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2″가 발간되었습니다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2 가 발간되었습니다. 전작에서는 공학 전공 남자 3명이 들려주는 이야기라서 관점이 알게 모르게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을 수 있어서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좀 더 다양한 전공(공학, 경영학, 보건)의 여자 3명으로 이루어진 저자들이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저자 : 김세정
호주 멜버른대학교 전자과 교수
서강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했고 카이스트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학교에서 첫 번째 국내 포닥을 했다. 2017년부터는 호주 시드니에서 두 번째 포닥 생활을 시작하고 리서치 펠로우를 거쳤다. 2020년부터 호주 멜버른 대학교The University of Melbourne에 임용이 돼 바쁘게 실험실을 꾸려나가고 있다. 서른 살이 넘어서야 처음 해외 생활을 해본 국내파 박사로 해외 명문대 임용까지의 좌충우돌 이야기들과 그 과정에서 겪은 좌절과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


저자 : 윤은정
미국 메리 워싱턴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경희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학석사 연계과정을 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플로리다 대학교University of Florida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UC 얼바인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에서 마케팅 박사학위를 최종적으로 받았다. 2019년부터 미국 메리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Mary Washington에서 경영학과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교수언니 윤 Dr. Yoon’을 통해 대학원생들과 소통하며 직접 경험한 유학생으로서의 미국 대학원생 삶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있다.


저자 : 유두희
미국 FAANG 기업 데이터 사이언스팀 매니저
경희대학교 의공학과를 졸업했고 도쿄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UC버클리에서 보건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을 거쳐 2013년부터 유엔과 유엔 산하 국제기구에서 통계학자로 일하다가 2019년부터 미국 실리콘밸리의 FAANG 기업 중 한 곳에서 데이터 사이언스 팀을 이끄는 매니저로 근무 중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박사과정으로 가려는 이들, 박사과정을 마치고 회사로 갈지 말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미리 경험하고 느낀 점들을 공유하고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대학원 선배들이 아끼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  

1장 국내 토종 박사 후 해외 명문대 교수가 된 이야기(김세정 교수편)

프롤로그 급식비 지원받던 학생에서 해외 명문대 교수가 되기까지 

1 실패와 열등감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들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 연구자에게 연구 실패와 논문 거절은 일상이다 

2 대학 때 진로를 마음껏 방황해보자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 어느 길을 선택해도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다 

3 어떻게 성적을 최상위권으로 올릴 것인가  
공부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을 확보하자 / 자신만의 공부법을 계속 찾아보자 / 공부와 긍정적인 느낌을 꾸준히 연결하자 

4 대학원은 국내와 해외 중 어디에서 할 것인가  
해외 대학원에 가면 영어 실력이 는다 / 해외 대학원에 가면 연구 이외 업무가 적다 / 해외 대학원에 가면 휴가가 더 길다 / 국내 톱대학원들도 연구시설이 뛰어나다 / 해외 대학원에 가면 고립감을 느낄 수 있다 

5 세계 대학 랭킹이 높은 대학교가 좋은 학교일까  
왜 국내 대학은 QS 세계 대학 랭킹에서 낮은가 

6. 지도교수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교수의 논문 출간 리스트를 보라 / 김박사넷에서 지도 스타일을 보라 / 박사장수생이 있는지 보라 / 연구실 분위기가 어떤지 살펴보라 

7.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자신을 비난하고 탓하지 말자 / 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8. 공부 잘하던 학생들이 연구도 잘할까  
어느 단계에서든 진로를 탐색해볼 수 있다 / 학부 전공과 상관 없이 연구자로 성공할 수 있다 

9 나는 교수가 될 수 있을까  
일이 안 풀릴 때가 있으면 잘 풀릴 때도 있다 / 자신감이 떨어지는 이유를 객관화해보자 

10. 연구 아닌 딴짓을 해도 될까
운동은 연구 활동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 영어를 잘하는 것의 장점은 상상 이상이다 / 대외 활동은 새로운 기회를 안겨다 준다 

11 최대한 빨리 첫 논문을 쓰자  
첫 논문을 빨리 내자 / 결과를 시각화하자 / 리뷰 논문에 도전하자 / 발표 능력을 다지자 

12 슬럼프에 빠졌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 동기부여 방법을 찾자 / 피어 멘토링을 활용해보자 /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자 

13 세상은 넓고 대학은 많고 교수는 다양하다  
연구교수, 조교수, 부교수, 교수는 무엇이 다른가 / 연구 중심과 교육 중심 대학은 무엇이 다른가 

14 교수 임용 심사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까  
붙을 확률이 0퍼센트는 아니니 지원해 보자 / 방문 인터뷰 시 세미나 발표가 중요하다 

15 교수는 실제로 무슨 일을 할까  
연구 인력을 모집하고 연구비를 끌어와야 한다 / 교수의 주요 업무들은 무엇인가 

16 과학자인데 영어를 잘해야 할까  
연구제안서 작성 영어 실력이 중요하다 / 영어 자극에 꾸준히 노출시켜라 

17 어서 와~ 호주에서 공부하는 것은 처음이지  
나는 해외로 가서 공부해보고 싶었다 / 호주는 아시아인이 이민 가서 살기 좋은 나라다 

18 투 바디 프라블럼을 어떻게 해결할까  
해외 포닥을 나갈 시점은 결혼했거나 결혼할 사람이 있다 / 학계에 있다 보면 한번쯤은 장거리로 지내야 하는 시기가 있다 

19. 그밖의 작지만 중요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이메일 쓸 때 너무 격식에 얽매이지 마라 / 완벽주의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을 때도 있다 / 우선순위를 정하고 시간을 배분해야 한다 

20.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 말고 도전하라  
일단 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될 것이다 

에필로그 어려운 문제를 풀면서 성장한다 

2장 미국 유학 9년 만에 경영학과 교수가 된 이야기(윤은정 교수편) 

프롤로그 대학원에서 얻게 된 달곰쌉쌀한 삶의 교훈들에 관해

1 ‘과거의 나’에 ‘미래의 나’를 맡기지 말자 
시작이 반이니 일단 무엇이든 시작해보자 / 편협한 생각을 버리면 여러 기회를 얻는다 

2 남들 말 듣지 말고 무모해도 도전해보자 
용감한 정신으로 유학 준비를 했다 / 남들이 말하는 카더라 통신을 무시했다 

3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할 수 있다  
도움이 될 만한 외부 장치들을 만들어라 /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4 GRE 공부를 토 나올 정도로 했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할 정도로 절박했다 / 마음을 다잡을 수만 있다면 좋은 결과를 얻는다 

5 대학원을 국내와 해외 중 어디서 하면 좋을까  
국내 석사와 해외 석사 중 무엇이 좋을까 / 왜 나는 해외에서 박사를 하기로 했는가 

6 출국 전까지 무엇을 준비해두면 좋을까  
미리 전공과목을 준비하자 / 연구 방법론에 대한 철저한 준비하자 / 멘탈은 몸으로 관리하는 것이 진리이다 / 가족과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두자 

7 첫 학기를 망쳤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터디 그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 논문을 읽기 전에 목표가 있어야 한다 / 못해도 무조건 자신 있게 영어로 말하자 

8 영어 울렁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영어, 잘하는 ‘척’하지 말자 / 어떻게 영어의 좋은 인풋을 만들 것인가 

9 지도교수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조교수를 지도교수로 정해도 될까 / 유명 교수를 지도교수로 선택했을 때 장단점은 무엇일까 / 연구 주제가 똑같지 않은 지도교수를 선택해도 될까 

10 지도교수와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까  
모든 일을 내 일처럼 열심히 하자 / 피드백을 내 멋대로 해석하지 말자 / 무조건 두려워하지 말고 질문하자 / 대학원 생활도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11 리서치 미팅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부족해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 / 얼마나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지가 중요하다 

12 연구 주제는 어떻게 정해야 할까  
왜 연구 주제를 정하기가 어려운가 / 어떻게 연구 주제를 찾을 것인가 

13 박사과정 1~2년 차의 딜레마는 무엇일까  
전공과목과 연구 중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나는 왜 퀄 시험에 떨어졌는가 / 전공과목과 연구의 연결고리를 찾자 

14 울면서 공부해봤니? 치열했던 퀄 시험 준비  
잠자는 시간을 빼고 공부만 했다 / 최선을 다했기에 자책하지 않았다 

15 박사자격시험에 떨어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한번 도전해서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지만 기적은 있다 

16 박사과정 3년 차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했을까  
집에서만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 여러 교수들과 가깝게 지냈을 것이다 / 학회 네트워킹을 적극적으로 했을 것이다 

17 누구나 박사를 그만둘까 하는 고민에 빠진다  
혼자 외롭게 공부하다 보면 흔들릴 수 있다 / 박사를 해야만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18 마음의 건강은 몸에서 온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운동을 하자 / 무기력해졌을 때는 몸을 움직이자 

19 우울증에 빠졌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 /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나아진다 

20 어떻게 교수 임용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잡마켓 준비를 할 것인가 / 인터뷰를 할 때는 긴장을 늦추지 말자 

에필로그 다시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며  

3장 학계를 떠나 FAANG 기업에 취업한 이야기(유두희 박사편) 

프롤로그 대학원 졸업 후의 다양한 진로에 관해  

1 대학원에 진학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 대학원이라는 곳은 대체 뭐 하는 곳인가 / 일반 대학원과 전문대학원 중 어디를 가야 할까 

2 지도교수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지도교수를 찾는 과정에는 두 가지 패턴이 있다 / 학문적 커리어의 앞날을 맡길 만한지 점검하자 

3 대학원 학비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대학원에 들어가면 여러 장학금 신청을 할 수 있다 / 장학금 외에 생활비 등으로 쓸 수 있는 장려금도 있다 / 입학 후에 신청할 수 있는 연구지원비도 있다 

4 대학원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증명할 것인가  
대학원 생활을 하는 데 쉬운 지름길은 없다 / 파도처럼 밀려드는 문제들을 잘 넘어야 한다 

5 대학원 생활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까  
학업 강도가 높기 때문에 체력을 다져야 한다 / ‘혼자’보다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좋다 / 일반적 생존의 필수요건들을 익혀두어야 한다 

6 학문의 길이냐, 취업의 길이냐의 선택 기준은 무엇인가  
포기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 어떤 갈림길에 서든 최선을 다한다 

7 박사후보자격시험에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학원 졸업요건은 무엇이 있는가 / 대학원 졸업시험은 공부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 떨어졌다고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 다시 도전할 때는 패인 분석을 하고 하자 / 졸업시험 통과 후에는 진로의 마지막 준비를 하자 

8 어떻게 잡페어를 100퍼센트 활용할 것인가  
참석할 잡페어 리스트업을 해보자 / 참석 전 준비할 것들을 체크하자 / 참석 후에는 팔로업을 꼭 해야 한다 

9 연봉에 대해 제대로 알아두자  
연봉은 어떻게 구성돼 있는가 / 연봉협상은 어떻게 할 것인가 / 기본급 확정 후 협상 가능한 것들을 알아보자 

10 대학원 신규 졸업자에게 무엇을 기대할까  
문제를 해결하고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 새로운 토픽으로 흥미를 확장해가자 

11 왜 공기업 혹은 사기업에서 박사를 뽑을까  
문제해결과 기술적 병목 현상 해소를 바란다 / 정책 제언을 해주길 바란다 

에필로그  
1. 롱디 중인 박사 커플들에 관해
2.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지원자들이 알아두면 좋을 것들



* 블로그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리디북스,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전자책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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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발간되었습니다 (종이책+ebook)

블로그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가능하고,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자기계발’ 코너에서 찾아보실 수 있는 듯 합니다.

전자책으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자기계발 코너에서 찾으실 수 있습니다

 

블로그에 많은 분들께서 댓글 남겨주셨습니다. 댓글 남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많은 분들께서 공감해주신 덕에 글을 쓰는 동안 많은 힘을 받았습니다.

댓글의 일부를 발췌하고 의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금 다듬어 저희가 책 뒷표지와 책의 첫 부분에 사용하였습니다. 미리 허락을 구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블로그 댓글 특성상 이메일 등의 연락처가 없었던 탓이라 핑계를 대봅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혹시 뺐으면 하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최선을 다해서 다음번 인쇄에서는 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직장인입니다. 커리어를 위해서 대학원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뼈 때리는 조언 잘 듣고 갑니다.
-몰랑이

미국에 있는 박사 2년 차 학생입니다. 저는 인문학 쪽이긴 하지만 유학생으로서 겪었던, 또는 현재 겪고 있는 공통점들 때문에 힘이 많이 됩니다.
-Anonymous

미국에서 박사 2년 차 접어들어 가는 아기 엄마 학생입니다. 괜히 힘든 마음에 다른 박사과정 학생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쓰신 글을 읽어보니 정말 하나하나 내 맘 같아 응원하고 싶습니다.
-Anonymous

중간 중간에서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함박웃음 터트리며 읽었습니다. 영어 논문은 모르는 단어나 문법 때문에 머리 아프고, 잘못 이해했을까 걱정하며 읽었는데 조금 그 부담감을 내려놓게 되네요.
-Eunhye Jo

주변 지인들의 추천으로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공감 가는 내용과 재미있는 필력이라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Myoung-Soo Han

해외 대학 생활 중인 학생입니다. 대학원생은 아니지만 학과 특성상 4학년 과목은 논문으로 수업 진행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 많은 걸 언제 읽나 고민하던 중 이 글 시리즈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도움되었어요. 감사합니다.
-Jiyeon Lee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작년에 비슷한 이유로 마음 고생, 몸 고생을 심하게 한 이후라 더욱더 와 닿네요. 왜 더 일찍 깨닫고 주체적으로 움직이려 하지 않은 건지 후회스럽지만, 지금이라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jvlvjj

이번에 졸업하고 교수로 임용되어 학계에 첫발을 딛는 경영학 박사 5년 차 학생입니다. 졸업과 취업의 기쁨도 잠시 테뉴어에 대한 압박과 더불어 더딘 논문 성과에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난 이 일이 즐거워서 시작했는데 요즘은 통 즐겁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 즐거움이 성과로 잘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어떻게 하면 다시 즐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와중에 이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애독자가 될 것 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Operations PhD

