문에도,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진 사람은 현재 지구상에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이제 적어도 지엽적인 나의 연구 주제에 관해서는 인류가 가진 지식의 최전방에 도달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마치 탐험가가 지도를 보고 열심히 정글을 헤쳐왔는데, 지도의 가장자리에 나오는 끝까지 왔음에도 여전히 내 앞에는 끝없는 정글이 펼쳐져 있는 형국이었다. 이제 내가 가는 곳은 이 지도를 그린 사람도, 아니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이다. 지금부터는 다름 아닌 내가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내딛으면서 앞에 절벽이 있는지, 강이 있는지 스스로 지도를 그려가야 한다.

연구를 한다는 것은 그렇게 인류가 가진 지식의 경계 너머에 있는 미지의 세계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개척해나가는 것과 같다. 이제 내가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은 다름 아닌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내 질문에 대한 ‘정답’ 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 가설과 실험을 거쳐서 논리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이것이 학계에서도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이 논문이 되고, 또한 인류의 새로운 지식이 될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는 소름이 돋았다. 그 경계를 넓혀간다는 것은 내게 아주 숭고한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인류 지식의 경계를 미증유의 세계로 넓혀가는 탐험가였다. 아마 평생을 다 바쳐도 인류 전체의 입장에서 내가 넓혀갈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은 정말 미미한 것일테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이자, 내 인생을 바칠만큼 가치있는 것이었다.

이후에 내가 보았던 이 그림은 내가 그때 느꼈던 그 깨달음을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역시 그런 생각은 나만이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우리가 박사 학위를 받고, 평생 연구를 한다는 것은 결국 인류 전체의 지식을 미지의 세계로 조금씩 넓혀가는 일이다. 그 경계를 조금이라도 더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서 우리는 연구실에서 그토록 많은 밤을 새우고, 수많은 실험을 날려 먹으며, 네거티브 결과에 머리를 쥐어뜯고, 수없는 불면의 밤을 보내며, 리젝 당한 논문을 또 다시 고쳐 쓰는 것이다.

이런 의미를 알게 된다면 아래의 우스갯소리도 약간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학사: 나는 이제 모든 것을 안다.
석사: 나는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구나.
박사: 나만 모르는 게 아니었구나.

맨땅에 헤딩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나의 디펜스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남홍길 교수님의 질문을 듣고서, 아득해진 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던 생각들은 바로 이러한 나의 깨달음이었다.

나에게 박사 학위는 특정한 주제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졌거나, 최고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박사 학위의 의미는 바로 내가 그 인류가 가진 지식의 경계를 앞으로도 평생 스스로 넓혀갈 수 있을 만한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이제 독립된 연구자로서 스스로 연구를 할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어떤 문제가 주어지더라도 거기에 맞는 가설을 세우고, 논리적으로 사고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더 쉽게 풀어쓰자면 대략 이런 것이었다.

“이제는 지도 교수님이 연구와 실험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알려주시지 않아도 제가 주도적으로, 독립적으로 연구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연구라는 게 맨땅에 헤딩하는 건데, 이제는 어떻게 하면 영리하게 이마가 덜 까지면서, 효과적으로 헤딩을 하는지 좀 알 것 같습니다”

특히 나는 박사 학위가 가지는 큰 의미 중의 하나가 논리적인 사고 방식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인생 전체에서 보면 아주 짧은 기간에 불과한) 대학원에서 몇년간 연구했던 바로 그 주제가 아니라, 또 다른 문제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에 대한 방법을 알게 되는 것이다.

사실 박사 학위를 받은 주제만으로 평생을 연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몇년이 지나면 내가 전공했던 분야가 없어져버리기도 하고, 완전히 새로운 분야가 하루 아침에 대두되기도 한다. 아니면 포닥을 가서 연구 주제를 바꾸는 경우도 있고, 자기 연구실을 차리거나, 기업에 들어가서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필자도 현재 연구하는 주제는 대학원에서 연구했던 것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피땀을 흘려가면서 갈고 닦은 그 논리적, 비판적 사고능력, 문제 해결 능력,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이 스킬들을 일을 하는 매 순간마다 사용하고 있다. 대학원 시절에 내가 받은 혹독한 트레이닝이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능력이다.