글 보면서 왜 울컥하는 걸까요?
-Knre

해외에서 대학원 생활 시작한 사람인데 저도 모르게 이것저것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그 와중에 이 글 보고 울컥하네요. 대학원 시작 전에 이 글을 봤을 때는 그저 좋은 글이다 하고 말았는데……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Anonymous

정주행하고 처음 글 남깁니다. 대학원 준비 중인데 반복해서 읽어볼 좋은 글이 많네요! 세 저자 분께 모두 감사합니다.
-리을

이 글을 박사과정 시작 전에 읽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그때 읽었더라도 내가 박사과정에서 겪는 이 좌절들을 10분의 1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드네요. 정말 공감합니다.
-Anonymous

유익한 글이네요. 특히 박사학위 과정에 입학한 학생과 더불어, 지도교수가 될 분들에게도요.
-바다소년

프로포잘을 준비하면서 과연 박사가 나한테 무슨 의미인지…… 그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맴 돌고 있었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학문의 즐거움

너무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제가 박사학위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hong

세세한 이야기의 중요성보다도 박사과정을 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방법을 안내해주는 것 같아 좋습니다. 어떤 고민을 해봐야 하고, 무엇을 고려해봐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여러 번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Lee

눈물이 찔끔 나왔어요. 사실 대부분의 큰 그림만 겹칠 뿐이지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도달 지점이 다른 학문을 개별적으로 파는 거잖아요. 하지만 교수님들의 반응에 따라 박사학위를 위해 공부하고 있는 제 존재 자체가 흔들릴 때가 있고, 과연 내가 하고 있는 연구가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인가, 나는 이 학위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까지도 고민될 때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근본적으로 나에게 왜 이 학위가 필요한 것이지, 박사학위 이수 후 호칭 말고 내 인생에서는 뭐가 달라지는지, 왜 나는 이 학위를 위해 타지에서 살고 있는지……. 이 고민과 걱정을 저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과정을 밟고 있는 모든 박사생들의 번뇌라고 생각하니 위로가 됩니다. 좋은 글 보고 용기 얻어 가요.
-눈물찔끄미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좋은 글에 감사드리며 자극이 필요할 때 몇 번이고 읽어보겠습니다.
-JK

석사학위 논문을 최선을 다해 썼지만, 연구해본 경험이 너무 적어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그런데 지금 너무나 궁금했던 사항을 속 시원히 긁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이제 실천만이 남았네요.
-kuty

저는 심리교육과 3학기 차인데 이제 논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논문 작성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글을 보면서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풀렸습니다.
-윤미령

아마 첫 논문을 쓰고 났을 때쯤 저자님들의 글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얼마나 동감했는지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왜 이제야 보았을까 하는 후회도 많이 했지요.
-J. Han

와. 사회과학 석사생인데 이 글 왜 이제 봤을까요? 진짜!
-Anonymous

박사 1년 차 화학전공 학생입니다. 미국에서 공부 중인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여기서 뭘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고 있거든요.
-Jeon

제가 이 글을 먼저 읽었더라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글을 읽었어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후배 대학원생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깨달았으면 합니다.
-재원

박사과정을 시작하고 이 글을 복습했습니다. 학부생 때는 잘 이해는 못 했던 부분들이 지금은 구구절절 제 마음에 와 닿고 있습니다.
-Troy

대학원 들어온 지 4년 차 되는 통합과정 학생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Ali

내일 학위를 받습니다. 공부를 시작할 때 봤던 글을 다시 찾아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아직 멀고 부족하게만 보입니다. 그래도 가끔 자신이 없어질 때 이 글을 보며 힘을 얻었습니다.
-Anonymous

아이디어를 말하는 것에 관해 제가 갖고 있던 두려움, 걱정, 문제 해결에 힌트가 되었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내가 논리적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며 마치 실험에 동참하고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이 듭니다. 또한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있는 듯 편안한 느낌은 참으로 좋습니다. 항상 실천하는 지혜를 글로 담아주셔 감사합니다. 저 또한 좋은 모습 닮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명랑이^^

이 글을 통해 ‘연구’에 더욱 현실적으로 주도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석사과정이 왜 답답했는지 명쾌하게 이해되었습니다.
-Doy

석사 전환 또는 끝까지 해볼지…… 많은 생각이 매일 뇌를 지배하네요. 휘청거리는 청춘입니다. 살아 있는 글 너무 감사드립니다.
-Rimi

대학원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달려왔는데 대학원에 들어오니 이곳은 제가 생각한 것과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연구 주제와 딱 맞는 수업도 없는 것 같고요. 글을 보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습니다.
-대학원 학생

박사 3년 차, 퀄 시험(qualifying exam)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요즘 항상 하는 고민이 ‘내가 유학을, 그리고 박사과정을 시작해서 매일 이렇게 괴롭고 불안한가?’였습니다. 오늘은 또 그 고민의 극에 달했지요. 그런데 이렇게 먼저 비슷한 길을 앞서 간 분의 글을 보니 위로를 받네요. 고민이 생길 때마다 읽어봐야겠습니다.
-Angela

교수님께서도 불안해하시고 고민하신다는 것에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석사 3학기의 마무리가 다가오는 이 시점, 졸업 후 원하는 곳으로 박사 진학을 못할까 봐 조금 불안해하고 있었거든요. 저의 불안이 특이한 것이 아닌 누구나 느끼는 불안이라는 점,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점에서 불안감을 잘 받아들이고 관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Bak

독일에서 석사 졸업 준비 중인 학생입니다. 세 분의 글 하나하나 너무너무 공감하며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평소에 생각하는 것, 고민하던 문제들이 어쩜 이리 똑같이 나오는지 신기해하며 위로 받습니다.
-Ji Hye PARK

핀란드에서 석사 중인 학생입니다. 제가 이 글을 먼저 읽고 석사를 결정했다면 참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한창 논문 놓고 프로포잘을 쓰고 있는데……. 제가 진짜 열정 있어서 연구하려는 건지 고민 중이었거든요. 들어오기 전에 고민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아 이제야 벌을 받는 거죠. 진짜로 제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다시 시작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블리

교수님께 제가 맨날 갈굼당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 Nuno Bettencourt

책 읽으신 분들의 많은 후기 기다리겠습니다!!  페이스북에 책 후기 남겨주시고 저자 중 한 명이나 페이스북 페이지 태그해주시면 찾아가겠습니다 🙂 

저자이신 최윤섭님의 표지 따라하기





* 블로그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리디북스,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전자책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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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뭘 해도 불안하다

2016년 봄에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2018년 겨울이 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짧은 글로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대학원에 진학할 즈음에 고민이 많았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고민이 많았고, 자퇴한 뒤 짧은 직장 생활 뒤에 유학을 와서 다시 대학원에 입학했다. 이 길이 맞나? 이 길이 내 길인가?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박사과정 동안 연구와 관련 없는 수많은 고민을 하고 지냈고, 졸업 후 교수가 되어서도 여전히 본업과 관련 없는 수많은 고민을 하고 지내고 있다. 처음에는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해서 이런 “쓸데없는” 고민에 둘러싸여 사는 줄 알았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 시기이다. 내가 나의 선택을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해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같이 수업 듣고 같이 공부하고 같이 놀다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저마다 다른 길을 찾아 나선다. 대학생 때까지는 누가 봐도 ‘학생’이라는 신분이 확실하다. 주변에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많고 대체로 비슷한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면, 취직하는 친구, 창업하는 친구, 여행을 떠나는 친구, 다른 학교 대학원에 진학하는 친구, 다른 나라로 공부하러 떠나는 친구, 성직자의 길을 찾는 친구, 구도의 길을 떠나는 친구 등 저마다의 사연과 고민으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선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내가 나 스스로 뭔가 결정해서 내 인생을 살아본 일이 잘 없었다. 기껏해야 어느 대학에 갈지 정했다. 대학에 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요즘은 대부분 대학에 가니까 그렇게 큰일은 아니다. 기껏해야 어느 전공을 택할지 정했다. 다른 친구들도 전공은 하나씩 다 있다. 숙제 문제를 이렇게 풀지 저렇게 풀지 정했고, 프로젝트는 어떤 주제로 할지 정했다. 오늘 친구들과 소주를 마실지 맥주를 마실지 정했고, 시험공부는 유체역학부터 할지 동역학부터 할지 정했다.

이런 시시콜콜한 결정을 내리며 살다가 대학원에 가기로 했다. 나처럼 대학원에 가기로 한 친구들은 그 수가 많이 줄었다. 유학을 결정하고 나니 같은 결정을 한 친구는 한둘. 지도교수를 정하고 연구 주제를 정하고 나니, 당연하게도, 나랑 같은 결정을 한 친구는 없었다.있으면 큰일나지

나는 내가 다른 나라의 대학원에 진학했기 때문에 친구도 못 만나고 외로운 줄 알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한국에서 취업한 친구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더라. 다들 바빠져서 예전만큼 자주 만날 수는 없더라. 방학 때 한국 가서 친구들 만나보니, 다른 친구들도 그때야 오랜만에 만나더라. 나는 내가 박사과정에 와서 끝이 보이지 않는 연구를 하느라 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괴로워하는 시간이 많은 줄 알았다. 다른 친구들도 다 나랑 비슷한 고민 하고 있더라.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몇백만 원 받아가며 일하며 바쁘게 지내는 친구들이 월급이라고 해야 할지 생활보조금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한 돈 받으며 보이지 않는 졸업을 기다리며 겨우 지내고 있는 나를 부러워할 때도 있더라.

이제 와서 뒤를 돌아보니, 대학원생이라서 했던 것 같은 고민이 사실은 그냥 그때 그 나이 때 해야 되는 고민이라서 했던 것들이 많았다. 주어진 환경에서 적당히 살다가,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하고, 그 결정에 온전히 내가 책임지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그 때문에 느껴지는 부담감으로 불안해하고 외로워하고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모든 사람의 문제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내가 겪었던 문제 중에선 내가 ‘대학원에 왔기 때문에’ 생긴 문제들은 별로 없었다. 어떤 선택을 했어도 생기는 문제였을 거다. 연구가 잘 안 되는 “사소한” 문제가 있긴 했다.

그냥, 그 나이 때는 뭘 해도 불안하다. 한 가지 좋은 소식은 그 나이 이후로 계속 불안하리라는 것. 응?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수가 되고 계속 불안하다가 테뉴어를 받기 전후에 잠시 안정된 것 같았는데, ‘이대로 계속 살아도 되나?’ 하는 고민이 또 생기고 다시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을 돌아보니 내 나이 또래 친구들도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친구들이 늘어난다. 그냥 이런 거 고민할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마다 시기의 차이는 좀 있겠지만, 내 고민만 특별한 건 아니고, 때 되면 해야 하는 고민들이 있는 게 아닐까 한다.

대학원에 진학했기 때문에 생기는 고민 별로 없다.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별로 없고 몰라도 된다. 알아도 고민하고 몰라도 고민한다. 때 되면 알게 된다. 연구가 잘 안 되고 논문이 잘 안 써지는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 이런저런 글을 쓰긴 했는데, 처음에 프롤로그에서 바랬던 것처럼, 이 책이 대학원생 여러분이 내린 결정 잘 따라갈 수 있게 등이나 잘 떠밀어주면 좋겠다.


* 블로그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리디북스,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전자책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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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닥쳐오는 멘붕의 파도

대학원에 진학해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한발짝 한발짝 내디딜 때마다 ‘멘탈’이 무너져 내리게 하는 폭탄들이 여기저기 숨겨져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한 번 미리 둘러보자.

멘붕의 파도

이 글에서는 연구실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인간관계 문제와, 지도교수의 부당한 처사 혹은 폭력적인 행동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화목한 연구실에서 모범적인 지도교수와 함께 연구하는 경우에도 ‘멘붕’은 일어난다.

아래의 일 들 중엔 내가 직접 겪어본 일도 있고, 주변에서 일어난 일도 있다. 살아가면서 닥쳐오는 모든 멘붕에 마찬가지겠지만, 멘붕 극복에서 중요한 것은 (1) 슬퍼할 만큼 슬퍼하고 (2)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3)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본 뒤 (4) 그래도 안 되면 정신 승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우가 신포도 기술을 시전하였습니다. 순서가 중요한데 4번의 정신승리가 먼저 오면 자기반성이 힘들어진다. 정신승리만 하게 되면 발전할 기회를 놓치기 쉽지만, 적당한 정신승리 없이 버티기는 또 쉽지 않으니 적절한 선에서 잘 승리하자.

대학원 입학 심사에서 떨어졌어요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좋아 대학원 입학을 결정했지만, 입학 심사에서 그만 떨어져 버렸다. 이때야 탈출해 꽤 오래전이지만, 대학원 원서를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초조했던 마음, 받은편지함을 1분마다 새로고침 하던 마음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 교수로 지내면서 내 생활도 사실 크게 다르진 않다. 연구제안서든 논문이든 뭔가를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느라 초조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합격하지 못 한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체로 내가 준비가 부족했거나, 내가 욕심을 부렸거나, 혹은 그저 운이 없었던 거나겠다. 우리가 지금 안 되는 건 두 가지야, 공격과 수비 대학원 입학 심사에 떨어진 뒤에 어떤 마음가짐이면 좋을지 잘 보여주는 예가 가까이에 있다. 같이 글을 쓰고 있는 태웅님의 글을 읽어보자. 절망에 빠지는 대신 자신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다음 기회를 준비했다.

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무슨 말인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나는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대학원에 무사히 입학해서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 갑자기 뭔가 난이도가 뛰어버렸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학부과정에서 배우던 과목들의 난이도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던 반면, 대학원에 들어와서 배우는 과목들은 갑자기 어려워지고 수업마다 들여야 하는 시간도 많이 증가한다. 학부 때는 한 학기에 보통 대여섯 과목을 들은 데 비해, 대학원에서는 서너 과목만 듣게 된다. 그런데 바쁘다. 온종일 공부만 했는데 아직도 부족하다.

전공을 바꿔서 대학원에 진학했을 경우엔 좀 더 심하다. 교실에 앉아 있는 사람 중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는 건 나뿐인 것 같다. 학생이 ‘바보 같은 질문 해서 죄송하지만…’이라며 교수에게 던진 질문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계공학에서 산업공학으로 전공을 바꿔서 진학했는데, 확률과 통계에 대한 지식이라곤 동전을 던졌을 때 뒷면이 나올 확률은 이 분의 일이라는 것과, 다 더해서 개수로 나누면 평균이라는 사실뿐이었다. 안타깝게도 첫 학기에 들었던 수업 중엔 확률과 통계를 이미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진행하는 수업이 있었다. 당연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고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잘 할 수 있을까. 다른 수업들도 마찬가지였다. 산업공학이 원래 전공이었던 학생들은 한 번은 들어본 개념이었겠지만, 나는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개념들이 기본 개념으로 쓰이고 있었다. 수업에 참여하기 어려웠다.

내가 택한 방법은 비슷한 내용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한 책을 찾아서 읽어 보는 것과 배경 지식을 가르치는 학부 과목을 청강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여전히 쉽지 않았으나, 시간이 쌓이면서 학기가 마칠 즈음엔 제법 무슨 말인지 잘 알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엉덩이가 가벼운 학생이었다. 대학생 시절 공부한답시고 도서관에 자리를 잡으면 10분을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산만했다. 10분마다 돌아다니고 10분 공부하고 30분 놀고. 그렇게 해도 어떻게 졸업은 했다. 대학원 와서 놀랐던 건, 세상엔 공부할 게 참 많다는 사실과 내가 3시간 연속으로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다. 학부 때 공부 좀 열심히 할 걸이라는 생각도 했다.

대학원에서 수업을 듣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면, 결국 공부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전공을 바꿔서 일 수도 있고, 학부 때 공부를 게을리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시 쌓아올려야 한다. 대학원 1년차 때 요행으로 어찌어찌 잘 넘겨가며 쌓아놓은 돌무더기는 나중에 결국 무너져서 다시 쌓아야할 날이 온다.

박사 자격 시험에 떨어졌어요

박사과정은 대체로 1년 차 혹은 2년 차 때 자격시험이란 것을 본다. 몇몇 중요한 기초가 되는 수업을 듣고 나면 연구를 할 준비가 되었는지 알아보는 시험이다. 학교마다 이름이 다른데 영어로는 주로 qualifying exam, candidacy exam, comprehensive exam 따위로 불린다. 보통 두 번 정도의 기회가 주어지며 시험의 형식은 학교, 학과, 전공마다 가지각색이다. 일반적인 시험처럼 보는 곳도 있고, take-home exam 형식도 있으며, 구두시험을 동반하기도 한다.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 이 시험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고민거리 하나를 덜어낸 것이다. 하던 공부 계속하고 하던 연구 계속하면 된다.

시험에 한 번 떨어지고 나면, 담당 교수와 면담을 하고, 몇 달 뒤에 재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통과하지 못하면 박사과정을 계속할 수 없고, 대학원을 떠나야 한다.

충격적인 일이다. 큰 꿈을 품고 박사과정에 진학했는데, 1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시험에 떨어져서 중간에 떠나야 한단다. 나는 계속 공부해서 연구하고 싶은데 시작도 제대로 못 해보고 떠나야 한단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것이다. 슬픈 일이다. 내 자신에 대한 분노가 일어날 것이고 주변 환경에 대한 원망도 들 것이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박사 자격 시험은 무사히 통과했지만, 유사한 고민을 해 본 적이 있다. 몇 년 전 조교수일 때 정년 보장 (테뉴어) 심사를 위한 중간 심사 결과를 받아들곤 위에서 말한 것과 비슷한 감정과 고민을 가져본 적이 있다. 연구업적이 부족해 이대로라면 테뉴어 심사에서 떨어질 확률이 높다는 평가를 손에 받아 들곤 별의 별 생각을 다 했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점은 나는 연구를 즐겁게 하고 있고 좋아서 계속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의 의지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내가 연구하는 것을 그만두게 된다면 앞으로 내가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일이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했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계속 노력했고 그 뒤에 운이 좋아 연구 업적을 더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결국 테뉴어는 받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박사 자격 시험은 아주 이른 시간에 연구자의 꿈을 꾸고 있는 학생에게 종말을 고한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시험을 보는 이유가 있다. 박사과정을 마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5년에서 7년 정도이다. 전공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그렇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대학원에서 오랫동안 보내야 하는데, 적성이 맞지 않는 학생을 희망 고문하며 붙잡아 두는 것은 학생에게도 고통스럽고 그 학생을 지도해야 하는 교수에게도 고통이다. 박사과정 자격시험은 마지막으로 이 긴 시간을 인내심을 갖고 보낼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묻는다. 박사과정 자격시험이 지나가면 남은 것은 연구하고 논문 쓰는 길고 긴 과정뿐이다. 안개 속을 걷는 듯한 이 과정에서는 큰 사고를 치지 않는 한 학생이 타의에 의해서 학교를 떠나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박사과정 자격시험에 떨어졌다는 것이 마냥 슬픈 일은 아니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나의 적성과 맞지 않는 진로 계획을 세운 실수를 바로 잡을 기회로 볼 수도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며 진로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볼 수 있다.

 

마지막 기회야. 지금 도망쳐…

 

충분히 슬퍼한 뒤, 미래를 위해 고려해볼 가능성은 다음과 같다.
(1) 그동안 수업을 들은 것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할 가능성이 있으면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 수업 듣느라 고생한 그동안의 시간에 대한 작은 보상이 될 수 있다.
(2) 같은 학교의 다른 학과로 옮긴다. 요즘은 비슷한 연구를 여러 학과에서 한다. 입학 원서를 새로 내야 하지만, 절차가 조금 간소화될 수 있다.
(3) 다른 학교로 옮겨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본다. 원서도 새로 내야 하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들었던 수업도 다시 또 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4) 내가 정말 연구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다시 한번 물어보고, 후련하게 학교를 떠난다.

주로 볼 수 있는 선택은 (1) 번과 (4) 번의 조합이지만, (2) 번 혹은 (3) 번의 선택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다른 학과 및 학교로 옮겨서 다시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 번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으로 다른 곳에서 성공적으로 박사과정을 마치는 경우도 많다. 어떤 선택을 하든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같이 글을 쓰는 태웅 님과 윤섭 님께서 쓴 다음 글들을 읽어볼 시간이다.

회사냐, 대학원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나는 과연 대학원에 가야 하는 걸까
박사 학위라는 것의 의미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연구는 진도가 안 나가고 이대로라면 졸업을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박사과정을 하다 보면, 언젠가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열심히 하는 데, 지도교수는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하고, 교수가 졸업 준비를 시켜주지 않는다.” 이 고민에 대해선 이미 한번 다룬 바가 있다. ‘내 연구하기’ 페이지를 읽어보자.

학회에 갔더니 제 연구가 제일 허접해요

학회에 참석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내 연구 결과를 자랑스럽게 발표할 수 있고, 다른 연구자들의 최신 연구를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다. 학회에 참석한 뒤 집에 돌아오는 길은 대신 조금 힘들다. 나 혼자 연구실에서 논문 쓸 때는 내 논문이 그리도 멋져 보이더니, 밖에 나와서 다른 사람들의 연구 결과를 접하고 나니, 내 논문이 세상에서 제일 못나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중요해 보이는 연구 주제를 잘도 잡았으며,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연구 결과를 그렇게도 쉽게 뚝딱뚝딱 내어놓는지 이해가 잘 되지도 않는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발버둥 쳐서 억지로 힘들게 논문을 썼는데 말이다. 처음엔 멋져 보이던 내 논문이 지금 와서 보니, ‘이런 논문 써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마음도 든다.

내가 대학원에 입학해서 첫 논문을 쓴지 십 년이 지났다. 아직도 이런 감정을 일 년에 서너 번 이상 느끼고 있다. 복잡한 감정이지만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 번째는 남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실감이고, 두 번째는 연구 자체에서 오는 허무함이다.

학계는 어떻게 보면 특이한 곳이다. 나와 같은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는 전 세계의 대학원생, 연구원, 교수 등이 발표하는 논문의 내용, 그 사람들의 경력 같은 것을 기관 홈페이지, 개인 홈페이지, 학술지 검색, 구글 스칼라 검색 등의 방법으로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연구에 진척이 있어서 온종일 기분이 좋았는데, 어쩌다가 다른 대학원생의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나선 주눅이 들어 내 모든 것이 초라해 보인다. 가슴 깊은 곳에서 어두운 우울함이 올라온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남들과의 비교가 너무 쉬운 탓이다.

회복하는데 하루 이틀 혹은 몇 주가 걸린다. 이런 기분 안 가져보려고 발버둥 쳐봤지만, 주기적으로 느끼게 되는 이런 기분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바닥으로 떨어져야 한다. 질투, 원망, 자책, 시기 등의 어두운 감정들이 한 번씩 나를 거쳐 가고 나서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때가 중요하다. 남들을 바라보지 말고 나를 바라볼 때다. 내가 한 연구의 결과물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자. 그렇게 초라해 보였던 내 논문이 제법 괜찮은 구석이 있단 것도 발견할 수 있다. 남들의 화려한 연구 결과와 비교해서 화려한 점은 없어도, 구석구석 꼼꼼히 잘 마무리 한 부분도 있다. 내가 이 실험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떻게 잘 극복할 수 있었는지, 이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떻게 그렇게 참신한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나 자신이 대견해진다.

결국엔 ‘나 정도면 그래도 제법 괜찮은 연구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세상 최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하다. 내 연구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고, 나도 더 채울 곳이 있지만, 그래도 나는 많이 노력하고 있고, 즐기고 있다. 반성할 부분은 반성하고, 배울 부분은 더 배우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다 보면 또 언젠간 지금보다 더 좋은 연구를 하게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올라온다. 몇 개월 후엔 다시 또…내가 제일 못났어…

내가 가지고 있는 부분 중에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고 다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시련이기 때문에 내가 제일 못나 보이는 감정을 잘 관리해야 한다. 회복 탄력성이 중요하다.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시련을 겪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시련을 잘 극복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에게만 오는 못난 감정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만나보는 감정이다. 긍정적인 면을 잘 찾아서 다시 올라와야 한다.

정 안 되겠으면 여우가 되어 포도가 얼마나 시었을 건지 이야기라도 해보자. 이 사람은 그저 운이 좋았을 거라며, 저 사람은 주변에서 남들이 다 해줘서 저런 논문을 쓸 수 있었을 거라며, 그런 기회가 온다면 저 정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었을거라며 자기 위안을 해보고 다시 감정을 추스르자. 하지만 ‘신포도’ 기술은 자주 쓰면 해롭다. 나를 돌아볼 기회를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내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뒤 다시 올라올 때, 나 자신이 잘 보인다. 내가 잘 하는 것과 내가 부족한 것이 잘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연구를 더욱 좋아할 수 있게 된다.

저 포도는 시었습니다

연구 자체가 허무해질 수도 있다. 이런 연구 해 봐야 뭐하나, 이런 논문 써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내 이력서에 한 줄 더 들어가는 것 말고, 내 논문이 이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나. 이와 같은 마음이 수시로 든다. 논문을 쓰기 위해서 논문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논문을 쓰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도 없고 취직을 할 수도 없으니까 억지로 논문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나는 교수로 지낸 지 이제 10년이 넘어가지만, 여전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여전히 그런 논문도 쓰고 있다. 더 의미 있는 논문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별 시답지 않은 내용의 논문도 많이 쓰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항상 크고 멋진 논문만 쓰고 싶지만, 학생 지도하는 입장에서 그것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내 연구에서 의미는 찾을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대작은 아니지만 습작인 것이다. ‘성실한 습작’이라고 하자.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연구 주제에, 세상을 놀라게 하지 못하는 연구 결론이지만 내가 가졌던 질문에 나는 성실히 고민했고 꼼꼼한 답을 내어놓았다. 습작들이 쌓이고 쌓여서 언젠가 대작을 쓸 기회가 올 것이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논문이 거절되었어요

학술지에 출판하기 위해서 혹은 학회에 참가하여 발표하기 위해서 제출한 논문이 거절되는 일은 아주 흔하다. 흔하지만 거절될 때마다 가슴이 쓰라린 다. 대학원생으로 처음 제출한 논문이 거절된다면 그 아픔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지난 몇 개월 혹은 몇 년간 공들여 작업한 결과물이 거절당한다면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거절된 사유와 논문 심사자들의 비평을 읽어보면 큰 분노가 일어나거나 큰 슬픔이 일어나거나 혹은 분노와 슬픔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심사를 맡은 사람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것처럼 보이고 비평이 전혀 말도 안 될 경우가 있을 것이고, 내가 분명히 논문에 써놓은 중요한 사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며 혹독한 비평을 한 심사자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엔 분명히 화가 날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심사자의 비평이 매우 정확하고 내 연구의 약점에 대한 지적이 칼날 같을 때도 있다. 내가 읽어봐도 거절의 사유가 분명해서 할 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의 능력 부족에 슬퍼지고 나의 노력 부족에 화가 날 수도 있다.

일단 며칠 슬퍼하자. 단것도 좀 먹고 술도 좀 마시자. 재미있는 드라마도 좀 보고 만화책도 좀 읽자. 게임도 좀 하고 건담이나 레고도 좀 조립하자. 컬링 대표팀의 ‘안경선배’도 올림픽 출전권을 놓친 후에 건담을 조립하며 마음을 추슬렀다고 하지 않나. 그동안 논문 심사 결과는 생각도 하지 말고 비평을 다시 읽어 보지도 말자.

 

내가 논문이 리젝될 때 마다 건담을 조립했으면, 건담 박물관…

 

며칠 지난 후에 충분히 슬퍼했다 생각되면, 비평을 다시 꺼내서 읽어 보자. 처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르게 읽힐 것이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비평은 다시 곰곰이 곱씹어 보니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그 의미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될 수도 있고, 내가 분명히 논문에 써놓은 것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써놓지 않았다고 혹평한 것은 내가 글을 충분히 다듬어서 잘 쓰지 않았음을 반성하게 될 수도 있다.