디펜스, 그리고 그 이후

디펜스에서 받았던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 내가 했던 그 말과 이러한 생각들이 교수님께서 바라던 답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지금도 내가 가지고 있는 박사 학위에 대한 가장 최선의 답이다. 그리고 이 답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는지, 나는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결국 디펜스에 성공했다.

나는 아직도 디펜스가 끝나던 그 마지막 순간을 잊지 못한다. 질의응답이 끝난 후 나는 강당 밖으로 나와서 굳게 닫힌 문 앞의 의자에 혼자 앉아 있었다. 강당 안에서는 심사위원 교수님들끼리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셨다. 아마도 내가 어떤 학생이었고, 어떤 연구를 했으며, 박사 학위를 줘도 되겠는지 최종 결정을 내리시는 것일 테다.

우두커니 혼자 앉아서 가슴 졸이면서 기다리던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길던지. “설마 여기까지 와서 박사 안 주지는 않겠지… 혹시 내가 뭐 병신 같이 대답한 것은 없나…” 하는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강당 문이 덜컥 열리고 심사위원 교수님들이 걸어 나오시며 한 분씩 내게 악수를 청하셨다.

“최 박사, 축하하네.”

나는 그 말을 듣고서 만감이 교차해서 속으로 좀 울었던 것 같다. 그 ‘최 박사’ 라는 호칭을 듣기 위해서 나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왔던가. 지금은 그저 너무도 익숙한 호칭이지만, 그 때는 그 표현이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도 이 순간을 생각하면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지금 나를 지칭할 때 붙일 수 있는 호칭에는 교수, 소장, 대표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가장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며, 내가 불리기를 원하는 호칭은 역시 최 박사다. 가장 많은 노력을 들였고,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얻은 귀중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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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대학원에 가야 하는 걸까

대학원생으로 살아가는 삶과 연구의 노하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과연 대학원을 꼭 가야만 하는 걸까? 어떤 사람이 대학원에 가야하고, 대학원에는 대체 왜 가야 하는 것일까. 이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특히 내가 어떤 분야를 전공하고, 어느 학교의 어떤 교수님의 연구실에 지원할 것인지에 앞서, 가장 먼저 근본적으로 해야 할 질문이다.

형, 저 대학원 가야 할까요?

필자는 예전부터 후배들에게 진로 상담 요청을 자주 받는 편이었다. 특히 학부생들이 졸업을 앞둔 시점이라면 누구든지 취업 등의 여러 옵션과 함께 대학원 진학에 대해서 한 번쯤은 고민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요즘과 같이 취업이 잘 되지 않는 시대에는 말이다.

후배에게 대학원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나는 곧바로 되묻는 질문이 있다. 바로, “네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 뭔데?” 하는 것이다. 이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후배들은 당황한다. 자신이 (대학원 진학과는 상관없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아래의 유명한 구절을 좋아한다.

앨리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알려 줄래?
고양이: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에 달렸지.
앨리스: 난 어디든 상관 없어.
고양이: 그렇다면 어느 길로 가든 상관 없잖아?

대학원은 결코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박사를 딴다고 해서 인생이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며,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취업의 문은 더 줄어들 수도 있다), 솔직히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해서 모두가 박사학위를 따는 것도 아니다. 내 주위에도 많은 동기와 선후배들이 박사 학위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대학원을 그만두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더 행복한 삶을 위한 옳은 선택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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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더 행복하지도, 더 많은 돈을 번다는 보장은 없다. (출처: Nature 2011)

나는 결코 모든 사람에게 박사 학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고, 많은 것들을 감내해야 하며, 큰 기회비용과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본인이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목표에 박사 학위가 꼭 필요하다면 당연히 대학원을 가야 하는 것이고, 반대로 그 목표가 박사 학위를 꼭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라면 굳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박사 학위는 그 자체로 숭고한 목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수단으로써의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평생 학문의 길을 걷겠다는 사람에게는 박사 학위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에도 박사 학위는 끝없는 진리 탐구의 길에 거쳐가야 하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오히려 현실적으로는 내가 교수가 되거나, 국책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기 위해서 (적어도 그 자리에 지원을 하기 위해서), 혹은 특정 업계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본적인 원칙은 그러하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보자. 내가 이루고자 하는 직업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누구도 대신해줄 수는 없다. 이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정을 내려도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막연히 주위 친구들이 대학원에 가니까 나도 따라서 간다거나 (실제로 이런 학생들이 꽤 많다), 넋 놓고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군대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해서 간다거나, 취업이 되지 않아서 좀 더 시간을 벌기 위해 별다른 고민 없이 진학한다면 필연적으로 불행한 대학원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내렸던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 아니면 이 지옥 같은 대학원 생활을 지금이라도 그만둬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말이다.