내 연구를 초라하게 만들었던 날카로운 비평은 다시 읽어 보니, 내 연구의 장단점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고수의 조언임을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내 연구의 약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던 비평은 내 연구를 근본부터 무너뜨리는 지적인 줄 알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논문을 쓸 때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쉽게 해결이 가능한 부분임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쓴 논문을 시간을 들여 읽어 주고 비평을 해 준, 심사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공들여서 수정한 다음 다른 학술지나 학회에 다시 제출하면 된다. 내가 쓴 논문을 출판해 줄 학술지는 어딘가에는 있다. 아무렇게나 대충 휘갈겨 쓴 논문도 출판해주는 이상한 학술지도 많다. 그런 곳보다는 여러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학술지에 논문을 출판하고 싶으니까 고통이 따르는 것이다. 공을 들여야 한다. 처음 제출에서 받은 비평을 바탕으로 내 연구의 약점을 보완하고 글을 다듬는다면, 어쩌면 처음 제출한 학술지/학회보다 더 좋은 곳에서 출판해 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렸다.

직장이 잡히지 않아요

박사과정 졸업의 마지막 관문 중의 하나는 취직이다. 취직 잘 안 된다. 남들은 다 하는데 나만 안 됨. 박사 학위자가 필요한 직장은 많지만, 내 전공의 내 연구 분야가 필요한 직장은 또 별로 없다. 내 박사 학위의 의미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직장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도 있고 넓어질 수도 있다.

내가 박사과정에서 진행했던 연구 분야의 연구를 그대로 이어서 할 수 있는 직장을 찾고자 한다면, 선택의 폭은 굉장히 좁다. 박사 후 연구원이나 교수, 혹은 큰 정부 연구소 및 대기업 연구소의 특정 부서 이외엔 갈 곳이 없을 지도 모른다. 반면에, 박사학위의 의미를 새로운 문제에 논리적인 답을 내어놓을 수 있도록 독립적인 연구자의 소양을 갖춘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장의 종류는 조금 더 많아진다. 어느 것이 자신에게 옳은 답인가 하는 것은 자신만이 판단할 수 있다.

나는 박사 마지막 해 직장을 구하면서 내 연구는 기업에서는 필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내 박사학위의 의미를 좁게 해석했다. 선생님, 산업공학 박사학위가 기업에 필요가 없다니 무슨 말입니까… 그래서 원서를 내볼 수 있는 곳은 대학교나 연구소뿐이었다. 전 세계 50여 군데 원서를 냈다. 3개 대륙에 있는 5개 학교에 면접을 보러 갔고 성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잡마켓이 닫힐 때가 다 되어 가는데 아무 곳에서도 나를 원하지 않았다. 심각한 우울감에 빠졌다.

내가 지난 5년여간 노력한 연구는 결국 나를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5년이 헛되어 보였고 허무했다. 지도교수님께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앞으로 1년간 다시 마음을 다잡고 노력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다시 대학원에서 시간을 더 보낼 자신이 없었다. 삶의 의욕이 없어지는 것 같았고 침대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몇 주 뒤에, 운이 좋게도 한 곳에서 극적으로 일할 기회를 받았고, 모든 고민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취직이 안돼서 얻은 병에는 취직이 약…

나는 부족한 실력에 비해 운이 좋은 경우다. 나는 2008년 여름이 시작될 때 즈음 직장을 구할 수 있었는데, 그해 여름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지며 찾아온 금융 위기로 그다음 해부터 대부분의 학교에서 신임 교수를 채용하지 않았다. 만일 내가 1년만 더 늦게 졸업했더라면, 학계에서 길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학위 과정 중간에 석사 과정을 마치고 좀 더 명성이 좋은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싶은 욕심에 학교를 옮겨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다 떨어졌다. 올리젝 뙇! 만약 한 군데에서라도 합격했더라면 학교를 옮겼을 것이고 일이 년은 졸업이 늦어졌을 거다. 그러면 졸업할 때 직장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다.

학계에선 나보다 운이 좋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훌륭한 연구를 했지만, 내가 졸업하는 해에 내 연구 분야를 채용하는 학교나 연구소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신임교수 채용이 비교적 활발한 공학분야는 조금 사정이 낫지만, 신임교수 채용 속도가 비교적 더딘 인문학 분야에서는 자기 전공 분야를 뽑는 학교가 거의 없는 일이 자주 있다.

어느 순간에는 결정해야 한다. ‘고학력 실업자’가 될 수는 없다. 용기를 가지고 내 박사학위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던가, 한두 학기 단기 계약을 하는 강사 자리를 찾아가며 전 세계를 유랑할지라도 학계에서 끈을 놓지 않을만큼 연구자 혹은 교육자의 꿈이 큰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전자를 택해서 학계에선 불가능한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분도 많고, 후자를 택해서 몇 년의 고생 끝에 결국엔 학계에 자리 잡은 분도 많다. 물론 전자를 택했다가 연구자/교육자의 꿈을 버리지 못해 다시 학계로 돌아오는 분도 많고, 후자를 택했다가 결국엔 연구자/교육자의 꿈을 이어가지 못한 분도 많다.

교수로 일할 기회를 얻었지만, 테뉴어 심사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다른 학교로 이직하거나, 학계를 떠나기도 한다.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테뉴어 심사에서 떨어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행복도를 측정하고 비교해보았는데, 테뉴어 심사 직후에는 당연하게도 행복도에 큰 차이가 있지만, 5년 정도 후에는 행복도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직장을 얻고 거기에서 얼마나 성공적으로 경력을 이어나가는지는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에 큰 영향은 없다는 말인 것 같다. 그깟 연구 따위…

내가 기대고 있는 말들

세상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학계에 있으면 항상 실패를 겪는다. 연구계획서를 제출했는데 퇴짜 맞고, 논문을 제출했는데 혹독한 비평을 받는다. 자기 기준을 엄격하게 설정해서 높은 질의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뒤에 오는 절망과 상실감을 잘 극복하기 위해선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어떤 교수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해보고, 안 되면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안 해보면 되는지 안 되는지 알 방법도 없고, 안 되는데 그게 또 안 되었다고 슬퍼하기만 하면 우울증에 걸리는 결말밖엔 없다. 평균 채택률이 20% 정도 되는 연구재단에 연구계획서를 내면, 평범한 연구자인 내가 제출한 연구계획서가 반려될 확률은 80%라는 이야기다. 내가 제출하는 연구계획서 심사 결과의 기대값은 ‘채택’이 아니라 ‘반려’라는 것이다. 그래서 ‘해보고 안 되면 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계속해보는 수 밖에 없다. 물론 단순히 숫자만 늘려서는 안 되겠지만.

내 논문/연구제안서의 운명

몇년 전 내 아내가 어디에선가 운세를 보고 와선 내가 ‘대기만성’형이라고 했다.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내 나름대로는 어려서부터 공부도 잘 했고,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그럭저럭 졸업도 했고, 어린 나이에 교수가 되어서, 여러 부침이 있긴 했지만, 어찌 됐든 테뉴어도 받았는데, 대기만성이라니 무슨 말이냐고 했다. 내가 무슨 노벨상이라도 받는다는 말이냐며 웃고 넘어갔다. 안 돼 돌아가. 노벨 산업공학상은 없어.

“대기만성”

지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말이 아주 큰 힘이 된다. 내가 실제로 대기만성형 운세를 타고 났는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하는 일이 보잘것없어 보이고, 잘 안 될 때마다 ‘대기만성’이라는 네 글자가 나에게 큰 힘을 준다. 오늘도 이렇게 정신승리를… 계속해보는 수 밖에 없고,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결과가 생긴다. 작아도 의미 있는 결과물이 쌓이다 보면 큰 결과물도 생긴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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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에 가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

학회에 가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프로 학회러의 길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다 보면 학회에 참석할 기회가 생긴다. 학회는 뭐 하는 곳인가? 학회에 가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학회’라고 하면 두 가지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대한산업공학회’나 ‘한국고고학회’처럼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조직 혹은 기관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보통 society라고 한다. ‘Society of Industrial and Applied Mathematics’나 ‘The Royal Statistical Society’처럼 말이다. ‘American Economic Association’이나 ‘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처럼 association이나 institute를 학회 이름에 쓰는 경우도 있다. 이런 학회에서는 연구 분야와 관련된 여러 가지 활동을 조직하고 관리한다. 학술지(academic journal)를 출판하고, 관련 서적을 출판하거나 관련 분야의 표준안을 정리하기도 한다. 그리고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구성원들의 모임을 주관한다. ‘학술회의’라고 하는 것이다.

학술회의에 참여할 때 보통 ‘나 학회 간다’라고 말한다. 학술회의를 줄여서 학회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학회도 바로 이 학술회의이다. 학회의 형식과 규모에 따라 conference, workshop, symposium 등의 이름으로 달리 불린다.

학회는 왜 열리나?

평소에 멀리 떨어져서 각자 연구를 하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서로의 연구를 소개하고 의견을 주고받기 위해 만들어졌다. 학회에서는 아주 다양한 형태의 행사가 준비되어 있고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일은 구성원들이 연구 활동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학회는 왜 참석하나?

사람마다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학회에 참석하겠지만, 내가 학회에 참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내 연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고, 내 연구에 일부 자랑스러운 면이 있어서 남들에게 알리고 싶다.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을 열심히 고민하고 노력해서 연구하여 결과가 나왔다.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고 여전히 부족해 보이는 점도 있고 풀리지 않은 고민도 있다. 학회에 가면 내 논문을 읽을 사람도 있고, 심사했던 혹은 앞으로 심사를 할 사람도 있으며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두 모인다. 그분들 모두가 내 발표를 들으러 오진 않겠지만, 한두 명만이라도 와서 내 발표를 들어주고 같이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앞으로 내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만족스러운 결과가 있었다면 관련 분야의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도 있다.

2. 다른 사람들은 어떤 연구를 하는지 엿보러 간다. 그러니까, 최신 연구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 간다. 내 전공 분야의 다른 연구자들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방법으로 답을 구하고 있는지 전체적인 방향도 파악하고 새롭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주제, 방법론들에 대해서 배우러 간다. 나와 비슷한 주제에 비슷한 방법을 썼지만, 더 나은 결과를 얻은 연구자에겐 부러운 마음과 질투도 생기기도 하고, 나와 비슷한 주제이지만 전혀 다른 방법을 써서 놀라움을 느끼기도 한다. 나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연구에서 내 연구에 도움이 될만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3. 다른 연구자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간다. 연구한다는 거, 때로는 굉장히 외로운 일이다. 대학원에 와서 한 주제에 골몰하다 보면, 내가 관심 있어 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대상과 내가 현재 가진 어려움과 고민은 내 친구들의 그것과 굉장히 달라진다. 연구하다가 뭐가 이해가 안 되거나 궁금해진 것이 있어서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볼 곳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같은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동료 대학원생들과도 다른 점을 고민할 때도 있고, 심지어 내 지도교수님도 답을 줄 수 없는 경우도 많으며, 같은 학교 안에서도 물어볼 곳이 없는 경우도 생긴다. 나를 아껴주는 가족, 내가 사랑하는 연인과 유머코드가 안 맞아서 타박받는 일도 잦아진다. 학회에 가면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 나랑 말이 통하는 사람,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해 도움이 되는 실마리를 찾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유머코드도 대충 비슷하다.

미리 준비하기

학회에 가면 결국 여러 사람을 만나서 인사하고 이야기하고 연을 맺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일이 모두에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대학원생에겐 특히 어렵다. 학회에 가면 누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고,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학회에 가서 외로움에서 벗어나나 했는데, 학회에 막상 가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 보이는데, 나만 외롭다. 새로운 사람에게 밑도 끝도 없이 말을 건다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대화를 하는데, 나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고, 딱히 할 일도 없고, 심지어 같이 밥 먹을 사람조차 없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연구 이야기를 하든 그냥 수다를 떨든 학회 참석 전에 준비가 좀 필요하다. 나는 처음에 학회에 가면 멋진 만남과 기회가 저절로 생겨날 것으로만 착각했던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결국 내가 준비하고 노력해야 중요한 만남도 새로운 기회도 생기는 것이더라. 내 이상형이 코너를 급히 돌다가 나와 부딪혀서 들고 있던 서류 뭉치를 떨어트리고 도와주던 나와 눈을 맞추게 되는 일은 여러분에겐 생기지 않아. 안 생겨요.

학회 참석 2-3주 전에 준비할 것들

학회에 자주 참석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숙련된 프로 학회러들 보통 참석 전에 많은 약속과 학회에서 할 일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다. 학회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과 미리 시간 약속을 잡는다. 차 한잔도 좋고 식사도 좋고 그냥 학회장 한구석에서 잠깐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학회 참석 한 달 전 혹은 그 이전부터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는 시간 약속을 잡는다. 학회 기간 동안 정해진 시간에 내가 누군가 만나서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은 학회 참석 기간 내내 큰 안정감을 준다. 갈 곳을 잃고 흔들리는 눈동자로 방황하는 일이 줄어든다. 같은 학회에 참석하는 옆 연구실 학생들과 같이 점심식사 약속을 잡는다던가,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다른 학교의 연구자들과 저녁에 맥주 한잔할 계획을 잡는 것도 좋다. 같은 세션에서 발표하는 연구자에게 차 한잔 함께할 것을 제안하는 것도 좋겠다.

내가 읽고 있던 논문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혹시 그 논문의 저자 혹은 관련 분야의 전공자가 학회에 참석하는지도 확인해보자. 혹시 잠깐 만나서 몇 가지 물어볼 수 있을지 용감하게 이메일을 보내보자. 답장이 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자신의 연구에 관해서 관심이 있고 궁금한 것이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기쁘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나를 만나줄 연구자들도 아주 많다. 대가일수록, 좋은 연구자일수록 빨리 답장이 오고 더 잘 만나준다는 말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학회 스케줄을 미리 확인하고, 어떤 발표들이 있는지 미리 둘러보고, 어떤 발표를 들으러 갈 것인지 미리 정해두자. 어떤 재미있는 주제가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학회에 참석하는지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주제의 연구가 있다면 미리 관련 논문을 읽고 가자. 학회에서 발표되는 논문이 저자의 웹페이지나 다른 곳에 이미 올려져 있을 가능성도 굉장히 크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발표 도중에 혹은 발표 후에 저자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다.

한가지 질문에 집중하기

학회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한 가지 목표를 정해서 그 목표에 집중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체적인 트렌드 파악을 목표로 다양한 발표 세션에 참석해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배운다는 마음으로 관련 주제에 관한 세션만 집중적으로 참석하는 방법도 있겠다. 논문을 읽으면서, 연구를 진행하면서 가지고 있던 질문 한 가지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는 방법도 있다. 답을 알고 있을 것 같은 연구자의 발표에 들어가서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찾아본다거나, 그런 사람에게 직접 질문을 하고 도움을 요청해서 답을 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도 학회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유명 연구자와 인사하기

연구를 하다 보면 자신의 관심사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눈에 띄는 연구자가 보인다. 새롭게 떠오르는 스타 연구자이든, 학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가이든,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 결과를 내어 놓는 연구자들이 있다. 젊은 연구자들에겐 그런 사람들과 학회에서 만나서 인사말 한마디 나누고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더라도 왠지 그런 사람들과 말 몇 마디 나누고 싶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인사하고 싸인 받고 싶은 그런 마음처럼. 학회에서 네트워킹한다고 하면 꼭 그런 유명 연구자들과 인사하고 인연을 만들어야만 할 것 같고, 그래야지 내가 학계에서 성공적으로 연구 경력을 이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아 초조해하고 스트레스받기도 한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용기를 내서 접근해서 그런 분들과 가벼운 인사말 몇 마디 나눈다고 해서 그분들이 나를 기억해 주지도 않을뿐더러 내 연구 경력에 도움이 될 일도 없다.

유명 연구자와 친해지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내 동료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유명 연구자와 내가 친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친한 연구자가 유명해지는 것이다.” 백번 동감한다. 내가 아이돌로 여기는 유명 연구자와 스스럼없이 인사말을 나누는 다른 학교의 대학원생들이 조금 부럽긴 하지만, 내 아이돌과 꼭 친해져야 할 이유는 없다. 나보다 한세대 혹은 두세대 앞선 연구자들과 꼭 친해져야만 할 이유는 없다. 내가 내 연구를 열심히 하다 보면 친해지려고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시간이 온다. 대학원생이라면 유명 연구자들보다는 나와 같은 세대의 대학원생들이나 나보다 한 발 정도 앞서서 학계에서 자리 잡은 젊은 연구자들과 친해지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일 학계에 남을 거라면 앞으로 30년 혹은 40년은 얼굴 보고 부대끼며 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여러 동료 연구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협업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다 보면 나와 친한 사람들이 유명 연구자 그룹이 될 것이다.

다시, 네트워킹

학회에 가면 여러 종류의 네트워킹 기회가 있다. 학회마다 네트워킹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여러 가지 기회를 일부러 만든다. 학생들끼리 모아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특정 관심사가 있는 사람들만 따로 모아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다. 저녁 시간에 간단한 다과와 마실 거리를 가져다 놓고 마치 스탠딩 파티를 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런 기회가 있으면 꼭 참석하자. 물론 어색하다. 나는 나 혼자 와서 아는 사람도 없는데 누가 나에게 말 걸어 주지도 않는다. 나만 그런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 많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참석했는데 뭔가 이야기를 이어나가기가 어색해서 쭈뼛쭈뼛거리며 가장자리를 맴도는 사람들이 나뿐만은 아니다.

좀 어색하더라도 일단 그냥 말 걸어보자. 잘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사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라 처음에 나누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날씨 이야기, 학회가 열리는 도시 이야기, 현재 소속 대학 이야기 등 약간 궁금하고 흥미롭긴 하지만 그렇게까진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를 중간중간 어색한 침묵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대화를 이어 나간다. 뛰어난 대화 기술의 소유자라면 이런 고민이 필요 없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겐 출신 지역, 국가, 문화에 상관없이 처음 만난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마법의 질문

어느 정도 이야기가 주고받다가, 말할 거리가 떨어져서 더 할 이야기가 없어져 가는 시점에 진짜 멋진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마법의 질문이 있다. 바로 ‘요즘 어떤 연구 하세요?’이다. 결국, 학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연구 발표하러 온 사람들이고 내 관심사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고 연구를 지속해서 더 잘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요즘 어떤 연구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서로 물어보는 것보다 더 좋은 질문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수많은 대화 주제 중에 결국 연구 이야기 주고받는 것이 가장 쉽다. 관심사가 비슷하다면 연구 이야기가 심지어 즐거울 수도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질문은 없다. 연구가 잘되면 잘되는 대로, 잘 안 되면 잘 안 되는대로 할 이야기가 많다. 혹시 또 모른다. 상대방의 연구 이야기를 듣다가 내 연구에 도움이 되는 멋진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혹은 공동연구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학회 참석 1년 전부터 준비할 것들

약속을 잡고 학회 참석 목적을 세분화시킨다던가 하는 것 따위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좋은 연구를 하는 일이다. 학회를 즐기는 최고의 방법은 좋은 연구를 해서 여러 동료 연구자들 앞에서 발표하는 일이다. 결국, 학회 참석 전부터 내가 좋아하는 연구를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결과물로 만들어서 학회에 가져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좋은 연구를 발표하는 것이 역시 또 가장 멋진 네트워킹 방법이다. 내 연구가 흥미롭고 좋아 보인다면, 관심 있는 여러 사람이 내게 질문을 하고 흥미를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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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실제

앞서 연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파인만 알고리즘 이야기에서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고, 연구인 것과 연구가 아닌 것에 관해서도 이야기 했다. 이번 글에서는 연구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최근에 논문을 쓰면서 겪은 일들을 소개하면서 연구에 담긴 여러 일을 한 번 소개해보려고 한다. 연구 내용을 최대한 함축적으로 간단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내 전공 분야는 교통, 물류 분야의 최적화이다. 정부가 모종의 이유로 교통, 물류 네트워크에 규제를 도입하고 그 규제를 설계할 때, 시장이 그 규제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예측하는 모델을 가지고 논문을 몇 편 쓰고 있을 당시였다. 내 분야의 여러 학자가 전통적으로 써 오던 간단한 반응 예측 모델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었다. 그런 간단한 모델을 갖고 논문을 몇 편 썼고, 계속해서 다른 작업에도 이용하고 있던 찰나였다. 별 의심 없이 그 모델을 쓰고 있었지만, 이 모델이 도저히 맞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규제에 대한 시장의 반응에는 불확실성이 포함되어 있을 터인데, 그 불확실성을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모델링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대학원생과 동료연구자와 함께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다.

내 연구 분야에서 불확실성을 다루는 로버스트최적화(Robust Optimization)이라는 기법이 있다. 이 기법을 이용하여 이전에 몇몇 연구를 진행해본 적이 있었기에, 이 기법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응용하여 시장 반응에 내포된 불확실성을 모델링 하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로버스트최적화에서 말하는 불확실성과 내가 다루던 불확실성의 종류가 미묘하게 다른 면이 있었기 때문에, 이른 시일 안에 시간 내에 모델을 개발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연구 진행은 아주 더뎠다.

그러던 중, 다른 교수와 함께 이 주제에 관해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아주 흥미롭게도, 혹은 절망적이게도, 그 교수는 비슷한 내용의 논문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소개받은 연구는 로버스트최적화 기법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고, 그 뿌리를 행동경제학에 두고 있었다. 내가 전혀 모르고 있던 행동경제학 주제와 내 연구가 연결고리가 생긴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내가 하고 싶던 연구가 이미 비슷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은 절망적이었다. 연구에서는 대체로 그렇다.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서 좀 알아보다 보면 이미 비슷한 연구가 다 되어 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연구 주제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섭섭했지만 내가 다루던 문제에서는 처음 응용되는 것이므로 작은 논문은 쓸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계속 진행했다. 행동경제학에 바탕을 둔 방법을 내가 생각하던 특정 문제에 응용해서 적용해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잘 마무리해둔 연구를 그대로 실수 없이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별 무리 없이 진행되었고, 파인만 알고리즘의 2단계 ‘열심히 생각한다’만 잘하면 되었다.

하지만, 원래 생각하고 있던 로버스트최적화 기법을 응용한 방법에 자꾸 미련이 생겨서 그쪽으로도 연구를 계속했다. 연구를 계속했다기보다는 ‘왠지 될 것 같은데, 왠지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만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러 관련 문헌을 읽던 도중, 접근 방법이 전혀 반대 방향인 행동경제학과 로버스트최적화를 이용한 두 가지 모델링 방법이 별로 다르지 않고 심지어 같은 결과를 낳을 것 같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왠지 그럴 것 같았다. 그럴듯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아몰랑 연구 방향을 바꿔서 정말 같은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데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전혀 다른 방법이기 때문에 항상 같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같아지는지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여러 가지 조건을 생각해봤다. 가장 간단하고 다른 연구에도 쓰이고 있던 조건들을 비교하다가 두 가지 방법이 같아지는 조건 하나를 찾았다. 같다는 증명이 필요했는데, 증명에는 ‘통행료’ 계산에 주로 사용하던 기법을 응용해서 사용했다. 이 역시 나에게는 굉장히 재미있고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통행료 계산은 예전에 몇 차례 다루어본 적이 있는 주제였다. 내가 지금 하는 연구는 통행료 계산과 큰 연관이 없는데, 연구 내용은 연결이 되었다. 내가 지금 하는 이 연구를 하려고, 예전에 내가 통행료 계산 연구를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두 가지 방법이 같아지는 조건을 하나 찾은 다음, 다른 조건들도 찾기 시작했다. 직관적으로 말이 될 것 같은 조건을 만들어내고 실제로 같아지는지 그렇지 않은지 살펴봤다. 틀림없이 같아진다고 생각했던 조건들이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몇 주 후 혹은 몇 달 뒤에 발견했다. 조건들을 계속해서 수정해가면서 여러 가지 실험과 증명을 반복했다. 심지어 두 방법이 같아진다고 증명했다고 믿었던 조건을 실제로 적용해서 실험하다 보니, 뒤늦게 증명이 틀린 것을 알아채는 일도 허다했다. 내 머리가 나빠서 이런 간단한 증명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자책하는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이런 실패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조건을 만들어 내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두 가지 방법이 같아지는 다른 조건 하나를 찾아냈다.

원래의 방향과는 제법 달라졌지만, 이런저런 일들 끝에 즐거운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 연구 경험을 통해서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보겠다. 대놓고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를 테니 글을 읽는 분들께서 잘 가려서 들어주시기 바란다.

아이디어를 남에게 이야기하라

이 단락의 제목은 유명한 로봇공학자 가나데 다케오 교수님의 책 ‘초보처럼 생각하고 프로처럼 행동하라‘에서 빌려왔다. 많은 대학원생 연구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에 여러 가지 불안감을 느낀다. 내가 가진 아이디어가 굉장히 새로운 것 같아서 남들에게 이야기하면 빼앗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경쟁이 심하고 진행 속도가 빠른 분야일수록 아이디어를 빼앗겼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자신만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제로 연구 결과물로 만들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많은 경우 어디에선가 막혀서 처음 기대처럼 연구가 진행되지 않는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에게 내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어지고,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풀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서 그 사람이 먼저 내가 다루고 있는 문제를 풀어버릴까 봐 겁난다. 그러면 내가 연구에 보낸 시간은 버려진 시간이 되고 나의 야심 찬 졸업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초조해하기만 한다.

가나데 다케오 교수님은 이런 경우에 아이디어를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항상 옳다고 주장한다. 나도 그에 동의한다. 가나데 다케오 교수님의 말을 옮긴다.

“당신이 이야기하기 전에 상대방은 미처 몰랐는데 상대방이 먼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요컨대 상대방은 처음부터 좋은 결과를 얻을 확률이 당신보다 높았다는 뜻이다. 결국 아이디어를 말하고 안 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결과적으로 볼 때 상대방에게 졌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 때는 빨리 포기하는 편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이디어는 남에게 이야기하면서 나누자. 정말 ‘핫’한 분야의 정말 중요한 핵심 문제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은 내가 풀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내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크게 관심도 없을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야기하고 나누자. 이야기 할수록 나에게 도움이 된다. 남에게 내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다가 내 생각도 정리가 되고 문제점도 자연스럽게 파악되는 경험은 많이들 해봤으리라 생각한다.

아무리 그럴 듯 해보는 아이디어라고 해도 실제로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실행하는 과정은 굉장히 험난하다. 실제로 실행되었을 때 그 아이디어가 의미가 있는 것이지, 단순히 떠오른 생각은 그 자체로서는 큰 의미가 없다. 같은 분야에 있다 보면 몇몇 아이디어는 어느 연구자나 공통으로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가 나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다른 연구자에게 빼았겼다고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가나데 다케오 교수님의 말씀처럼 상대방이 내가 이야기한 아이디어를 미처 몰랐었으나 나보다 더 훌륭했기에 실행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경우도 있지만, 그 이전에 내가 말했던 아이디어가 실제로는 스쳐 지나가는 별것 아닌 단순한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아이디어는 가다듬고 실행해야 의미가 있다.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듣고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공식적으로 비공식적으로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이 예의이다. 논문 마지막 부분에 감사를 표할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논문의 공동저자로 초대해서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

걸작(傑作)이나 대작(大作)보다 습작(習作)에 충실하십시오

이 단락의 제목은 이화여대 오욱환 교수님이 쓰신 글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학자들을 위하여‘에서 빌려왔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읽을 수 있다. 학문에 뜻을 가진 사람에게 큰 힘이 되는 조언이 많으니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여러 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나는 학생 때 멋진 논문을 쓰지 못했다. 특히 처음에는 내가 쓰는 이 논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다른 사람이 읽어 주기나 할지를 걱정했다. 논문을 위한 논문을 쓰는 것으로 생각했고, 이 세상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일을 위해 헛심을 쓰는 것이 될까 불안했다. 대학원에 들어왔으니 졸업은 해야겠고, 교수가 되었으니 승진은 해야겠으니 사치스러운 고민은 접어두고 논문을 쓰기나 쓰자는 마음으로 여러 해를 보냈고 그렇게 여러 논문을 썼다. 열심히 했지만 내 연구를 대표하는 논문이라고 말하기엔 선뜻 내키지 않는 논문들만 늘어갔다. 졸업과 승진을 핑계로 덮어두었던 고민이 다시 올라올 때면 이건 연습이라는 마음으로 핑곗거리를 찾았다. 그러던 중 오욱환 교수님의 글을 읽었고 마음의 큰 위안을 얻었다. 습작에 충실했고, 대작은 아니지만 좀 덜 부끄러운 논문을 하나 썼다. 적어도 즐거운 연구를 했다.