나 자신만의 굳건한 이유가 필요하다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며, 그 목표를 위해 박사 학위가 꼭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다면 대학원을 가는 자신만의 명확한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 이유는 결코 거창할 필요도 없고, 굳이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 스스로가 굳게 믿고 있으며,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이유이면 된다.

필자의 경우에는 “IT 분야와 생명과학 분야를 융합한 유니크한 전문성을 가지고 싶다” 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전문가로 살아가고 싶었다. 학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전공했지만, 그것만으로 융합적인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라고 하기는 부족했다.

특히 신약 개발이나 헬스케어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 받으며 연구하고 이 분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박사가 필요했다. 대학원 진학하기 전에 내가 만나고 조언을 구했던 선배들, 전문가들은 대부분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나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문가가 되어서 이 바닥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누가봐도 박사는 최소한의 입장권처럼 느껴졌다. 매우 막연한 이유일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 자신은 굳게 믿고 있는 이유였다.

대학원에 가기 위해 그런 굳건한 이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대학원에서 끝까지 버텨내고 살아남기 위함이다. 앞으로 대학원에서 얻게 될 많은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결코, 결코 쉽지 않다.

이 부분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언급하겠다. 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분야를 막론하고, 한국과 외국을 막론하고 정말로 쉽지 않은 과정이다. 당신이 한국에서 초중고를 거치고,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여태껏 겪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종류 조직에서, 새로운 역할을 하며 새로운 종류의 어려움과 고난, 고뇌를 겪게 될 것이다.

사실 대학원생은 사회 전반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매우 특수하고도 어정쩡한 역할을 하는 중간인과 같다. 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니며, 교수도 아니고 정식 연구원이라고 할 수도 없다. 대기업처럼 잘 만들어진 시스템 속에서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잘은 몰라도) 노동법에 의해서 보호받는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도 많으며, 역할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서 어떤 역할이라도 필요하다면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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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학원생으로 살아가는 것이 왜 힘든지는 대부분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이 상당 부분 반영되기도 한 이야기들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목표로 연구한다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빨라도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4-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길게는 8-9년이 걸리기도 한다. 어느 연구실에 가더라도 박사 학위를 제때 따지 못해서 연구실에서 거의 화석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초 고년차 대학원생을 한 두 명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연구를 열심히 하지 않았거나, 실력이 없어서, 혹은 게을러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대학원에서 보낸다고 할 수도 없다. 바로 당신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 터널을 빠져나오는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터널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불확실한 미래: 마침내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미래가 불확실한 것은 마찬가지다. 박사 학위를 받는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 의사 면허, 약사 면허, 변호사 자격증, 회계사 자격증 등을 취득하게 되면 그런 자격이 없는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이 생기게 된다. 하물며 운전면허를 따도 보장되는 것이 생긴다. 박사 학위를 한다는 것이 의사, 약사, 변호사, 회계사 등의 자격을 가지는 것보다 결코 노력과 시간이 적게 들어간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고 해서, 박사만이 할 수 있다고 보장되는 것은 없다. 교수 등 특정 포지션에 지원할 수 있는 최소 요건 정도를 충족시키는 것 밖에는 말이다.