내 경우엔 ‘통행료 계산’이나 ‘로버스트최적화’ 관련 연구를 했던 게 ‘습작’이었던 거다. 큰 의미 없어 보이는 연구를 했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지만, 그 연구 ‘연습’이 나중엔 결국 다른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었던 거다. 별 상관없이 흩어져있던 작은 연습들이 하나의 연구에서 모이며 좀 더 흥미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했다. 습작에 충실하다 보면 나처럼 평범한 연구자도 언젠가 대작이나 걸작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습작은 연습이니 대충 적당히 해도 된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적당히 내놓은 결과물을 받아줄 학술지는 별로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그 연습이 나중에 모여서 대작이 되는데 기여하지는 못할 것이다. 습작에 ‘충실’해야 한다.

연구란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뭔가 열심히 하다가, 수많은 과정을 거쳐서, 결국에는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는 과정이다

내가 쓴 이전 글에서 다시 빌려왔다. 애초에 나는 시장의 반응을 예측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두 가지 다른 모델링 방법이 같아지는 조건을 찾는 연구를 했다. 처음엔 두 가지 방법이 같다는 생각도 못 한 채 두 가지 방법을 써서 연구를 따로따로 진행하던 도중에 혹시 같은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됐다. 두 가지 방법이 같아지는 조건도 수차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뒤에서야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연구에서 처음에는 핵심이 되는 몇 가지 키워드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작하게 된다. 여러 가지 고민이 진행될수록 대략적인 방향성을 가지게 되고 몇 가지 가설을 세우게 된다. 연구의 방향성은 계속해서 변하게 되고 참일 것으로 생각되었던 가설 역시 잘못 된 것으로 판명되면서 여러 단계의 수정을 거치게 된다. 연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갈 때가 되어서야 내가 풀었던 문제가 어떤 문제였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답을 쓰게 된다.

파인만의 문제 해결 알고리즘에서는 문제를 쓰고, 그런 다음 열심히 생각해서 답을 찾아내지만, 실제로는 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생각하다가 문제를 쓰게 된다. 파인만 알고리즘의 1단계, ‘문제를 쓴다’를 잘할 수 있으면, 많은 경우 연구는 거의 끝난 것과 마찬가지다. 그저 조금 열심히 생각하면 될 일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연구가 거의 끝나가야 문제를 쓸 수 있다.

이미 출판된 논문은 질문과 답이 이어지는 구조가 잘 정돈되어 있고 그 과정도 부드럽게 보여서 모든 것이 성공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연구도 과정의 처음과 끝을 모두 살펴보면 논문에서 읽히는 것처럼 깔끔하지는 않을 것이다. 작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을 찾다가 다시 다른 질문을 던지고, 조금 더 큰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오랜 기간 거치며 여러 실패를 겪은 뒤에 얻은 결과물일 것이다. 충실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하며 생각을 다듬는 방법밖에 없다.


* 블로그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리디북스,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전자책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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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교수가 된다

교수 생활을 하면서 십여차례 정도에 걸쳐 교수 채용 과정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학과의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혹은 교수 채용을 주도하는 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수많은 사람의 이력서를 보고 면접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후보자가 좋은 평을 받는지, 어떤 후보자가 나쁜 평을 받는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교수 임용을 위해 면접을 보러 가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나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일하고 있지만, 첫 직장을 구할 무렵,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지역, 그리고 한국에서도 면접을 본 경험이 있는데, 전체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하나빼고 다 떨어짐, 거절의 아이콘

면접

원서를 내고 심사를 거쳐서 학교 방문 면접(campus interview) 초청까지 받았다고 하면, 사실 딱히 준비할 것은 없다. 교수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Be yourself’이기 때문이다. 몇 시간의 준비로 자기 본 모습을 바꿀 수는 없다. 방문 면접은 적어도 하루 종일, 대부분 1박 2일, 어떨 때는 2박 3일처럼 아주 길 기 때문에, 본 모습이 어디에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면접 보러 갔다가 오면 된다.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는 다 했으니언제?, 이제 내가 관찰한 바를 이야기 해 보려한다.

나는 내가 교수 후보자가 되어 면접을 보러 다닐 때는, 왜 면접을 보는지 잘 이해하지 못 했었다. 교수가 되고 나서 면접의 반대편에서 관찰해 보고 나서야, 면접이 정말 중요한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면접을 보러가서는 모든 후보자가 준비한 것을 잘 이야기 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잘 포장해서 적절히 잘 전달하고, 겸손하면서도 즐거운 모습을 보이고, 멋진 사람 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후보자가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게 되었다.

하루 이상의 면접 일정에서, 후보자는 학과 내의 모든 교수와 개별적으로 30분 이상 면담하게 되고, 학장도 따로 만나고, 학과장도 따로 만난다. 학생들을 따로 만나는 경우도 있고, 학과 내의 직원들도 따로 만나는 경우도 있다. 어떨 때는, 다른 학과의 관련 분야 교수들도 만난다. 아주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여러 배경을 가지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후보자는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조금씩 보여준다. 나중에 후보자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 학과 내의 구성원이 한 자리에 모여서 회의 한다. 그 회의에서 각자 그 후보에 대해 받은 느낌과 생각을 서로 교환하고 토의한다. 만약 한 축으로 치우친 의견이 있다면, 다른 교수가 그 의견에 반대 의견을 내면서 그 후보자에 대해 공정한 잣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이런 상황 에서, 후보자가 아무리 자신의 장점은 더 내세우고, 단점은 감추려고 노력해 봐야, 결국엔 대부분 본 모습이 다 알려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앞서 말 한 것 처럼, 별로 면접을 준비할 것은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오면 된다.

교수 임용에 성공하려면 우선 운이 좀 좋아야 한다. 운이 더 좋은 사람은 교수 임용에 관심이 없… 아무리 자기가 훌륭한 연구 업적을 쌓았다고 한 들, 연구 분야가 학과에서 채용하고자 하는 분야와 다르다면 무용지물이다. 그리고 비슷한 연구 업적을 쌓은 두 후보자가 있다면, 학과의 발전 방향에 부합하는 후보자를 뽑으려고 할 거다. 그러니까, 이런건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Be yourself’의 범주 안에서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래서 별로 후보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교수가 된다

내가 수년간 교수 임용 과정을 겪으면서 느낀 점이다. 내가 겪어 본 교수 채용 과정은 대체로 신임 조교수 채용을 위한 것이어서, 교수 임용 면접에 오는 후보자들은 대체로 박사학위를 받은지 2년 이내, 혹은 곧 박사학위를 받을 분들이었다. 박사과정 혹은 박사 후 과정 중이거나, 연구소 같은 곳에 연구원으로 있거나, 학교에 강사로 있는 분들이었다. 경력이 길건 짧건 무관하게 제가 볼 때는 두 부류의 후보자들이 있었다.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후보자들과 그렇지 않은 후보자들.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한다’라고 하면, 강압적인 표현을 한다거나 잘난 척 하는 행동을 한다는 식의 뜻으로 받아들일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괴수’아니고 ‘교수’

두 후보자가 극명하게 대비되던 채용 과정이 있었다. 두 후보자 모두 아직 박사학위는 없는 박사 마지막 학기 중이던 박사학위 임용 예정자였다. 연구 실적도 비슷 비슷 했고, 학과 입장에서 연구 분야의 호불호도 없었다. 서류 상으로는 두 후보자 모두 학과에 좋은 후보자였다.

한 후보자는 자신이 교수로 만일 임용 되었을 경우, 어떤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계속해 나갈 것인지, 그 연구를 하려면 어떤 실험 장비들이 필요한 것인지, 어떤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찾을 것인지, 어떤 과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지, 어떤 연구재단에 어떤 제안서를 제출할 것인지, 어떤 교수들과 협업할 것인지 등에 대한 준비가 모두 되어 있었고 잘 정돈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보자와 대화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꾸린 연구실의 모습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고, 우리 학교에서 이미 몇 년 간 지냈던 사람 처럼, 학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단순히 직장이 필요해서 교수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박사과정 학생과 교수는 그저 자기가 하는 연구의 측면에서 볼 때 같은 선 위에 있는 다음 단계였던 것 뿐이다. 이 후보자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 이미 교수가 된 사람에게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였다.

반면에 다른 후보자는 면접에서 많이 당황한 듯 보였다. 면접에 와서 본인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듯 했다. 앞의 후보자가 가지고 있었던 계획을 이 후보자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이 후보자는 면접에서 깨달았던 것이 많았는지, 집으로 돌아간 뒤 며칠 뒤에, 학과로 전화를 걸어와서는 자기는 지도교수님 밑에서 박사 후 과정 연구원으로 지내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아직 마지막 후보자가 면접을 보러 오기도 전의 일이었다.

앞의 잘 준비된 후보자는 결국 학과에서 교수 임용을 제안 했지만, 더 좋은 조건을 제안한 다른 학교에서 교수 생활 중이다.

똑같이 박사학위 임용 예정자일지라도 후보자 마다 보여주는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후보자는 누가 봐도 그냥 ‘학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반면에 어떤 후보자는 함께 이야기를 해 보면, 학생과 대화하는 것 같지 않고, 동료 교수와 대화하는 것 같다. 결국 교수로서의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해 본 사람이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고, 교수가 된다. 교수가 하는 여러가지 일들, 즉 연구, 강의, 학생지도, 다른 교수들과 교류 등을 즐길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 그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 역시 ‘Be yourself’가 의미하는 것의 범주 안에 들어가고, 결국은 따로 준비한다고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교수가 되는 것이 그냥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있을 거다. 교수라는 직업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너무 잘 맞아서 학생이지만 교수라는 직업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많이 고민해 본 사람이 있을 거다.

하지만, 모든 교수가 임용 전부터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건 아니다. 분명 어딘가 중간 쯤 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나처럼 헤메고 계실 분들을 위해 교수 면접 준비를 위한 한 가지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어떻게 하면 교수 임용 면접을 잘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잘 못 된 질문이다.

‘교수들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으며, 어떤 고민을 하면서 살까?’가 내가 볼 때는 옳은 질문이다.

가장 가깝게는 지도교수님께 여쭤 볼 수 있을 것이고, 다른 멘토 교수님이 있으시다면, 그 분께 여쭤 보아도 좋을 것이다. ‘advice for new assistant professors’ 따위로 검색을 해 보고 여러 글을 읽어 봐도 좋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책을 (미리) 읽어 보고 고민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교수 채용 과정

방문 면접 이전의 절차에 대해 궁금한 분들을 위해 교수 채용 과정을 간략히 소개한다.

예를 들어 2020년 1학기에 강의를 시작하는 교수 자리에 원서를 낸다고 가정하자. 중요한 시기는 2019년이다. 전공과 대학,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교수 채용 공고가 일찍 나오는 곳은 2019년 1학기를 시작하자마자 나온다. 물론 아주 늦게 2019년 2학기 중반, 혹은 끝나갈 때 나오는 곳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2019년 1학기 중반 즈음에는 공고가 나온다. 2019년 1학기의 연구 실적을 갖고 평가 받기 되므로, 박사과정 졸업 1년여 전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박사 졸업 후에 바로 교수가 되지 않고 박사후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인 분야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다.

원서를 내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서류는 다음과 같다.
1. 커버레터 (Cover Letter)
2. 이력서 (CV)
3. 연구 계획서 (Research Statement)
4. 강의 계획서 (Teaching Statement)
5. 추천인 명단 (List of References)

각각을 준비하는데에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리니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미리미리 알아보고 일찍부터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에 여러 정보들이 많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이 글에서는 아주 간략하게만 소개한다.

커버레터는 논문으로 치자면 초록(abstract)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전체 원서 패키지의 요약본이라 생각하면 된다. 원서의 다른 부분에서 직접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것을 여기서 말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이 교수 자리에 왜 지원을 했으며, 왜 내가 적합한 후보자인지를 아주 직접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교수 채용 공고가 간략하게 나오는 곳도 있지만, 채용 공고가 설명글 형식으로 나오는 곳이라면 그 공고문을 수 차례 읽어보기를 권한다. 학과에서 교수를 채용하기 위해서 공고문을 쓸 때 굉장히 공을 들인다. 원하는 분야에 좋은 사람을 뽑고 싶기 때문에, 우선 공고문에 그 사항을 쓴다. 공고문을 수차례 읽다보면 어떤 사람을 뽑고 싶은지 어느 정도 느낌이 온다. 만일 내가 그 분야에 맞는 사람이라 생각되면 그 사항을 강조해서 커버레터를 준비하면 되겠다. 이런 의미에서 커버레터는 일종의 자기 소개서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저는 … 아.. 안돼…

이력서는 학계에서 통용되는 형식을 써야한다. 지도교수님께 보여드리고 조언을 얻자. 연구 계획서는 말 그대로 내가 박사과정 동안 어떤 연구를 해왔으며, 앞으로는 어떤 연구를 할 것인지를 쓴다. 강의 계획서에서는 강의와 관련된 경력이 있으면 간략히 쓰고, 강의철학(Teaching Philosophy)을 간략히 쓰기도 한다. 또 어떤 과목을 잘 가르칠 수 있는지, 어떤 과목을 새로 만들어서 강의하고 싶은지도 쓴다. 추천인 명단에는 학과에서 추천서를 요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름, 근무지, 연락처 등을 쓴다. 추천인은 대체로 3인 이상이어야 한다. 지도교수 이외에 좋은 추천서를 써줄 수 있는 사람 2~3명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체로 박사 논문 심사위원들이다.

원서를 제출하고 나서, 혹은 제출하기 전에도, 해당 분야의 큰 학회가 있으면 직접 그 학과의 교수와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학과입장에서 후보자를 학회에서 만나는 이유는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당연히 후보자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것이고, 원서에서 알 수 없는 사항들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두번째는 학과에서도 어떤 사람을 뽑고 싶은지 그리고 학과와 학교에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더 자세히 알리고 홍보하기 위해서다. 학과에서 마음에 드는 후보자가 있다면 학과에서도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여러가지 노력을 한다. 후보자의 연구 분야에 맞는 공동 연구자를 추천하기도 하고, 관련 연구 시설이 학교에 얼마나 잘 마련 되어 있는지 자랑도 한다.

원서 마감일이 지나면 전화 면접을 하기도 한다. 전화 면접은 대체로 20분 내외로 짧게 진행 된다. 학회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와 비슷한 내용의 대화가 오가지만 조금 더 평가의 측면이 강하다. 왜 지원했는지, 향후 계획은 어떤지, 어떤 연구를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간략하지만 핵심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후보자가 학과와 학교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있으면 물어볼 기회도 있다.

전화 면접이 끝나면 대체로 1~2주 정도 후에 방문 면접(campus interview)이 진행 된다. 대체로 1박2일 혹은 2박3일 정도의 일정이다. 한국에서는 1박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어떤 경우에든 하루 이상의 시간을 온전히 면접에 쓰게 된다. 방문 면접에서는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해서 1시간 정도 세미나 발표를 진행하고, 학과 소속 각 교수들과 따로 30분 정도 시간을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보내고, 학교 캠퍼스의 이곳 저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학과의 대학원생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여러가지 대화를 하기도 한다. 손님을 모시는 입장이므로 학과에서는 여러가지 일정으로 가득 채워둔다. 맘편히 똥누러 갈 시간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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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의 이메일 커뮤니케이션

학생들의 질문에 항상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 주시고, 학생들의 요구에 항상 기대 이상의 것을 해 주시는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모시고 있다면, 복 받았다. 학생 시절 내가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많은 교수님은 그러시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다. 논문을 쓰다가 부딪힌 문제에 대한 물음에 대한 만족스러운 대답을 지도교수에게 얻을 수 없는 경우가 아주 허다했으며, 어느 정도 진척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동안 작성한 논문을 지도교수에게 보여줬더니, 책상 위 귀퉁이 어느 한 곳에서, 혹은 받은 편지함 어느 깊숙한 곳에서 교수의 관심을 잃곤 했다.

왜 교수님은 학생들의 질문과 요구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시지 않을까? 이 글의 첫 문장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써보겠다. 자신의 질문에 지도교수님이 항상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시고, 자신의 요구사항에 기대 이상의 것을 지도교수님이 해 주신다면, 질문과 요구를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도교수님이 학생 지도에 얼마나 열의가 있느냐와는 무관하게, 학생의 관점에서 지도교수에게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하는 것이다.

이메일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지도교수를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이메일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메일을 어떤식으로 보내는 것이 좋을지 한 번 생각해보자.

“교수님, 제가 현재 작성하고 있는 논문을 보내드립니다. 괜찮은지 한 번 봐주십시오.”

아주 높은 확률로, 교수님은 괜찮은지 봐주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논문의 논리나 내용이 아니라 그저 기계적으로 글쓰기 자체에 대한 제안만 해주기도 한다. 논문이 완성되어 가고, 어느 시점이 되면, 지도교수가 학생의 논문을 전체적으로 꼼꼼히 읽어 보고, 여러 가지 문제점 및 개선안을 알려줄 필요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저렇게 이메일을 보내면, 안 읽어본다.

문제점이 뭘까? 일단 교수는 바쁜데, 학생이 연구한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고 하면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 위와 같은 식으로 질문/요구를 한다면,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을 생각해 내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데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다. 교수는 아마 그 일을,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중의 여유시간으로 미룰 것이다. 그리곤 잊을 거다.

학생이 작성하고 있는 논문에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학생은 대체로 이미 알고 있다. 교수가 더 잘 알고 있다면, 학생이 논문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수의 논문을 그저 도와주고 있을 확률이 높다. 공부를 안 해서 불안한 내용에서, 꼭 시험 문제가 출제되고, 프로젝트 발표를 하는 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자신이 없어 불안한 곳에서 꼭 교수님의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온다. 자신 없는 부분은 본인이 이미 알고 있다.

논문 전체를 던지는 대신, 자신 없는 부분에 대한 것을 콕 찍어, 질문을 쪼개서 간단하게 만든다. 그 리스트를 만들고, 그 리스트의 각각의 항목의 핵심적 질문을 쓴다. 그리고는 그 리스트를 논문과 함께 이메일로 보낸다.

아니다.

그 리스트의 항목 한 개, 혹은 두 개, 아주 많이 양보해서 세 개 정도만 보낸다. 질문이 얼마나 대답하기 쉬운 질문인지에 따라 달렸다. 질문을 쪼개고 쪼갰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답하기에 생각을 꽤 해 봐야 하는 질문이면 한 번에 한 개만 보낸다. 이메일로 질문하는 경우에, 그 이메일에 대답하기 위해 오랜 생각이 필요한 경우라면, 교수는 어쩌면, 나중의 여유시간으로 대답을 미룰지 모르고, 아마 그리곤 잊을지도 모른다. 여러 질문을 한꺼번에 보내면, 교수가 질문 하나에 대한 대답은 가지고 있지만, 나머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생각을 좀 해봐야 해서, 답장을 미루다가, 그 하나의 대답마저 못 듣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교수마다 반응이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답장을 미뤘다가, 결국은 학생에게 답장하는 것을 잊은 경험이 있다.

물론, 연구라는 것이 아무리 단계를 쪼개고 쪼개도, 더는 간단해질 수 없을 때가 있고,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생각을 해야 답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있을 거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여전히 질문의 단위를 쪼개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게 얻을 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질문하는 방식

쪼개진 물음도 질문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비교해보자.

  1. ABC 방법으로 접근했더니, 이러이러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ABC 방법으로 접근했더니, 이러이러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ABC 방법이 def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def 요소를 고려하는 DEF 방법이나, GHI 방법을 사용해서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어느 방법이 더 나을까요?

1번의 질문도 교수의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2번 질문이 훨씬 더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다. 아주 간단하게는, 1번 질문은 주관식이고, 2번 질문은 객관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번 질문이 답변자가 생각해야 하는 길을 간략화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좋은 학생이라면, ABC 방법으로 접근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왜 문제가 생겼는지, 어떤 대안이 있을지, 고민해 보았을 거다. 1번 질문에서는 학생의 그 고민을 질문에 포함을 시키지 않았고, 2번 질문에서는 그 고민을 질문에 포함했다. 교수는 학생의 고민이 정말로 무엇인지를 쉽게 알 수 있고, 학생이 이미 해 본 고민의 사고 과정을 따라가면서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기가 쉽게 된다.

2번과 같은 질문에서도, 교수의 답이 반드시 DEF, GHI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대답이 아닐 수도 있다. 발생한 문제가, 실제로는 문제가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도 있고, def 요소가 핵심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JKL 방법을 제안할 수도 있다. 어찌 됐든, 1번 질문보다는 2번 질문이 훨씬 나은 질문이다.

물론 2번과 같은 방식으로 질문 할 경우에도, 이메일을 너무 길게 쓰면 안 된다. 핵심만 추려서 질문해야 한다. 이메일을 너무 길게 쓰면, 교수가 읽는 것조차 미룰지도 모른다. 핵심 내용을 도저히 간단하게 추릴 수 없을 경우에는, 간단하게 설명하고 언제 만나서 의논할 수 있을지를 물어보자. 자세한 이야기는 우리 만나서 해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 질문을 작은 단위로 쪼개다 보면,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기 전에 학생 스스로 해답을 얻을 가능성도 많다. 해답을 얻지 못해 질문하는 많은 경우는 본인 스스로 질문의 핵심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일 수 있는데, 이 경우 질문 쪼개어, 질문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에 도움이 된다. 파인만 알고리즘(Feynmann Algorithm)에 대한 앞의 글을 참고하자.

지도교수는 대체로 학생들의 일을 도와주고 싶어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교수는 자신의 학생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학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혹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투자해야 할 때에는 도와주고 싶으나, 도와줄 수 없을 수도 있다. 교수에게 질문하고 요구 할 때, 만족스러운 대답과 반응을 원한다면, 교수가 대답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줄여 줘야 한다.

그리고 이메일의 제목과 내용은 일치해야 한다. 잊고 있던 학생의 질문이 생각이 나서, 검색했는데,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제대로 찾기는 굉장히 어렵다. 실험 내용에 대한 대화를 하는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면서 학회에 보낼 초록에 대한 질문을 같이 보내지 말자. 새로운 이메일을 새로운 제목으로 쓰는 것이 옳다.

이 글은 사실, “하나의 이메일에는 하나의 질문/요구만을 담아야 하고, 될 수 있는 한 짧게 보내야 한다.”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이메일 예절을 쓸데없이 길게 쓴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내가 대학원 진학 전에 참석했던 한 모임에서 접한 “교수의 시간을 아껴주는 학생이 좋은 학생이다.”라는 짧고도 함축적인 조언을 역시 쓸데없이 길게 쓴 것에 불과하다.

이메일 형식과 예절

이메일을 문자 메세지처럼 쓰지 않기를 바란다. 이메일은 사실 굉장히 “보수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많은 경우에 원래 종이에 써서 우편으로 보내던 것을 컴퓨터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것으로 바꾼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도교수와 자주 교신하는 경우에는 그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문자 메세지만큼 캐주얼하지는 않다. 그래서 최소한의 형식을 지키는 것이 좋다. 영어로 이메일을 보내는 경우를 살펴보자.

Dear Dr. <교수의 Last Name>, —- (1)

<본문> —- (2)

Thanks, —- (3)
<내 이름> —-(4)

이 정도가 최소한의 형식이다. 받는 사람과의 친밀도에 따라 1번, 3번, 그리고 4번을 어떻게 쓰느냐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나라, 학교, 학과의 분위기에 따라서 지도교수를 First Name으로 친밀하게 부르는 경우도 있고,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잘 모를 때는 위의 예에서 처럼 정중하게 쓰도록 하자.

재미있게도 3번과 4번 항목에도 여러가지 선택 사항이 있다. 3번에서 자주 사용되는 맺음말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Best Regards
  • Regards
  • Best Wishes
  • Best
  • Sincerely Yours
  • Sincerely
  • Thanks

상황에 맞게 잘 써야 할 것이다. 판단이 잘 안 될 경우에는 정중한 표현인 “Best Regards”가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학생의 경우에는 자신의 First Name을 4번 항목 <내 이름>에 쓰면 된다. 예전에 어떤 직장인이 비행기에서 이메일을 쓰는 모습을 뒷자리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일이 있었는데, 이메일 내용은 제법 빨리 채우더니 4번 자기 이름을 쓰는 곳에서 수십번을 쓰고 고쳐 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메일 받는 사람들이 아마 상급자와 하급자, 그리고 외부 인사들로 섞여있었던 복잡 미묘한 상황이 아니었나 추측한다. 예를 들어 이름이 Donald J. Trump라면 굉장히 많은 선택 사항이 있다.

  • Donald Trump
  • Don Trump
  • Trump
  • Don
  • DJT

이메일을 같은 주제로 여러번 주고 받는 경우 답장을 보낼 때는 다른 부분을 다 생략하고 본문만 쓰기도 하고, 본문에 마지막으로 내 이름만 덧붙여 쓰기도 한다.

한글로 보내는 경우에는 비슷하게

홍길동 교수님께,

<본문>

감사합니다.
아무개 드림 (혹은 올림)

정도면 대부분의 경우 괜찮을 듯 하다.

이메일의 실제 예

다시 이메일 본문을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지로 돌아가서, 내 학생에게 받았던 이메일들 중에서 좋았던 이메일과 그렇지 않았던 이메일을 예로 들어보겠다. 이메일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익명성을 위해 다른 이름을 사용하였다.

Title: quick question for XXXXX case study

Hi Dr. Kwon,

I’ve asked Barrack Obama for the data of XXXXX network. But there is no data for link accident probability associated with each commodity (since your paper on generalized bounded rationality doesn’t need that data).

I am wondering how I can generate this type of data. I’ve checked your worst case CVaR routing paper and found a formula to calculate accident probability (only related to link distance). In that paper, there is no emphasis on multi-commodity. Does that make sense to provide all four kinds of hazmat for XXXXX network with same link accident probability in our model?

Thank you!
Michelle

제목도 비교적 명확하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것을 시도해보았는지,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쉽게 답을 줄 수 있었다. 물론 내 대답은 간단한 예/아니오는 아니었고, 학생이 고려하지 않았던 점들을 알려줘야 했지만, 질문과 이메일 내용이 명확했기 때문에 손쉽게 학생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답을 줄 수 있었다.

다른 예를 보자.

Title: Figure

Hi Dr. Kwon,

Please check the diagram. It’s not the same as we expected.

Best regards,
Donald

학생과 미팅을 했을 때 컴퓨터로 계산 실험을 하기로 했고, 그 결과를 그래프로 그려서 이메일로 보내왔다. 학생이 보기에 그 그래프가 이상했고 미팅 시간에 이야기 하면서 예측했던 결과와 달라 보였기 때문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어서 이메일을 보내왔다. 보내온 그래프에는 여러가지 메세지가 섞여 있었기 때문에, 그 중 어떤 점을 말하는 것인지 나는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고, 게다가 미팅 시간에 어떤 것을 기대했었는지 잊어버렸다. 이 놈의 기억력 결국 어떤 점이 이상한지를 묻는 이메일을 다시 보내야했다. 학생의 이메일이 짧고 간결한 것은 좋았으나, 제목과 본문 모두 지나치게 간결했다.

다음 글을 참고하자.

 

 

 

사족. 같은 주제로 자주 대화를 주고 받아야 하는 경우에는 이메일이 사실 그리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아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Slack같은 도구를 사용하는 그룹이 늘어나고 있다. 나도 학생과 연구에 대한 논의를 주고 받기 위해서 Slack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나도 학생도 아직 익숙하지 않다. 학교나 연구소에서 Slack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는 다음 글들에 잘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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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와 장비병

사진을 취미로 하시는 분들은 ‘장비병’에 대해서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내가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괜시리 내 카메라와 렌즈가 저렴한 제품임을 탓하게 되고, 훌륭한 사진을 보면 괜히 어떤 장비를 썼는지 부터 확인하고 싶어지고, 수백만원을 들여서 좋은 장비를 갖추고 나면 정말 엄청난 사진을 매일 찍어 댈 것 같은 그 마음 말이다. 결국 통장에 남은 돈을 긁어 모아 갖고 있던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고 사진을 찍어 보지만, 결과물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복잡한 기능을 다 익히기도 어렵고 무겁기만 하고 괜히 조작만 어려워진 느낌이다.