월화수목금금금: 황우석 박사가 써서 유명해진 말로 알고 있다. 대학원에 가게 되면 수업, 과제, 연구, 조교와 그 외 잡일 등으로 쉴 새 없이 바쁘게 된다. 특히 온갖 잡무를 처리하는 와중에도, 실험하고 논문 쓰면서 내 연구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주말에도 일을 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게으르거나, 워커홀릭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여건이 갖춰져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한국의 많은 연구실에서 랩미팅은 토요일 오전에 한다 (내가 스탠퍼드에 있을 때 친구들에게 한국에서는 토요일 아침에 랩미팅을 한다고 하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스탠퍼드의 우리 연구실이 금요일 오후에 랩미팅을 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던 상황이었다) 한국의 대학원생은 저녁이 있는 삶은커녕 주말이 있는 삶을 살기도 쉽지 않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연구: 우리 지도 교수님이 실험이 잘 풀리지 않아서 좌절하고 있는 나를 위로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실험은 원래 디폴트가 꽝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고,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오히려 예외적”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연구라고 하는 것은 결코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연구 과정에는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항상 더 많은 시간이 (보통 두 배 이상) 들어간다. 그렇게 연구가 풀리지 않는 과정이 한 달, 두 달… 1년, 2년이 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8년, 9년씩 연구실에서 썩는 초 고년차가 되는 것이다. 정말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도 교수: 존경할만한 지도 교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다. 아마 3대에 걸쳐서 (혹은 30대에 걸쳐서) 덕을 쌓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뛰어난 학문적 실력과 리더로서 존경할만한 인성을 모두 갖춘 지도 교수는 불행하게도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도 교수는 대학원생들의 삶과 미래, 월급을 모두 틀어쥐고 있는 절대 권력자이다. 하지만 학문적 역량 이외에, 여러 사람들을 이끌 리더로서의 자격이 있는지는 검증 받지 못한 사람들이며 (교수 채용과 테뉴어 심사에서 인성이나 리더십의 검증은 없다) 연구실 내의 절대 권력에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는 사람들이다. 싫든 좋든 대학원 생활을 하는 내내, 그리고 어떤 경우는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에도 대학원생들은 지도 교수의 절대적인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된다. 장담하건대 지도 교수를 잘못 만나거나, 지도 교수와 궁합이 맞지 않거나, 좋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문자 그대로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쥐꼬리만한 월급: 사실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많은 경우 대학원생은 학부생 수업 조교를 겸하기 때문에 장학금 형식의 월급을 받게 된다. 하지만 월급이라고 하더라도 생활비로 쓰기에도 빠듯하고, 별도로 미래를 위한 저축을 하기에는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후반-30대 초반을 여유 자금 없이, 저축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박사를 받게 되는 30대 초중반에 모아놓은 돈이 천만원도 없으면 참 암울하다. (따로 과외 알바라도 뛰지 않고 연구만 열심히 한다면 천만원 모으기 쉽지 않다) 더 운이 나쁘면 부모님께 손을 벌리면서 대학원 생활을 해야할 수도 있다. 이는 대학원에 가지 않고 취직한 주위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큰 격차를 실감하게 된다.

기회비용: 사실 위의 모든 이유를 합한 것이 바로 기회비용에 관한 것이다. 기회비용은 내가 대학원 진학이라는 선택을 함으로써 잃어버리게 되는 많은 기회들을 말한다. 예를 들면, 기업에 취업해서 벌 수 있었던 (상대적으로) 많은 경제적 수입을 대학원에 진학하면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 직업 전선에 먼저 뛰어들어서 경력을 쌓아 나가거나, 사회 생활을 일찍부터 시작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경험과 인맥 역시 대학원 생활의 기회 비용이다.

 

대학원 생활과 연구 노하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너무 겁을 주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면 위에서 언급한 어려움 중의 몇 가지는 반드시 겪게 될 것이다. ….좋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당신은 이 어려움의 대부분을 (많은 경우에는 전부) 겪게 될 것이다. 이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고난과 역경을 견디고서라도 박사 학위를 반드시 따야만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던져야 한다는 그 질문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대학원에서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 어려운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사실 그렇게 험난한 과정과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치고 얻은 박사학위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을 끝까지 견뎌내고, 도중에 탈락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서 누누이 강조한 자신만의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이유가 어둠 속에서 당신에게 한 줄기 빛이자, 마지막까지 당신이 붙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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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나의 연구 이야기를 시작하며

대학원생 시절, 연구는 나의 모든 것이자 나의 삶 자체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데드라인에 항상 쫓기면서 미친 듯이 바쁘게 살았고, 연구 결과 하나에 울고 웃었으며, 미래와 진로에 대한 고민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실험이 계속해서 잘 안 될 때면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가도, 또 내 가설이 맞는 것으로 나오면 그렇게도 기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새벽 메일함을 열었을 때, 내 첫 번째 논문의 개제 허락 메일이 도착했던 순간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무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개제 거절과 세 번의 리비전을 거친 뒤였다.