이런 거 집에 하나씩은 다들 있잖아요

연구를 할 때도 비슷한 욕구와 욕망이 생긴다. 같은 연구문제를 다뤄도 더 어렵고 복잡한 ‘방법’을 쓰면 내 연구가 더 멋져 보이고 더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새로 나온 최신 수학 이론과 요즘 잘 나가는 컴퓨터 이론을 쓰면 내 연구를 더 빛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거기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이고 마음을 빼앗긴다.

사진을 찍을 때 중요한 것은 좋은 사진을 찍는 것이지 고급 장비를 쓰는 것이 아니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비싸고 좋은 카메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때에 맞는, 그리고 사진을 찍는 목적에 맞는 카메라와 장비가 필요하다. 어두운 실내에서는 그에 맞는 장비가 필요하고, 풍경을 찍을 때와 인물을 찍을 때는 필요한 장비가 다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갑자기 찾아오는 의미 있는 순간을 찍으려면 폰카메라 처럼 작고 휴대 하기 편리한 카메라가 필요하다.

연구를 할 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질문에 답을 하고 싶은 건지,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가 첫번째로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의미 있는 연구를 하는 것이지, 최신 방법론을 쓰는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궁금하던 물음에 적합한 답을 할 수만 있다면, 그 답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방법이 최신의 것인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아주 오래된 평범한 것인지는 그 다음 문제다.

박사학위로는 부족하다(원제: A PhD Is Not Enough!)’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을 가진 책에서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신기술, 난해한 테크닉, 새로운 시약, 새로 동정한 미생물 등을 이용하여 연구를 수행하는 것도 좋지만, 장기적인 연구생산성이나 생존가능성을 고려한다면 기술지향적(technic-oriented)인 것보다는 문제지향적(problem-oriented)인쪽이 훨씬 유리하다. ‘문제지향적’이란 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과학적 과제를 명확히 세운 다음, 때로는 기술을 새로 배우거나 개발해야 하더라도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기술에만 관심을 쏟으며, 이 기술이 적용될 수 없는 과학적 문제는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지향적 연구자는 학문적 리더로 오랫동안 살아남을 확률이 거의 없다. 문제지향적이라고 해서, 문제해결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터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당신은 학문적 리더가 되고자 하는 것이지 기술적 리더가 되려는 것이 아니다.

대학원을 졸업할 때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저마다 전문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 기술을 응용해서 연구를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우리는 곧잘 “내 기술로 이젠 또 뭘 손대볼까?”하는 식의 나쁜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표현해 주었다. ‘장비병’에 걸린 사진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수업시간에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가 있다. 한국의 한 기계설비를 만드는 업체에서 기계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미세한 소음을 잡지 못 해 애를 먹고 있었단다. 국내 유수의 전문가들에게 이 어려운 문제 해결을 부탁했더니 음향 분석, 영상 분석, 진동 분석, 열 해석 등의 기술을 동원해 그 원인을 찾고자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해외에서 주목받던 최신 신기술로도 해결을 못 해 전전긍긍하다가, 일본의 한 전문가에게 부탁을 했고, 결국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그 전문가가 한국의 그 업체에 사용한 도구는, 놀랍게도 청진기였다. 소음이 나는 곳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청진기로 소리를 들어가며 어디에서 소리가 나는지 찾아낸 것이다. 사용한 도구는 고급 도구가 아니었지만, 문제 해결에 가장 적합한 도구였다.

그럼에도 새로운 연구방법과 신기술은 여전히 중요하다. 훌륭한 연구 결과물은 새로운 연구 방법론 개발 혹은 새로운 연구 방법론의 응용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대체로 연구자들이 기술지향적인 접근을 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연구 주제가 자연스럽게 새로운 방법론 개발 및 응용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예 새로운 연구 방법을 만들든, 아니면 다른 연구 분야에서 개발된 연구방법을 가져다 응용을 하던 말이다. 좋은 연구 주제는 여려 가지 상황 변화로 인해 새롭게 나타나고 발견된 문제이거나, 보편성을 가지고 널리 알려진 문제이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문제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문제이므로 자연스럽게 그 문제에 적합한 방법론 개발이 필요하다. 아예 바닥부터 새롭진 않더라도, 새로운 문제에 맞는 변형이 필수적이다. 보편성을 가진 문제는 이미 수많은 연구자가 다루었던 문제이므로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려면 새로운 연구 방법을 개발하거나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 경우에는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사용했더라도 여전히 기술지향적이 아닌 문제지향적인 접근이다.

물론, 연구에는 예측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문제지향적인 접근이 기술지향적인 접근보다 항상 낫다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그러하단 말이다. 기술지향적인 접근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는 연구 결과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말이야, 새로운 기술이 세상에 나왔길래, 심심하기도 하고 궁금해서 한 번 내 연구 주제에 적용시켜봤지. 그랬더니 있자나, 헐, 대박” 이런 경우 말이다. 깜짝 놀랄 만한 연구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결론은 “뭐, 재밌긴 한데, 잘 안 되네”일 가능성이 높다. 저런 넘치는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박사과정 학생의 중심 연구 주제로 삼기에는 위험하다. 그래서 보통 이런건 교수들이 석사 학생에게 시킨다. 아 미안.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기교가 끝나는 순간 예술이 시작된다.”

클래식 음악 예술계의 누군가가 한 말인 것 같다. 음악에 문외한인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대체로 기교를 익히고 익혀서 완전히 능숙하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예술을 표현할 준비가 되었다라고 이해한다. 기교를 완전히 마스터 하지 않고서는 예술가가 될 준비도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연구에도 어느정도 맞는 말이다.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연구 방법을 확실히 마스터 해야 한다.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필요한 기초 수업들에 나오는 내용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굉장히 낮아진다.

기교를 마스터하는 것의 중요성에 관한 위의 말은,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기교 자체가 예술은 아니라고 말한다. 예술을 위해서는 기교가 필요하지만, 기교가 예술의 본질은 아니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물음에 답을 하고자 하는 지이지, 어떤 새로운 기술과 방법을 썼다는 사실이 아니다. 최신 기술을 사용해서 연구를 하는 경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이지 최신 기술을 사용해 봤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기술을 익히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기술이 연구의 본질이 아님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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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 있는 게 연구인가, 아닌가?

지금 대학원에 와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연구인가, 아닌가? 나는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연구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들은 연구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하는지 알아보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If we know what it was we were doing, it would not be called research, would it?”
(우리도 우리가 뭐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알면 연구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우리말 부분은 내가 적당히 번역한 것이다. 여러가지로 음미할 수 있는 말이지만, 우선 ‘모른다’에 주목해보자.

다음 어학사전은 ‘연구’를 다음과 같이 정의 한다. ‘어떤 일이나 대상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생각하여 이치나 진리를 밝힘’. 구글과 메리엄-웹스터사전에서는 ‘research’를 각각 ‘the systematic investigation into and study of materials and sources in order to establish facts and reach new conclusions’과 ‘careful study that is done to find and report new knowledge about something’이라고 정의한다. 뭔가 조심스럽고 깊이있게 접근해서 결국 새로운 이치나 진리를 얻는다.

아인슈타인의 말과 한 번 조합해보면, 연구란 뭘하는지도 모르면서 뭔가 열심히 하다가, 수많은 과정을 거쳐서, 결국에는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는 과정인 것 같다.

이 정의는 말은 잘 되지만, 조금 뜬구름을 잡는 듯 한 느낌이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연구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엇이 연구가 아닌지 알아보자. 좀 더 정확히는 무엇이 연구의 ‘목표’인지 아닌지 알아보자. 내가 연구 제안서를 쓸 때 아주 큰 도움을 받은 글이 있다. 미국 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NSF)의 공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신 George Hazelrigg의 ‘Honing Your Proposal Writing Skills’라는 글이다. 구글에서 ‘NSF CAREER Proposal Writing Tips‘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내가 경전처럼 생각하며 종종 다시 읽어보는 문서이다.

이 문서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There are many words that, to reviewers, mean “not research.” These include “develop,” “design,” “optimize,” “control,” “manage,” and so on. If your statement of your research objective includes one of these words, for example,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develop….,” you have just told the reviewers that your objective is not research, and your rating will be lower.

무엇인가를 개발(develop), 설계(design), 최적화(optimize), 제어(control), 관리/조종(manage) 등을 하는 것은 연구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거다. 재미있다. 공학 분야에서는 저런 것을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겠다고 하는 논문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고, 심지어 연구 제안서에서도 저런 것이 목표라고 하는 연구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그것이 연구의 목표는 아니라고 한다. 순수 연구를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국과학재단에서 수십년간 일해오신 분께서, 개발, 설계, 최적화, 제어, 관리/조종은 연구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하신다.

이 분이 더 재미있고 더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해주신다. 공학 연구의 목표를 기술하는 방법은 자신이 알기로는 단 4가지 밖에 없다고 한다.

1.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test the hypothesis H.” (가설 검정)
2.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measure parameter P with accuracy A.” (측정)
3.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prove the conjecture C.” (추측 증명)
4. “The research objective of this proposal is to apply method M from disciplinary area D to solve problem P in disciplinary area E.” (학제간 융합 연구)

사회과학과 공학이 어렴풋이 겹쳐지는 분야를 연구하는 내가 보기에 반드시 맞는 말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저 4가지 범주 이 외의 일반화된 연구 목표 기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 법도 하다.

내 분야의 NSF 프로그램 담당자께서 해주신 조언이 있다. 어떤 연구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그 결과로, ‘지금은 우리 인류가 알지 못하는 어떤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 없는가, 그 지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비교적 명확히 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만 NSF에서 연구비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처음의 사전적 정의와 일맥상통한다. 아인슈타인의 말과는 조금 다르지만, 아인슈타인 본인도 연구 제안서를 쓸 때 즈음 되서는 목표가 비교적 명확해졌을것이라 (내 마음대로) 추측해본다.

그럼 위에서 언급한 개발, 설계, 최적화, 제어, 관리/조종은 무엇일까? 이런 단어를 언급하는 연구 논문과 연구자들이 아주 많은데, 연구의 목표는 아니라고 하니 그 실체가 궁금해진다. 내가 볼 때 이것들은 어떤 연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활동들이다. 언급한 활동들 자체가 연구는 아니지만, 저 활동을 하지 않고 연구를 할 수는 없다. 저런 행위들이 연구의 목표가 될 수는 없지만, 연구를 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작업(task)일 수 있다는 말이다.

박사학위를 받았을 당시만 해도 나는 저런 행위들이 연구 그 자체인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Hazelrigg의 글을 읽었을 때는 많이 놀랐다. 곰곰히 생각해봤더니, 새로운 지식을 알아내는 ‘연구’는 지도교수님께서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일을 도우면서 연구에 필요한 여러가지 활동들, 즉 개발, 설계, 최적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연구가 뭔지도 모르면서 연구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무사히 박사학위를 받았던 걸 보면, 나만 그랬던 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연구의 목표와 작업을 구분하지 못했지만, 연구에 필요한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었으니, 연구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까지 틀린 말은 아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해보자. 예를 들어 어떤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일을 생각해 보자. Hazelrigg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연구가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일 수는 없다.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일은 분명 중요한 연구 행위이지만,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연구의 목표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말이다. 만일 그 알고리즘이 동물 사진 중에서 고양이 사진을 골라내는 알고리즘이라면, 고양이 사진을 잘 골라내는 것이 목표이지, 알고리즘 개발이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차이는 명확하다.

심지어, 고양이 사진을 잘 골라내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한 연구를 하는 분들도 단지 고양이 사진 구분만이 연구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은 잘 인지하고 있을 거다. 고양이 사진, 개 사진을 넘어선 그 너머 어딘가에 ‘목적’이 향하고 있을 거다. 작업과 목표, 그리고 목적과 목표를 구분하자.

작업(task): 일정한 목적과 계획 아래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일을 함
목표(objective): 활동을 통하여 이루거나 도달하려는 실제적 대상으로 삼음
목적(goal): 이루려고 하는 일이나 방향

작업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이며, 목표는 그 작업이 이루려는 대상이며, 목적은 궁극적으로 내 연구의 목표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다.

연구에서 처음부터 목적과 목표가 명확한 경우는 잘 없다. 처음부터 목적과 목표가 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 대학원생이라면 운이 좋다. 지도교수님이나 연구실의 다른 선배들이 이미 갈 길을 잘 닦아 두었다. 파인만 알고리즘의 1단계 ‘문제를 쓴다’ 부분이 해결 되었기 때문에, 이제 다양한 연구활동 및 작업을 하며 ‘진짜 열심히 생각’하면 되겠다.

자신의 연구 방향을 잡고 싶은 학생, 혹은 지도교수님이 하라고 시킨 이 연구의 방향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은 학생은, ‘연구 주제에 대해 삼단계로 말해보기’ 방식을 이용하면 좋겠다. ‘A Manual for Writers of Research Papers, Theses, and Dissertations‘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다음의 예를 보자.

(당신은 무엇에 대해 공부하고 있나요?)
1. 저는 X라는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왜 그 주제를 공부하고 있지요?)
2. 왜냐하면, 저는 왜 Y인지 알고 싶거든요.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3. 그러면, 제가 다른 사람들이 왜 Z인지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거든요.

1단계는 연구에 필요한 활동 혹은 작업(task)이다. 개발, 설계, 최적화 같은 것들 말이다. 2단계는 연구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직접적인 새로운 지식이며 연구의 목표(objective)이다. 3단계는 연구의 목표를 이룸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궁극적인 목적(goal)이며 연구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대학원생일 때는 주로 1단계에 모든 시간을 쓰고,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하지만, 2단계와 3단계, 그러니까 연구의 목표와 목적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보면서 연구를 하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글의 제목에서 묻는 것처럼 지금 하고 있는 게 연구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은 크게 중요치 않을지 모른다. 대신 내가 하는 연구활동과 내가 세운 연구의 목표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아는 것은 좋은 연구를 하는데 분명히 큰 도움이 된다. 내가 학생 시절 그랬듯이, 논문의 다른 부분은 다 잘 쓸 수 있는데, 첫번째 서론(Introduction)부분을 잘 쓰지 못하는 학생이 많을 것이다. 연구의 방향을 잘 파악하고 이해한다면 적어도 서론 부분은 조금 더 명확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다음 후속연구에서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도 잘 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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