나는 그 여정에서 많은 빛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정말 인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천재들이었다. 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대학원이라는 기간을 불운하고 불행하게 보내었고, 또 결국 견디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다른 길을 가기도 했다. 나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꼽자면 역시 대학원 시절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나의 대학원 시절은 많은 역설과 복잡다단한 애증의 감정으로 가득하다. 어쩌면 내 인생의 가장 순수하면서도 가장 힘든 시기였고, 가장 비효율적인 시간이었지만 또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것을 배운 시기였다. 그 모든 과정을 다시 밟아보라면 지금은 엄두도 못 낼 것 같지만, 만약 내가 정말로 그 시절로 돌아가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면 아마도 나는 같은 결정을 내릴 것 같다.

나의 대학원 생활

나는 결코 특별하거나 누구에게 내세울 수 있을 만큼 모범적이고 표준적인 대학원 생활을 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사실 ‘표준적인 대학원 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대학원생만큼 신분이 어중간하고, 역할이 불분명하며, 앞날도 불투명하고, 해야 할 일이 정해지지 않은 사람도 없다. 아마 대학원생들의 수만큼이나 특수한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국내/국외, 분야, 학과, 세부 전공, 연구 주제에서 개별 교수님의 특성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대학원 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설명할 소위 ‘대학원 연구 노하우’라고 하는 것도 전적으로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것이다. 앞으로 나올 이야기들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어떤 분야의 연구를 진행했는지를 대략적으로 먼저 설명할 필요가 있다.

나는 국내의 이공계 대학교와 대학원을 나왔다. 포항공과대학교 학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했으며 (그래서 학부를 5년 다녔고, 평점은 평균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었다), 같은 학교 대학원의 시스템생명공학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신생 대학원에 1기로 입학했으며, 내가 1호 박사였다. 그만큼 고생을 했다).

생명과학과 컴퓨터공학의 중간 즈음에 있는 전산 생물학이라고 하는 분야를 전공하면서, 전통적인 생물학 실험과 컴퓨터를 이용한 코딩, 시뮬레이션, 데이터 분석을 모두 했다. 지도 교수님도 두 분의 교수님께 공동으로 지도를 받았다. 내가 앞으로 설명할 연구에 관한 내용들도 대부분 이런 분야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다.

다양하고 잡다한 연구 경험

이것이 내 대학원 생활이지만, 내 ‘연구 인생’을 이야기하자면 사실 조금 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서 내가 한 가지 나름대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내가 비교적 다양한 환경에서 연구를 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아래는 내가 지금까지 거쳐왔던 연구 조직들을 시간 순으로 나열해본 것이다.

– BRIC 생물학정보센터 생물정보학 팀
–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남홍길 교수님 연구실
–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김상욱 교수님 연구실
–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류성호/서판길 교수님 연구실
– Stanford University, Department of Chemical & Systems Biology, James Ferrell Lab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화학교실 정준호 교수님 연구실
– KT종합기술원 바이오메디컬 인포매틱스 팀
–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 연구중심병원
–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

포항공과대학교는 학부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학부생들도 연구실에 들어가서 연구 참여를 해야 하고,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논문도 써야 한다. 나는 학부 3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BRIC 의 생물정보학 팀에 들어가서 연구라는 것을 시작했다 (생물학 관련 전공자라면 BRIC이라는 이름이 익숙할 것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2003년에는 내부에 자체적인 연구 조직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대학원 연구실, 기업 연구소, 병원에서 연구했으며, 식물학, 생물학, 생물정보학, 의학을 연구하는 곳을 거쳤다. 순수 연구와 사업개발을 위한 응용연구를 했으며, 한국과 미국에서의 연구 경험이 있다. 학부생, 대학원생, 연구교수, 팀장, 연구소장 등으로 다른 사람 아래에서, 혹은 내 팀원 들을 이끌며, 현재는 독립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역할로, 다양한 목적을 위해 다양한 주제를 연구했다. 많은 조직을 옮겨 다니기도 했고, 그만큼 줏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사실이다). 이렇게 여러 형태의 조직에서 여러 유형의 사람들과 연구를 했다. 때문에 여기에서 우러나오는 나만의 이야기를 조금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내가 대학원에 들어왔을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연구 노하우” 슬라이드

마지막으로 내가 이 ‘연구 노하우’ 집필에 참여하게 된 계기도 이야기해야 하겠다. 바로 ‘연구 노하우’ 슬라이드다. 아마 대학원에 있거나, 대학원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슬라이드를 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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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슬라이드는 원래 내가 우리 연구실 후배들을 위해서 만든 자료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포항공대 시스템생명공학부에 1기로 입학한 대학원생이었고, 우리 구조생물정보학 연구실 (김상욱 교수님)에서도 첫 번째 박사 졸업생이었다. 이 연구실은 교수님이 처음 학교에 부임하시면서 연구실을 차리실 때 나도 창단 멤버로 합류해서, 이후 학부생-대학원생-박사후연구원 시절을 거치며 총 6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었던 정든 곳이다.

나는 이 연구실을 떠나는 첫 박사 졸업생이었다. 보통 연구실을 떠나기 전 마지막 랩 미팅은 Farewell Seminar라는 것을 한다. 그동안 내가 연구실에 머물면서 했던 연구와 생활을 돌이켜보고, 랩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감사의 이야기도 전하는 기회이다. 나는 내 Farewell Seminar에서 내가 그동안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생각했던 연구에 대한 나의 개똥 철학과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내가 없더라도 남아 있는 후배들이 계속 잘 연구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냥 그런 슬라이드였다. 그리고는 이 슬라이드를 내 하드디스크 속에 처박아두고 1년 넘게 까먹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오래된 슬라이드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별다른 생각 없이 이 자료를 슬라이드 공유 사이트인 슬라이드 쉐어 (slideshare)에 올린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슬라이드는 정말 무서운 속도로 공유, 공유, 공유, 또 공유되었다. 나는 사실 처음에는 그 슬라이드가 그렇게 화제가 되는지 몰랐다. 처음에는 내 메일 주소나 트위터 아이디 등 아무것도 넣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나중에서야 알았다. 어안이 벙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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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구 노하우는 (개정 증보판까지 합치면) 70만 번 정도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5만 번 이상 공유되었고 말이다. 혹자는 ‘슬라이드 계의 강남스타일(…)’ 이라고도 했고, ‘한국의 대학원생이라면 한 번은 봤을 슬라이드’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소셜 네트워크의 위력을 몸소 실감한 기회이기도 했고, 이를 통해서 많은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우연한 기회에 업로드한 내용이지만, 나 역시 많은 애착과 보람, 그리고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주의사항!

사실 이렇게 대학원 생활이나 연구에 대한 노하우라고 해서 결코 거창할 것은 없다. 대학원의 길고 어두운 터널을 어떻게든 지나갔던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한 마디씩 거들 수 있는 내용이다. 나 역시 실험이 끝나고 실험실 형들, 누나들과 술 한잔을 기울이면서 많이 묻고 또 많이 들었던 내용들이다.

무엇보다 이 내용들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최소한 대학원 시절의 나에게는 꽤 효과적이었던 내용이지만, 현재의 당신에게는 해당되는 내용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결코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들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할 생각이 없다. 앞서 말했듯이 모든 대학원생은 각기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앞으로 하는 조언들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선별적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란다.

또한 이 연구 노하우들은 나라고 항상 실천했던 것은 아니다. 나도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고, 연구의 신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내 주위만 하더라도 나보다 연구 성과가 좋은 정말 후덜덜한 사람들이 많다) 이 노하우들은 연구가 가장 신나고 잘 되고, 스스로 신명이 나던 시기에 나도 무의식적으로 했던 것들일 뿐이다.

특히 연구가 잘 풀리지 않던 때는 이런 원칙을 의식적으로 더 실천하려고도 했고 말이다. 사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부분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마 그런 노력은 내가 연구를 업으로 삼는 이상은 평생 계속되리라 생각한다.

서론이 길었다.
그럼 다음 글 부터는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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